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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Jan 10. 2024

아뿔싸! 비오는 날의 택배

상가를 돌아다닐때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다. 위치와 역에서의 거리, 그리고 가장 중요한 월세라는 측면을 위주로 생각했다. 가능한 역에서 가까웠음 좋겠고 저렴했으면 좋겠고 일층에 있어서 시야에 들어왔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가장 컸다. 자영업을 해본적도 없고 책방을 운영해본 적도 없으니 당연한 시야였다. 나의 관점에서는 월세와 위치, 두 가지가 관건이었다. 실제 책방을 운영하면서 맞딱뜨리게 되는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책택배였다. 일주일 한두번은 택배가 온다. 일반 물품도 오고 책방이니 당연히 책도 많이 온다.

책방은 김포 구래역에서 가깝고 일층에 있다. 사실 상가를 볼 때 위에 천장까지 훑어보지는 않는다. 이층에서 연결되는 다리가 있으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비어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아닌게 아니라, 실제 책방 바로 옆 매장은 이층다리가 연결되는 아래쪽에 있어서 비오는 날 비를 피할 수 있었다! 심지어 지금도 공실이다. 구래역에 예미지상가는 공실이 여전히 많다. 인적이 드문 곳이기도 하고 그에 비해 월세부담이 높은 곳이기도 하다. 마음만 먹으면 그 중에서 골라서 들어갈 수 있는 상가이기도 하다.

어느날 비가 많이 왔다. 8월 중순에 책방을 오픈했고 그당시 장마시기와 겹쳐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택배주문을 했고 책을 기다렸다. 다음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순간 머릿속에 스쳐지나는 생각, 아! 책 택배!! 책은 종이라서 비에 맞으면 당연히 젖는다. 심지어 나는 책을 팔아 먹고 살아야하는 책방 주인아닌가? 택배가 도착했을 거라는 생각에 부리나케 집 근처 매장으로 달려갔다.  에어컨이 설치된 부근에 놓아둔다면 그나마 비를 피할 수 있었겠지만 (이층 통로와 연결된 부위는 다행이 비를 막아주었다. 나의 매장 반쪽은 비가 들어오고 반쪽은 비가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도착했을 당시 책택배박스는 잔잔히 내려오는 비를 맞고 있었다.


택배상자를 보자마자 집어들어 안으로 가지고 왔다. 이미 젖은 박스를 풀어보니 맨 위칸에 있던 책의 가장자리부분이 젖어있었다. 다행히 책 전체가 젖지않아서 다행이었다. 내가 주문한 책과 함께 사은품으로 지급해준 도서가 있었는데 그 도서에 비가 조금 스며들어있었다. 판매할 책에는 비에 맞은 흔적이 없어 다행이었다. 그날의 경험으로 그날이후 나는 책택배를 무조건 집으로 주문했다. 도보로 10분 남짓의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있고 27층 아파트내부라서 비에 맞을 걱정이 없었다. 책 주문을 하면서 비에 맞을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다음 상가를 계약할 때는 내부에 위치한 곳이나 비를 막아주는 공간을 고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캐노피를 설치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지만 바깥 외부는 강풍이나 폭설 등에도 대비해야 한다. 급기야 책방외부 시설을 설치해도 강풍이나 거센 비바람으로 책이 젖어버릴 수 있는 상황이 생길 수 있었다. 혹은 보관장소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 공간에 놓아달라고 택배측에 요청할 수도 있겠다.


다른 매장도 주욱 둘러보았다. 나처럼 외부에 있는 매장들은 거의다 오픈되어 있었다. 비가 오면 막아주는 시설이나 설치를 한곳은 거의 드물었다. 궁금해졌다. 비가오는 날은 어디에 택배상자를 놓아두지? 옷가게들도 옷이 젖지는 않을까? 별의별 생각이 머리속을 스쳐간다. 나처럼 비가 오는 날을 생각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캐노피를 설치하기에는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들지는 않을까? 묘한 동질감이 들었다. 자영업이라는 세계에 뛰어들면서, 그리고 월세를 내는 입장이 되면서 다른 가게나 상점에도 관심이 생겼고 '우리는 자영업'이라는 공통점을 바득바득 찾아보려고 애쓴다.

직장인과 자영업을 선을 그어 구분짓는 건 아니지만, 직장인으로 평생 살다가 자영업이라는 세계에 뛰어들어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지금은 자영업을 하는 이들의 삶에 더욱 눈이 간다. 요즘처럼 경기가 안좋다는 말을 들을 때면 아, 저도 그래요. 라고 맞장구를 치기도 하는데 반가운 소리일리는 없다. 직장인에서 자영업으로 넘어오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모든 이들이 그랬을것이다. 어쩔 수없이, 자영업이 아니면 안되어서, 뭐라고 창업해서 돈을 벌어야하니까 등등의 이유로 자영업의 세계로 들어온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과 대출을 끌어다 모든것을 쏟아붓는 것이 자영업이기도 하다. 기회를 보았거나 오랜기간 구상해왔거나, 이게 아니면 안될것 같은 절박함에 나만의 작은 사업을 시작하기도 한다. 이유는 각자 다양하고 다르겠지만, 모든것을 쏟아부일 정도의 의지와 노력, 정성, 시간을 쏟아붓는 일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만만치않는 일이다. 그렇다고 못할 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해야하는 일'이라면 하는거다. 해보고 부딪혀보고 깨져도보고, 이런저런 일들도 겪어보면서 '나라는 사장'도 성장하는 것일테니까.

