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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Dec 19. 2023

엄마, 이거 유통기한 지난 거 아니야?

마데카솔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엄마, 이거 유통기한 지난 거 아니야?"


아이가 묻는다. 왼쪽 종아리아랫부분 다리를 긁다가 생긴 상처에 며칠 동안 약을 발랐다. 거의 다 써가는 마데카솔을 건네면서 딱지가 날 때까지 바르는 게 좋다고 일러두었다. 아이는 유독 '유통기한'에 민감하다. 엄마인 내가 '유통기한'을 잘 못 챙겨서일까? 엄마를 바라보며 자신은 꼭 유통기한을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아이가 묻는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했다. 특히 우리가 흔히 바르는 연고에 관해서는 유통기한을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고, 나만의 정한 유통기한은 '다 쓸 때까지'였다. 그리고 생각보다 이조 그만 녀석이 비싸다. 그래서인지 듬뿍듬뿍 바르지 못하고 아주 작게 조금씩 바르곤 했다. 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바로 검색해 보았다.




그랬다. 네이버에 이렇게 검색만 해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마데카솔이나 후시딘처럼, 우리가 상비약으로 늘 바르는 연고는 개봉 후 6개월이라고 한다(식약처 권고). 내가 어제 아이에게 그렇게 말했는데, 얼추 헛다리 짚다가 맞춘 격이다. 나름 간호사로 일했는데 그 정도는 대부분의 상식선에서 알게 모르게 정보가 입력된 거 같다. 사실 간호사도 매일 보는 약이나 주사제만 알지, 다른 과나 개인로컬에서 사용하는 기구나 약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내가 경희대병원에 처음 입사하고 5년 동안 근무하는 동안 예방접종에 관해서는 몰랐듯이, 광범위한 의학분야를 배우긴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근무하는 과는 정말이지 너무나 많고 다양하기에 모든 과를 소화할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같은 소아과라도 대학병원에서 흔히 이루어지는 검사나 처치에 관해서는 능숙하지만, 개인의원에서 경험하는 것들은 실제 경험해 보면서 배우고 익숙해진다.


약을 버릴 때도 그렇다. 어제도 약통하나를 다 버렸다. 몇 년 전(?) 사두었던 아이의 영양제였다. 한두 알 먹여보고 먹기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영양제도 흔히 상비해 두거나 사게 되는 품목 중 하나인데, 아이가 싫다는데! 억지로 먹일 수는 없었다. 아이들마다 다르고, 선호하는 형태가 달랐다. 첫째는 유산균이나 아연을 잘 먹었다. 둘째는 맛이 마음에 안 들어서인지, 약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여러 종류를 사보았지만 잘 먹지 않았다. 우리가 다이어리를 쓰듯이 처음에는 잘 쓴다. 그러다가 몇 페이지 못쓰고 책장안쪽 깊숙이 넣어주는 거다. 그러다 보면 앞에 몇 쪽만 끄적거리고 나머지는 흰 여백으로 남아있다. 약도 그런 듯하다. 처음에는 꼬박꼬박 잘 챙겨 먹어야지 싶다가도 일주일, 한 달이 지나면 금세 시들어버린다. 내가 사는 영양제도 그랬다. 보통 영양제라고 하면 적어도 3만 원에서 많게는 10만 원이 넘어가는데 내 돈으로 사든, 누군가 선물로 주든 (영양제는 반갑지 않다. 특히 홍삼류는 거절한다) 안 먹고 짐창고에 넣어두게 되는 거다.


