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희정 Nov 24. 2021

남편 때 묻은 와이셔츠를 보다가

나와 남편은 올해 10년이 되었다

나와 남편은 올해 10년이 되었다. 결혼한 지 10년째. 서로의 관심사도 다르고 사는 지역도, 직장도 달랐지만 우리는 장거리 연애를 하며 사랑을 이어갔다. 많이 다투기도 했다. 첫아이를 임신하고 남편 살고 있는 집이 안 빠져 임신한 몸을 이끌고 청소를 하러 다니기도 하고 부동산에 집을 내놓기도 했다. 경제적인 개념이 없었던 남편이었고 마련해둔 자금이 없어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서울 신림동에 신혼집 빌라를 마련하고 지하철과 버스를 타며 입덧을 견디어 내며 직장생활을 했다. 비가 많이 올 때면 집 앞 개울은 도로까지 물이 넘쳐 홍수와 같은 상황을 연출하기도 하고 폭설이 쏟아지던 어느 날은 조그만 우리 차가 비탈길에서 헛바퀴를 돌리며 미끄러질 뻔한 아찔한 상황도 생기기도 했다. 여동생과 같이 지낼 무렵, 베란다 옷걸이에 널어둔 동생의 옷은 그대로 햇빛을 받아 한쪽면만 누렇게 변하는 어이없는 상황에 모든 옷을 버려야만 했던 일도 있었다. 신림동 4층 빌라는 아기를 낳고 육아를 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육아에 무관심하고 컴퓨터만 끼고 살던 남편을 많이 원망하고 다투기도 많이 했다. 혼자서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고, 버스 타고 예방접종을 다니고 아이에게 들어가는 돈과 시간은 점점 많아지는데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는 남편이 미덥지 못해 혼자 울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신림동 4층 위의 옥상에 가끔 올라가서 동네를 둘러보거나, 가끔 1층에 내려와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 시절이 가끔 그립고 생각이 난다.


지금은 경기도 김포에 터를 잡고 사는 동안 한 해 한 해 우리도 나이가 들고, 아이들은 커간다. 지난 주말 남편의 와이셔츠를 보았다. 남편의 방에서 옷을 한번 상의 없이 버리고 크게 화낸이후로 남편 방은 잘 안 보는 편인데, 와이셔츠 목 부위가 때가 안 나간다며 남편이 말했다. 10년이란 세월 동안 한 곳에 정착하지를 못하고 남편은 이곳저곳을 많이 헤매고 다녔다. 그러는 동안 가정경제에도 구멍이 생기고 맞벌이를 하면서 서로가 챙기지를 못하고 각자 바빴던 것 같다. 나는 나대로 여기저기를 관두고 다시 일하기를 반복했다.


지금 남편은 그래도 자기가 가장 잘 맞는 것 같다고 말하며 잘 다니고 있다. 법률상 담도 하고 주말에도 저녁에도 외근이 잡히고 발로 뛰어야 하는 일이라 늘 까만 양말은 너덜 해지고 까만 검정 구두는 헤질대로 헤져 중간축이 금이 나버릴 정도다. 맞춤정장을 매일 입고 다니며 더우나 추우나 매번 입던 옷을 또 입으니 하얗던 와이셔츠는 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얼룩제거제로 칙칙 뿌리고 손목 부위에 때 묻은 부분도 칙칙 뿌려보지만, 큰 효과는 없다.


지하철로 왕복 네 시간을 매일 김포에서 서울까지 오간다. 그 거리와 수고로움과 어깨에 짊어진 무거움을 알기에 저녁 9시가 되어가는 밥시간에라도 나름 저녁을 차리려고 한다. 무뚝뚝한 남편이고 표현하지 않는 아이들 아빠지만, 그래도 옷소매에 깃든 때 묻은 남편의, 아빠의 사랑이 오늘도 마음으로 전해져내려 온다. 그동안 아이들 위주로 챙기느라 늘 뒷전이었던 남편에게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벌써 오 년도 넘은 일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