 

요즘도 나는 책을 실어다나른다. 집으로 온 택배상자를 차에다 싣고 구루마를 끌면서 책방으로 실어나른다. 가끔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관리실에 맡기기도 애매한 위치이고 기사님에게 반쪽자리에 놔두세요 요청하기도 애매하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는 그마저도 젖어버릴 수 있기에) 책이 집에 도착하는 날은 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시간적으로 여유가 될 때 책방으로 옮긴다.

독서모임이 열리는 날, 다음 책이 급하게 필요했다. 독서모임을 하다가 잠시 책을 보는 시간을 가지고 나는 부랴부랴 책을 가지러 집에 다녀온 적이 있다. 주차된 차량에 잠시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집에 다녀왔다. 아마 이 글을 보면서 눈치를 챘을거다. 그래서 그때 늦게 왔구나~ 하고 말이다. 가까운 거리이긴 하지만, 집이 27층이라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이 생각보다 너무 오래걸린다. 고마운 택배전달시간과 맞물리기라도 하면 시간은 더욱 오래 걸린다. 책을 두번 나르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 또한 경험해봐야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어느 책에서 '비가 오는 날의 택배를 생각하면서 매장을 계약하세요' 라고 알려주겠는가? 매장이 일층이라서 좋은 점만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의 복병이 있었다.


나는 벌레를 싫어한다. 파리, 모기, 거미, 바퀴벌레까지. 다양한 벌레와 곤충을 접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더더욱 벌레는 싫고 무섭기도 하다. 파닥거리는 나방은 어떤가. 그에비해 남편은 덤덤하다. 내가 호들갑떤다고 생각한다. 아마 나에 비해 남편은 벌레를 마주한 적이 더욱 많았을 테고 친숙할지도 모른다. 일층에 문을 연 책방에는 수시로 벌레들이 방문했다. 내가 전혀 생각지않았던 의외의 고충이 바로 벌레였다.

특히 무더웠던 여름에는 땅과 바로 마주닿은 곳에 있어서 스물스물 책방 안쪽으로 벌레들이 기어들어왔다. 밤새 들어온 벌레들로 다음날 청소하려고 보면 벌레들이 자주 보인다. 책방 안쪽에 간접조명을 켜두고 가서인지 (홍보차원에서 켜두고 있다) 불빛을 보고 더 들어오는 것 같다. 벌레들을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빗자루로 쓸어담는다. 한번은 책방 앞에 세워둔 입간판위에 정말 커다란 사마귀가 매달려있는 것이 아닌가?!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오 마이 갓!!!

누구에게 부탁할 수도 없고 당장 이 사마귀를 처치해야만 했다. 내 책방에서 몰아내야만 했다. 책방에는 나 혼자이고 모든 걸 처리해야했다. 가만히 가만히 그저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다른 장소로 알아서 가주기를 바래고 바랬다. 아침에도 오후에도 해가 질 때까지 입간판위에 그대로 있었다. 속으로 불안감을 달래며 그렇게 그날은 퇴근하고 그 다음날 와보니 사마귀가 죽어있었다.

심지어 책방 문 안쪽에 사마귀시체가 덩그러니 있는게 아닌가? 오 마이 갓갓 !!! 책방 운영에 관한 모색을 하기에도 바쁜데 벌레 생각이라니. 제발 다른 곳으로 가길 바랬던 사마귀는 책방 안쪽에 놓여있었다. 몇 시간이고 바라보다가 결심했다. 빗자루를 들었다. 정말 있는 용기를 다 끌어모은 것 같다. 옮기다가 움직이면 어떻하지? 파닥거리고 날아서 나에게 오면 어떻하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사마귀에게 잠시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힘껏 빗자루를 들었다. 그리고 휘이휘이 저었다. 사마귀를 책방 바깥쪽으로 치우는데 성공했다.


벌레와의 사투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비오는 날의 택배상자 옮기는일도 당분간은 계속 될 것이다. 최근에는 눈이 엄청나게 와서 난생 처음으로 '내 매장앞의 눈'을 치워보았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내매장 앞은 내가 치우자' 였다. 눈을 쓸기에는 적당하지 않게 흐물흐물 거리는 빗자루지만, 나름 매장 앞의 눈을 치우는데 성공했다. 해가 쨍한 날도 비가 오는 날도 눈이 펑펑 오는 날도 책방 문을 열고 있다. 아침 출근길에 해가 쨍하니 나의 책방을 비추고 있을 때가 기분이 좋다. 오늘은 또 어떤 손님이 올까? 어떤 책을 권해줄까? 눈이 오는 거리를 치운 마음으로, 책의 손길이 닿은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책을 전하고 미소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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