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희정 Dec 13. 2023

대형 유치원 옆에 있으면 좋을까?

매장 투어하면서 알게 된 것들

우리가 지도를 보거나 부동산 건물을 확인할 때 주로 보는 것은 역과의 위치, 주변환경 등이다. 책방 오픈하기 전 매장투어를 많이 다녔다. 빈 매장, 공실, 이전에 피아노학원을 했던 곳, 요구르트매장을 했던 곳, 소품샵이었던 곳 등등. 특히나 기억에 남는 곳이 있었는데 바로 대형 유치원 옆 매장이었다. 소담스럽게 생긴 빌라건물 일층에 화장실에 안에 딸린 그레이빛이 감도는 인테리어를 한 작은 공간이었다. 월세도 50 정도로 저렴했다. 심지어 화장실도 내부에 있다니!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전에 피아노학원을 했다고 한다. 아주 작은 규모의 피아노학원이었던 것 같다. 내가 그림책방을 이곳에 한다고 생각했을 때를 떠올려본다. 높은 천장고가 일단 마음에 들고 분리벽에 세워진 곳을 부수면 나름 널찍한 공간이 나올 거 같았다. 그리고 오며 가며 유치원을 등하원시키면서 그림책 매장 안이 보이겠지? 그림책을 전면으로 세워두면 마치 예술품을 보는듯한 인상을 받을 것이다. 내가 원했던 각도이고 분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실제 내가 그림책방 주인이 되어 안쪽에서 바깥쪽을 본다고 가정했을 때 하루종일 있어보았다(가정). 유치원은 사실 오전 9~10시면 모두 등원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일단 그 시간은 아이들과 부모가 책방에 올 일이 없을 것이고 (유치원 등원준비하고 보내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진다) 하원시간을 생각해 보았다. 오후 3시부터 유치원 하원을 시작할 테지? 약간 언덕 위쪽에 위치한 대형 유치원이기에 아마 대부분의 유치원생들이 버스를 타고 이동할 것이다. 자가하원 하는 경우가 더러는 있겠지만 아주 소수에 불가할 것이고 그 소수 중에서도 그림책에 관심을 가지고 이따금씩 방문하는 친구는 손에 꼽을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도 생각해 보았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글쓰기에 관심 있는 엄마들이 모이는 거다. 내가 책방을 열면서 책 쓰기, 글쓰기 강의를 함께 구상했는데 이럴 경우를 대비해서였다. 책방의 수입만으로 먹고살 수 없다는 걸 이미 간파하고 있었기에 다른 클래스나 수업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한번 보자. 엄마들이 과연 올까?

일단 해봐야 아는 것이지만 차를 가지고 이 근처에 주차를 해야 한다. 역에서는 아주 먼 거리였고 심지어 오르막을 나름 한참 올라와야 하는 지대였던 것이다. 이곳에 산책 겸 운동 겸 걸어오는 경우도 있을 테고 근처 빌라나 단독주택 부지 등에 거주한다면 글쓰기모임이 열리는 날에 사람들이 모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마냥 날이 좋은 것도 아니고 글쓰기에 관심이 지대하게 높지 않은 이상 차 없이 (이 근처에 살지 않으면서) 찾아오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 판매도 확답할 수 없는 상황이고 글쓰기를 배우러 오는 수요자체가 불확실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역에서 일단 멀었고 대형유치원 하나만을 바라보기에는 무모한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장은 정말 예뻤다. 함께 간 둘째 아이와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이곳에 그림책을 쫘악 천장 끝까지 진열해 두면 좋겠다. 바깥에서 보면 정말 예쁠 것 같아. 빌라에서 오고 가는 사람들이 봐주면 정말 좋을 거 같아. 그러면서 책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늘어나겠지? 잠깐동안이지만 자그마한 공간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아이는 마냥 신난 눈치다. 엄마와 함께 이곳저곳을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미래 책방지기의 연습이라도 하는 듯했다. 엄마의 싱숭생숭한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부동산중개사가 미리 점찍어둔 (예산과 지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4~5곳을 다녀온 후 내 나름대로 집 근처 다른 매장도 방문해 보았다. 학교와 바로 맞은편에 있는 과일가게였다. 형과 동생이 번갈아가며 운영을 하는 듯했는데, 초반에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고 밴드운영도 하고, 특히 배달도 해주는 곳이라서 참 마음에 들었다. 어느 시점에 건강상 이유로 과일배달이 멈추더니 손님도 뜸해지는 눈치였다.