아이들이 받은 물약도 아이의 증상에 따라 3일에서 길게는 1 주일 넘게 복용하면 된다. 아이의 증상이 안 먹어도 될 정도라고 판단되면 중지해도 된다. (중이염처럼 길게 항생제를 복용해야 하는 경우는 예외다) 아이가 좋아지면 갈색물약병이 그대로 남는다. 혹시 몰라서 남겨두지는 말자. 내가 소아과병동에서 근무할 때 해열제는 비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좋은데, 나머지약들은 아이의 증상에 맞추어서 진료 보고 약을 처방받는 것이 좋다. 부모인 내가 보고 판단하는 것과 전문의사가 정확한 진료 후 아이의 증상에 따라 약을 처방하는 것은 다르다. 섣불리 판단해서 약을 복용하지 말자.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복용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의사가 아이의 증상에 맞게 약의 종류와 용량을 처방해 준다. 우리는 의사가 아니다.


집 안 구석구석을 살펴보자. 아이가 먹다 남은 물약병이 있는지, 내가 처방받은 약이 굴러다니고 있지는 않은지, 혹시나 몰라 가지고만 있던 안약이나 (유통기한이 지난) 연고들이 있는지도 한번 확인해 보자. 우리가 병원에서 유통기한을 확인하듯이 집에서도 6개월에 한 번씩은 유통기한을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 연고는 통상 6개월 이내를 권장하고, 안약의 경우 한 달 이내로 사용 후 폐기하라고 권장한다. 방부제가 들어있건 없건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운 우리는 안약은 한 달 정도로 생각하고 안 쓰면 폐기하는 게 좋겠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꾸준히 먹어야 하는 약이 아니라면 (혈압약이나 고지혈증, 당뇨약은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 오늘 한번 정리해 보자.


우리 집에 이렇게 연고가 많았다고?

안 먹는 영양제가 이렇게 많았다고?

바구니가 이렇게 많았다고?


깜짝 놀랄 수도 있다. 도토리 감추듯 냉장고 이곳저곳에, 찬장 이곳저곳에 뭉쳐두고 감추어두었을 약봉투들을 모조리 꺼내어 보자. 이미 유통기한이 훨씬 지난 약들도 많을 것이고, 똑같은 연고도 많을 것이다! 다 써가는 연고는 버리고 새것을 준비해 두자. 아이가 먹다 남은 물약이나 내가 처방받아두고 안 먹은 시럽제들도 모조리 버려보자. 약병은 깨끗이 씻어 재활용분리수거함에 두고 가루약이나 알약은 일반쓰레기로 분리배출해 본다. 영양제 통에 안 먹어서 색이 변한 것들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후련하게 쓰레기통에 콸콸 쏟아보자. '지금 내가 안 먹는 건' 버린다. 이 원칙하나로 내 주변이 깨끗해지고 건강해진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만 남겨두자. 그리고 내 눈에 보이게 두어보자. 정수기 앞에 가장 좋겠다. 비타민D, 아연, 칼슘정도는 내 곁에 두고 챙겨 먹으려고 한다. 눈에 보여야 또 먹게 된다.


마데카솔에도 유통기한이 있고 우리가 먹는 약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처방받을 때 바로 먹고 '언젠가 모를 혹시 그날을 위해' 남겨두지 말자.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고 열이 나고 자주 아플 수 있다. 매번 병원에 가서 오픈런을 기다리고 몇 시간씩 대기하며 진료를 보는 일이 남일이 아니다. 그만큼 소중한 약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집을 나서기 전부터 옷 입히기 실랑이를 해야 하고 추운 겨울날 옷을 꽁꽁 싸매고 병원을 찾아다녀야 하며, 병원 대기실에서 1, 2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하는 엄마들의 일상이 있다. 약을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무시 못한다. 그러고 보니 병원을 다녀오면 내가 녹초가 된다. 약이라도 잘 먹어주면 좋은데, 아이는 약 먹기 싫다고 발버둥 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기다림이요 끈기이자 달램이고 노력이다.


약 하나를 처방받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의사의 입장에서 약사의 입장에서 서로의 노곤함을 알아주는 일, 약병하나라도 더 넣어주는 일, 감사합니다 한마디 건네는 일, 아이에게 비타민을 하나 건네며 달래주는 일, 약으로 연결된 우리지만 서로의 입장을 알아주고 따듯한 눈빛을 건네는 일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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