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이라고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가? 나는 학창 시절, 경북 구미의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다. 집에서 조금 거리가 있어 당시 버스를 타고 다녔다. 수진이라는 친한 친구와 구미시내를 거닐었던 기억이 난다. 수진이는 (현재는 호주에 살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연락하고 있는 친한 친구다) 책을 참 좋아했다. 반면 나는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학교수업을 마치고 구미시내에서 구경을 하기도 하고, 구미역 바로 앞에 있는 서점을 방문하기도 했다. 나는 서점을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 약속장소 중 한 곳으로 생각할 뿐이었다.
그때의 기억은 아직까지 자리한다. 친구와 만났던 장소이기도 하고 약속장소이기도 했다. 서점이라서 책이 있던 장소이기도 했다. 당시 기억에는 책이 아주 많았던 것 같다. 그 서점 근처로 헌책방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 서점도, 헌책방도 없어졌다. 내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서점, 책방에 대한 기억은 '지금의 책방'을 구성하고 운영해 나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 되기도 한다.
사실, 처음 책방 자리를 알아볼 때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인터넷 온라인에서 짬짬이 상권이나 입지에 대해 공부하고 '책방 창업'에 관련한 책을 보기도 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업종 선택이 가장 중요하고, 그 나머지는 내가 스스로 깨우치면서 알아가야 하는 것 같다. 책방이 사람들 눈에 잘 보이기 위한 조건을 만족하는 건 중요하다. 대로변에 있으면 당연히 좋겠고, 역 주변에 자리하면 더없이 좋겠다. 사실 나는 처음 최고그림책방이라는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외부매장이 필요했다.
집주소로 사업자등록을 하니 개인정보가 그대로 드러나서 신경이 쓰였다. 공유오피스도 요즘 매장으로 시작하기에 잠시 고려해 보았지만, 책방이라는 특성상 공유오피스는 맞지 않았다. 책방이라는 자리는 우선 사람들 눈에 띄어야 하고, 신규고객도 창출해내야 하는 입지가 필요했다. 무슨 말이냐면, 다른 매장이나 병원을 방문하다가 지나가는 길에 책방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근처 볼일을 보러 왔다가 책방에서 책도 구경하고, 아이병원에 가는 길에 그림책을 사가기도 하는 일 말이다. 젊은 분들이 역 근처를 지나다니다가 책방에서 구경도 하고, 독서모임 포스터지를 보고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낼 곳이 필요했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상가를 두루 보고 장단점을 적어내려 갔다. 실제 책방을 오픈하고 운영하다 보니 내가 깨달은 점이 있어 몇 가지만 적어 내려 간다.
첫째, 안쪽 구석진 자리에 있던 소품샵이 바깥 크게 노출된 자리로 이전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자주 방문하는 소품샵이 있었다. 집 바로 앞이기도 했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진열한 공간이 좋아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시절에도 자주 방문했던 곳이다. 인스타를 통해 홍보도 열심인 소품샵 사장님과도 가끔 일상이야기를 나누고, 책방오픈소식을 알리면서 서로의 근황을 공유하기도 했다. 내가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코로나의 영향으로 소아과환자들이 급격히 줄긴 했지만 여전히 건재하고 있던 소아과병원이었다.
김포에 처음 이사 왔을 때 나 역시 근무할 곳이 필요했는데, 그 당시 일했던 곳이 뉴 oo 병원이었다. 내가 일하던 시기와 맞물리게 그곳에서 근무하던 소아과원장님이었는데, 찾는 이들이 정말로 많았고 인기도 많았다. 소아과를 찾는 분들이 많았고, 단골도 많았다. 어느 순간 개인의원을 개원하고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인기 많은 소아과병원이 있으니 같은 층에 자리하고 있던 다른 매장들도 덩달아 잘되는 도미노현상을 알게 되었다. 소아과병원을 찾으면 바로 옆 약국에 가게 되고 (약국도 소아과의 힘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피아노학원이나 비누클래스 등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도 덩달아 신규고객을 창출할 수 있었다. 그 근처에 있던 소품샵도 엄마와 아이들이 지나다니는 통로에 있다 보니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기존 고객이 있으니, 조금 더 확장되고 바깥노출이 되는 공간으로 옮겨온 것이다. 지금은 간판도 구래역에서 나오면 시원하게 보이는 자리에 위치해 있다. 사장님도 바깥노출을 지속적으로 생각하고 빈매장을 알아보았던 것 같다. 진심으로 확장이전을 잘하셨다고 축하드렸다.