인테리어가 과일가게를 연상하게끔 취향에 맞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학교가 아무래도 가까이 있으면 운영면에서도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해주었다. 학교 근처에는 대단지 아파트가 있었고 항아리 상권이었다. 근처에 매장이 있기도 했는데 과일가게만의 운영방법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얼마나 흘렀을까? 다른 곳으로 이전했는지 최근에 근처를 방문해 보았더니 가게문을 닫은 후였다. 운영할 사람이 없었거나 운영비가 생각보다 많이 들었거나 과일 특성상 재료소진이 바로바로 되지 않으면 버려야 하는 것들이 아무래도 많아서 유지하기 쉽지 않았을 거다.


비가 내리는 날 여느 날처럼 학교맞은편 도도한 빵쟁이로 향했다. 나의 첫 번째 책 <책 먹는 아이로 키우는 법> <하루 10분 그림책 읽기의 힘>에도 등장할 정도로 나에게는 친숙하고 정감 어린 곳이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한 순간부터 졸업을 앞둔 지금까지 아이들의 일상을 이따금씩 묻기도 하는 소중한 아지트인 셈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소보루빵을 고르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주문해서 자리에 앉았다. 바깥쪽 학교가 보이는 자리여서 참 좋았다. 아이가 하교하고 엄마~ 하고 부르며 쪼르르 달려왔던 곳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추억의 장소이자 아이와의 만남의 장소였다. 둘째가 갓난아기였을 때 유모차에 태우고 하영이를 마중 나오기도 했던 장소다.

비 오는 날에도 나는 커피 한잔을 주문하고 아이를 기다렸다. 날이 갑자기 흐려져 온 비로 빵집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어느 날은 한적해서 커피 마시기 좋고, 오늘같이 비 오는 날은 아이를 기다리기에도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그래서인지 그날따라 사람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빵집은 일단 빵이 맛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이 빵집이 그랬다. 남자요리사님이 새벽같이 출근해서 아침부터 부지런히 빵을 만들고 꺼내놓은 빵을 여사장님이 포장해서 가지런히 정리해 둔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빵 굽기와 빵 진열은 오후까지 이어진다. 그런 매일의 노고를 아는지라 포장 하나에서도 사장님의 마음과 정성이 느껴진다. 빵 하나를 대할 때에도 소중히 대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남자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빵 만드는 솜씨만큼은 최고라고 자신한다. 제빵사님도 그걸 아는 것 같았다. 내가 책방 홍보로 전단지이야기를 건넸을 때, 여사장님은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전해 듣기로는 ) 제빵사님은 빵이 맛있으면 사람들이 온다는 변하지 않는 나름의 철칙과 소신을 지키고 있었던 거다.


나 역시 책방을 운영하면서 알게 되는 점이 하나둘 생긴다. 내가 만약 경력직 책방지기가 되었을 때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자가 온다면 뭐라고 이야기해 줄까? 그런 내용들을 고심하며 하나하나 써 내려간다. 제빵사님의 철칙처럼 나에게도 그런 철칙이 있을까?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내가 책방을 연 이유는 책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이고 책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도 그랬으니) 책과 친해지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을 점점 등한시하고 멀리하는 어른들, 그리고 아이들이 책과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기쁨을 전하고 싶고 아장아장 엄마손 걷고 책방 오는 아이들이 책과 함께 성장해서 나중에 책방손님으로 올 때의 기쁨을 누리고 싶어서다. 그림책을 읽어준다는 의미가 얼마나 위대하고 소중한지 부모님들에게 선생님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였고 나 역시 이런 귀하고 예쁜 책들 사이에서 더욱 성장하고 멋진 책방지기가 되고 싶어서다.


책방은 책방지기가 컨셉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맛있는 빵이 있으면 먼 곳에서라도 찾아가듯이 책방도 그런 것 같다. 어떤 매장이든 식당이든 가게든 다른 매장에서 맛볼 수 없는 매장만의 매력점을 찾는 게 포인트다. 그런 포인트를 찾기 위해서는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닌, 나 스스로 무언가 재미있고 색다른 시도가 있을까? 생각하고 시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직장인 일 때와 자영업 하는 지금을 비교해 보자면 완전히 다르다. (물론 직장 다니면서도 알아서 일을 찾아서 하는 직원이 눈에 띄는 건 당연지시다) 직장인일 때 시켜서 하던 업무와는 정반대로 내가 알아서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하는 점, 직장인은 출퇴근 시간이 있지만 내가 사장이고 대표가 되면 온종일 핸드폰을 붙들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회에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분명하다면 그 노력과 들인 시간이 아깝지 않을 거 같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진정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으려면 많이 해봐야 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나? 생각될 정도로 몰입한 경험이 있다면 그게 당신이 좋아하는 일이다.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책방 하면 큰일 나는 게 아니라, 서점 아르바이트라도 해보면서 (혹은 그림책모임을 만들고 실제 운영해 보면서) 비슷한 경험치를 쌓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런 모임과 책임을 통해 '나라는 사람'을 알게 될 테니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