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인테리어를 알아보고 돌아다닐 땐 늘 궁금했다. 매장 안 커튼으로 가려진 공간에는 무엇이 있을까? 간호사로 일하던 시절, 옷을 갈아입던 탈의실과 같은 공간일까? 커튼으로 가려져있어 궁금증은 더해갔다. 인테리어를 할 때 담당자에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조금이라도 가격을 조율하고자 벽으로 공간을 분리하는 작업을 취소할 뻔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인테리어 담당자는 개인공간은 작게라도 있는 게 좋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몸으로 느끼고 많은 사장님들을 상대하면서 이 정도는 기본 중에 기본이 아니었을까? 나 역시 과거에 개인공간을 없앨뻔한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작지만 개인공간은 꼭 필요해!라고 말이다.
처음 커튼 뒤를 궁금해한 나처럼, 책방에 찾아오는 이들은 (특히 궁금증을 못 참는 아이들은) 커튼 뒤에 숨어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한다. 쪼르르 와서는 나를 찾아낸다. 역시 커튼뒤는 누구나 궁금해하는 공간이 맞다. 다만 어른들은 궁금증을 참을 뿐이고 아이들은 궁금증을 못 참고 달려올 뿐이다. 나 역시 궁금했지만, 매장 직원에게 물어보지는 못했다. 거기서 뭐해요?라고 말이다. 그에 대한 답변을 짧게나마 답변해 드리자면..
1. 아이들의 개인공간
둘째 아이가 아침잠이 많은 편이다. 처음 매장을 계약하고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오면 (내가 수업하거나 책방 손님이 있는 경우) 어디에 있지? 잠시 머물 공간이 필요했다. 사춘기에 접어든 첫째는 자기만의 개인공간이 더욱 필요했다. 매장 안쪽에 벽을 치고 한쪽면에 문을 내어 커튼을 달았다. (인테리어작업 맨 마지막날에 인테리어 담당자가 달아주었다)
토요일은 유치원이 쉬는 날이라 아이와 함께 출근한다. 잠이 덜 깬 아이를 커튼안쪽 소파베드공간에 눕히고 나는 책방문을 연다. 다양한 소파베드를 검색하고 들였는데, 지금의 것도 마음에 들진 않는다. 작은 공간이라서 접을 수도 있고 펼칠 수도 있는 효율적인 베드라고 확신하며 주문했건만, 실제로 사용해 보니 고정도 잘 되지 않고 불편한 점이 있었다. 다행히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사용하고, 가끔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할 때 요긴하게 쓰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책수업이 있는 날에는 둘째 아이는 커튼 안 공간에서 유튜브를 보거나 간식을 챙겨 먹기도 한다. 첫째 아이가 방문한 날에는 서점포스기계로 바코드를 찍어 입고진행을 도와주기도 했다.
2. 나의 개인공간 (화장을 손질하거나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정도)
아침 책방에 출근하자마자 라디오를 켜고 안쪽공간에 불을 켠다. 컴퓨터를 켜고 프린터기도 작동시킨다. 글쓰기 수업이 있거나 원고작성을 검토하는 날에는 아침부터 컴퓨터사용을 많이 한다. 전단지 작업을 하거나 책방 운영이나 홍보에 필요한 스티커 작업을 하기도 한다. 미리캔버스라는 프로그램은 유용하다. 블로그에서 필요한 카드뉴스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아이들 이름이 들어간 스티커는 물론, 명함 제작, 심플 현판 제작, 전단지 제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만들 수가 있다.
아침 출근할 때 집에서는 비비크림까지 바르는데, 책방에 와서 카디건을 걸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아이와 함께 등원준비를 하면서 출근준비를 한다. 아이의 가방을 챙기면서 (나보다 준비물이 더 많다) 내 가방을 챙긴다. 커튼 안쪽 공간에는 컴퓨터 옆에 가방 둘 곳을 정해두었다. 출근하자마자 차키와 지갑이 들어있는 가방을 놓아둔다. 중간에만 고정이 되는 소파배드 위치를 바꿔볼까 생각해 본다.
3. 출판업무와 컴퓨터 업무를 하는 공간
대부분 원고를 검토하고 공저글쓰기자료를 만든다. 글쓰기수업은 4~8회 정도로 진행하는데, 오프라인 온라인을 병행한다. 직장인의 경우 평일시간을 내기가 어렵기에 주말반도 만들었다. 아침 일찍, 새벽에 온라인강의를 하기도 하고 저녁 무렵 강의를 하기도 한다. 이후에는 개인원고 피드백 코칭을 한다. 개인적으로 작성한 원고를 메일로 보내주면 글이 매끄러운지, 키워드나 사례는 적절하게 배치되었는지, 원고분량이나 제목 목차선정에 관해서도 피드백을 준다.