둘째, 책방은 기다리는 곳이 되어야 한다. 역 근처 오픈매장이 필요하다.
어릴 적 나의 경험은 책방이나 서점은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책 한 권을 꺼내들 수 있는 자리다. 내가 원고 첫마디에 학창 시절 서점에 대한 기억을 적은 이유도 그런 이유에서다. 사실 구래역 근처만 해도 카페가 많다. 누군가를 기다리기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어도 되지만, 서점이나 책방에서 책과 함께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이 상상된다. 구래역에서 약간은 떨어지고 바깥노출이 안 되는 (그래서 월세가 조금은 더 저렴한) 지금의 위치에 책방을 열었지만, 내가 이후 갈 곳은 바깥 노출도 되고 역근방에 기다릴 수 있는 공간이 있는 매장이어야 한다.
바깥에서 노출이 된다는 건 신규고객을 만날 수 있다는 얘기다. 책과 친하지 않은 사람들도 책방으로 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책의 큐레이션도 한몫한다. 재미없는 따분한 책이 아니라, 재미있고 아름다운 책들로 전면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림책은 그런 역할을 충분히 소화해 낸다. 부모들도 아이의 책을 보러 왔다가 재미있는 책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책과 어른책을 함께 입고하는 이유다.
구래역 근처에 코너를 돌아가는 공간에 임대문의가 붙어있는 건물을 발견했다. 1층이라서 월세가 300 가까이 되었다. 평수도 지금의 책방의 2배 가까이 되는 널찍한 공간이다. 호시탐탐 건물을 보고 위치를 한 번 더 본다. 그리고 부동산사장님과도 대화를 나눈다. 이전에 카페와 맥주를 함께 팔았던 매장을 운영했었는데, 지금은 월세감당이 원활하지 않아서 임대자리를 놓게 된 것 같다. (나의 이후 책방콘셉트를 살짝 오픈한다면 심야책방과 맥주책방이다)
현재 매장을 운영하면서도 다음 목적지를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지금의 책방을 운영하면서 분점형태의 매장을 오픈할지, 아예 이전 소품샵처럼 바깥노출이 잘되는 곳으로 확장이전을 할지 자금융통상황도 계산해보아야 한다.
셋째, 내가 운영하는 책방은 책을 팔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이곳에서 독서모임, 글쓰기 책 쓰기 모임이 열리고 학생대상으로 성교육할 장소가 필요했다! 모임도 운영하고 책 보러 오는 사람들도 있어서 (지금은 괜찮지만) 이후에는 따로 공간을 분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상가자리를 한참 알아보다가 발견한 자리가 있었는데 마산동에 일층자리였다. 바로 역 코앞이었는데, 며칠 전에도 부동산사장님에게 물어보니 세를 놓고 있다고 했다. 월세 300이고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가 된다고 했다. 내가 만약 책방을 운영하게 된다면 어떤 식으로 공간배치를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본다. 일층으로 통유리라서 바깥에서 노출이 잘되었다. 마산역과도 정말 가까워서 오고 가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지나다니는 차에서도 보이는 위치였다. 무엇보다 기다릴 수 있는 책방만의 대기장소로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그런 생각이 내 마음 한편에 스멀스멀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음 타깃을 정해 본다. 구래역 코너매장도 좋고 마산역 일층매장자리도 좋다. 다만 자금이 가장 중요하다. 투자를 받을 수 있다면 제일 좋고, 입지를 조금씩 굳혀가면서 옮겨가는 것도 좋겠다. 지금의 책방자리에서 나만의 콘셉트를 조금씩 채워나가고 있다. 책방은 책방지기가 콘셉트이라는 말이 있다. 나도 이에 동의한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올 사람은 온다. 책방지기를 만나기 위해서 온다. 글쓰기를 배우러, 성교육을 들으러, 재미있는 책을 아이와 함께 보러 최고그림책방에 온다. 내가 책방을 열었지만 이 공간을 지역주민들과 함께 채워나간다. 엄마손을 잡고 책방을 방문하던 친구들이 성장하고 자라는 모습도 볼 수 있겠지? 책의 온기로 사람들의 체온으로 가득 차는 날이 다가오기를 바라본다.
책방 하기 좋은 위치는 사람들 눈에 들어오고 일층이라 유모차도 들어오기 쉽고, 누군가를 기다리기에 편안한 장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위치라도 책방지기의 콘셉트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내가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책은 재미다, 그림책을 읽어주세요 이거다. 작지만 단단한 메시지는 소중한 사람들을 통해 오늘도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