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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Apr 29. 2021

남편의 간지

최근 남편은 헌혈을 했다

우리는 대학교에 다닐무렵 RCY라는 적십자 동아리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으레 그런듯 대학교에 입학하면 한두개는 기본으로 동아리에 가입했었는데, 음악이나 예술 쪽으로는 딱히 재능이나 관심이 없었던 터라 가장 무난한(?) 적십자 봉사동아리에 가입했던 것 같다. 가입조건이 까다롭지 않았고 그당시 간호학과 학생으로 재학하고 있어서 누가 뭐라한것도 아닌데 당연히 '봉사'동아리에 가입해야 되는 줄 알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과랑 봉사랑은 정말 상관이 없는데..)


동아리활동 중 가장 큰 활동이 헌혈홍보와 헌혈지원이었다. 헌혈 하라고 하고 나부터 빠질수는 없었다. 건장하고 튼튼한 체격조건의 성인이면 헌혈이 가능하기 때문에 대학생 중에 헌혈을 하는 사람은 많았다. 헌혈버스가 오고 혈압을 재고 간단한 문진을 한 후 간호사 안내에 따라 헌혈을 한다. 굵은 바늘로 삽입하는 데 그 과정이 아프다.

동아리회원이기도 했지만 헌혈을 하고 나면 사은품을 받을수가 있었다. 영화티켓을 포함한 소소하지만 필요한 사은품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헌혈이라는 봉사활동도 하고 사은품도 받을 수 있어서 동아리에 머문 2년의 기간동안 총 8번의 헌혈기록을 남겼다. 물론 그 동아리에 가입한 동안 혼자사는 어르신을 방문하기도 하고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헌혈활동은 이후 큰 부분을 차지했다. 남편도 그랬다.


대학교에서도 수시로 헌혈을 했던것 같다. 남편과 나는 동아리모임에서 만나거나 자주 보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헌혈활동을 하는 날이면 자주 나타났다. 내가 8번을 했으니(중간에 나는 사정상 휴학을 했고 이후 다른학교로 편입했다) , 남편은 10번 20번 가까이 했을거다. 손가락으로 하나둘 세어보진 않았지만 꽤나 많이했던 것 같다. 어렴풋이 알게 되었는지, 헌혈을 하는 동안 훈장 받는 사람을 본 것인지 정확히 물어보진 않았지만 최근 남편은 헌혈훈장을 받겠다는 일념에 불타올랐다.

적십자에서 헌혈을 많이하는 사람에게 유공장을 준다고 했다. 조금만 더 하면 30번이고 30번을 하게 되면 받게 되는 유공장이 그렇게도 탐이났던 남편. 눈썹문신 해놓은것이 옅어지고 사라져서 다시 해야할 때가 이미 지났지만, 남편은 헌혈을 해야했기 때문에 눈썹문신을 미루었다. (눈썹문신을 하게 되면 당분간 헌혈을 할수없다. 문신은 주사바늘을 이용해서 색소를 주입하는 것인데 의료기관 아닌곳에서 시술한 기구는 감염의 위험성이 있기때문에 사전에 배제하는 것이다)

평일 김포에서 강남까지 출퇴근시간만 4시간. 남편은 주말에는 컴퓨터방에 붙어있거나 빨래방을 가는데 한가지 목적이 생긴이후로 헌혈의 집이 주말 코스에 포함되었다. 일년여의 기간 동안 시간이 될 때, 헌혈주기가 맞을 때, 헌혈을 해도 될때 주말에 헌혈의 집을 방문했다. 어느 날은 혈압이 높았다고 (수축기 혈압 150이상) 헌혈을 못하고 오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푸우가 꿀을 찾으러 다니듯 남편은 헌혈의 집을 방문했다.


처음 몇 번은 아이들을 위해 블루투스 스피커를 사은품으로 받아오기도 했다. 어느날부턴가 사은품이 없는 거다. 헌혈을 하면 사은품을 고를수가 있는데 종류가 다양하다. 아이들과 함께 가면 아빠 헌혈하는 모습도 볼 수있고 헌혈후 고를수 있는 사은품도 볼 수 있어서 의미가 남다를 것 같은데, 이제서야 생각이 났다. (그동안 나도 참 무신경하고 무관심했다. 남편이 이토록 간지나는 헌혈유공장을 탐내고 헌혈의집은 다녔는데!)