글 쓰는 습관은 말하는 습관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베어 든다. 코칭 1~2번 만으로도 글이 매끄러워지고 키워드를 잡은 이후 원고분량이 잘 나오기도 한다. 8년 간 원고를 쓰고 꾸준히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도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한몫을 한다. 글이란 건 써봐야 늘고, 일단 분량을 채우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4. 잡동사니, 책들을 준비해 두는 공간
안쪽 공간에는 트랙이 자리한다. 간식이나 요모조모 필요한 것들을 모아둘 수 있는 바구니도 여러 개 준비해 두었다. 책방이라는 공간을 운영하면서 안에서 먹고 생활하는 만큼 생활에 필요한 도구와 아이템들이 늘어갔다. 책방이벤트로 기획하는 다양한 물건들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업자를 내고 도매쇼핑몰에서 물건을 들여온다. 일반책뿐만 아니라 문구류도 사업자등록번호를 기재하면 거래할 수 있었다! (의외로 깨알정보)
책방에서는 책도 팔지만 다양한 볼펜이나 수첩, 캘린더, 문구류도 판매한다. 나도 사업자 등록을 할 때 문구류에도 체크를 해두었다. 초등학교 앞에 한두 개씩 자리한 문구점을 일일이 갈 필요가 없어졌다. 내가 도매가로 입고하고 아이들에게,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고르고 진열할 수도 있어서 여러모로 유용했다. 사실 책방하면서 좋은 점 중에 하나가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필요한 물건들은 도매가로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 역시 책방을 운영하면서 알았다. 시간의 자유로움이 있고 아이들과 (일반 직장 다닐 때에 비해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문구류나 필기류, 책도 도매가격으로 들여올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5. 분리수거의 공간
커튼으로 가려져 안보이긴 하지만, 언뜻언뜻 보였을 쓰레기공간도 있다. 닫아놓는다고 하는데도 어느 순간 정리안된 안쪽공간이 보일 때면 조금 당황스럽다. 그때그때 치우지 못해서 쌓여있는 종이쓰레기도 있고, 책을 포장한 비닐도 있고, 먹다가 바닥에 둔 스타벅스커피도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분리수거를 하는데, 외부일정이 있거나 신경 못쓰는 날은 금방 쓰레기가 찬다.
커튼안쪽 공간은 이렇게 여러모로 활용된다. 잠이 몰려오는 날은 잠시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컴퓨터업무를 한다. 바깥에서 정리 안 되는 짐들은 안쪽공간에서 보관 중이다. 대부분의 매장도 보통 재고정리를 위해 존재할 것이다. 휴식공간으로서도 좋다. 나는 지금의 책방에는 세면대를 설치하지는 않았다. 공간도 작고 냉장고와 소파배드, 컴퓨터업무용 책상과 진열대를 두는 것만으로 공간이 꽉 찬다.
자영업으로 일하면서 자영업이 보인다. 나의 작은 공간에서 아이들이 시간을 보낸 것처럼, 액세서리 전문매장에서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도 보게 된다. 아마 그 안에서 밥도 먹고 간식도 먹고 숙제도 하고 게임도 하겠지? 부대찌개를 포장하면서 사장님의 안쪽 작은 공간도 눈에 들어온다. 손님이 없는 시간이나 한가로운 시간에는 잠시 다리를 뻗고 그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겠지? 몇 년 전 방문간호사로 일할 때가 떠오른다. 제과점 안쪽공간에서 설명하던 기억이 말이다. 두 다리 뻗으면 끝인 아주작고 협소한 공간에서도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주 작은 공간이라도 나만의 개인공간을 더없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작은 책방 안쪽에 나만의 작은 공간이 있다. 커튼으로 살짝 가려진 그곳은 나의 휴식공간이자 밥 먹는 공간이자, 잠시 낮잠을 자기도 하는 공간이다. 바깥에서 컴퓨터업무를 할 수 없어 개인공간에 컴퓨터와 프린터기를 설치해 두고 원고작업을 하기도 한다. 강의를 하고 성교육을 하고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쉬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오롯이 나만의 휴식을 취한다. 단 10분이라도. 그러고 나면 다시금 에너지가 충전된다. 충분한 쉼과 휴식, 여유와 비움이 이루어질 때 나만의 에너지, 활력이 생긴다. 책방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대하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물어본다. 어떤 손님이 올까? 기대감을 가지고 오늘도 책방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