사은품 안받았어? 생각이 나서 물어보니 기부했다고 한다. 기부도 좋지. 기부도 좋은데 한번씩은 아이들 생각해서 사은품도 골라서 받아오지~ 아쉬운 마음에 한소리했다. 이번주 주말 남편은 헌혈의 집을 방문했다. 헌혈 30번째 날이다. 기념적인 순간이다. 사은품 이야기로 한소리 듣고 간 남편은 이날 사은품을 찍어 카톡으로 보내었다. 다양해서 고르기가 어려울 정도. 문화상품권과 편의점쿠폰을 골랐다. 남편은 이날 30번째 기록적인 헌혈유공장과 문화상품권 사은품을 가지고 위풍당당히 귀가했다.

사실 남편이 헌혈의집에 방문할 때 유공장 받는 사람을 몇번 보았나보다. 그래서 내심 너무 부러웠다고. 자기도 30번 채우고 꼭 기필코 반드시 유공장을 받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유공장은 헌혈의 집마다 비치되어 있는걸까? 30번 50번 채우면 이름만 적어서 주는걸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최종 30번을 채우는 날 전날부터 남편은 이야기한다. 어디에 걸어두지? 어디에 놔둬야 할까? 관심없는 내 옆에서 기대에찬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남편의 간지나는 위풍당당 유공장은 거실에 비치되었다. 내가 다른일을 하는 사이 언제 놔두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남편은 빛의 속도로 유공장과 포창장? 포공증을 함께 자리해두었다. 집에 오는 분들이 모두 이 유공장을 보고 한마디 거들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아이를 돌보러 오시는 돌보미선생님이 혹시 보셨을까? 물어보기도 하고(아니, 거들떠도 안보시던데?) 간지나지? 스스로 으쓱하기도 한다.


집에 있는 유공장을 보고 우와~ 대단해요~ 정말 멋져요. 좋은 일 하시네요~ 기대와 감탄의 소리를 기대하는 나의 남편. 내가 남편의 간지를 북돋워줘야 겠다. 어제는 돌보미선생님이 유공장을 발견하시고 좋은 일 하신다며 칭찬을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남편의 입꼬리가 끝이 없이 올라간다.

더 빛이 나는 곳에, 더 눈에 띄는 곳에 유공장을 두길 원하는 남편이다. 우리집을 방문하는 분들에게 꼭 미리이야기 해야겠다. 남편의 유공장을 꼭 보시고 대단해요~ 멋져요~ 한마디씩 꼭 해주기를 말이다. 남편의 간지는 내가 살려줄게. 유공장이 아니라도 가장의 무게를 짋어지고 구두가 반토막이 나도록 까만양말이 다 헤지도록 돌아다니고 가정을 위하는 남편이 고맙고 또 멋지다. (하지만 컴퓨터방에서는 좀 나와주라 남편~)

 

p.s. 헌혈을 위한 팁 & 헌혈과 관련한 소소한 정보


헌혈을 할 때 전혈과 성분헌혈을 선택할 수 있다.

전혈은 whole blood, 말 그대로 혈액의 모든 성분(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혈장)을 모두 추출하는 것이다. 반면 성분헌혈은 혈장과 혈소판만 추출해낸다.

전혈은 시간이 10~15분으로 짧게 걸리는 대신, 다음 헌혈을 하기위해서 2달을 기다려야 한다.

성분헌혈은 시간은 1시간 정도 소요되고 2주 뒤에 헌혈이 가능하다.

본인의 선택여하에 따라 전혈이나 성분헌혈을 할 수 있다.

헌혈을 하기전에 기초 건강상태를 체크하는데 혈액형을 포함한 간단한 혈액검사(간수치, 항체, 콜레스테롤, 총단백 등)가 가능하고 검사결과는 헌혈자에게 통보된다. 헌혈을 통해 주기적으로 건강도 체크하고 수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혈액을 공급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 사은품은 보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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