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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Jan 11. 2024

엄마들이 숏커트를 하는 이유

짤깍짤깍 툭툭 칙칙

매일아침 화장대 앞 정리스팟에는 나의 퍼품이 자리한다. 머리를 감고 머리를 말리고 스킨을 칙칙 뿌린다. 내가 매일같이 사용하는 화장품들을 간단히 바르고 머리를 쓱쓱 빗어내린다. 숏커트를 한 지 7년째가 되어간다. 맨 처음 숏커트 한 날이 생각난다. 막연히 한 번쯤 관리 안 되는 긴 머리를 어떻게든 하고 싶었다. 아이를 육아하면서 치렁치렁한 머리가 불편하기도 했다. 엄마들이 머리길이가 점점 짧아지는 이유를 알겠다. 귀밑으로 항상 내려앉았던 머리카락은 어느새 귀를 넘지 않는 짧은 숏커트가 되어있었다. 굉장히 시원했고 간편했다. 무엇보다 머리 말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아 좋았다. 샴푸가 들어가는 양도 훨씬 줄어들었다. 이래서 한번 숏커트는 영원한 숏커트인가 싶다.


처음 숏커트를 하던 날은 어색하고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색함은 이후 1~2년간은 지속되었다. 하지만 숏커트를 아주 잘하는 미용실로 정착한 이후에는 1~2달에 한 번씩 기분전환하러 갔다. 머리손질하는 날은 감격주는 느낌도 좋았다. 스걱스걱 잘려나가는 머리카락들이 바닥에 후드득 떨어졌다. 가위질 소리에 편안함을 느끼고 스걱스걱 잘리는 소리가 참 좋았다. 나는 어느새 숏커트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일이 끝나던 퇴근하던 어느 날, 깜깜한 저녁이었다. 토요일에도 (격주로 쉬긴 했지만) 출근하고 평일에도 간호사로 일하던 시절에는 7시가 훌쩍 넘어 집에 도착했다. 머리자를 시간이 없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되어가던 무렵, 머리카락은 한없이 자라 있었다. 손톱처럼 머리카락도 언제 이렇게 자랐나? 싶을 정도로 쑥쑥 자란다. 매일 머리카락이 빠지고 또 그 자리를 새로운 머리카락이 채운다.

아빠를 닮아 머리카락도 굵은 편이고 양도 많은 편이다. 반면 남편은 머리카락이 얇고 숱이 조금 적은 편이다. 방바닥이나 거실바닥에 긴 머리카락이었을 때는 늘 머리카락이 눈에 잘 띄었다. 내 머리카락이다. 굵기도 굵고 길이도 길었으니 빠지는 족족 눈에 뜨인다. 매일같이 청소하는 것도 아니라서 (매일 청소할 수도 없다) 어느 순간 바닥을 보면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보인다.

관심을 두면 자주 보이는 걸까? 나는 청소에는 관심이 없다. 자랑질은 아니지만, 원체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그렇게 어지르는 스타일도 아니다. 매번 사용하는 장소가 정해져 있고 루틴처럼 장소를 이동하고 물건을 사용한다.

나만의 루틴이 생긴 거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짐이 늘어난다. 잡초와 같다. 흙만 있으면 어느 공간 어느 구석자리라도 잡초가 자라나는 것처럼, 집안 구석구석에 짐들이 늘어난다. 머리카락도 늘어난다. 내가 숏커트를 하고 머리카락의 양이 훨씬 줄어든 것 같다. 하지만 첫째 아이의 머리카락이 길어지고 양도 늘어났다.


지방에 근무하는 남편이 한 번씩 올라와 머리카락 지적을 한다. 나는 평소 (그래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바닥을 닦아준다) 바닥 머리카락에는 관심이 없다. 유독 남편눈에만 잘 띄는 이유는 뭘까? 최소한의 정리를 하고 아이들 식사와 끼니를 챙긴다. 등원등교준비를 하고 나의 출근준비도 한다. 설거지도 쌓이고 빨래거리도 쌓인다. 매일 할 일이 스멀스멀 쌓인다. 버릴 쓰레기나 잡동사니도 늘어난다. 함께 생활하는 공간인만큼 짐도 잡동사니도 머리카락도 늘어난다.


한두 달에 한 번씩 정리한다. 짐도 정리하고 머리카락도 정리한다. 아빠가 자주 미용실에 가는 이유를 알겠다. 조금만 자라도 표시가 나기 때문이다. 숏커트를 한 이후로 귀밑으로 머리카락이 자라는 게 느껴진다. 조금 길어졌다 싶으면 빨리 자르고 싶다. 한두 달에 한 번씩 미용실을 간다는 건 기분전환을 하기에 좋다. 긴 머리를 했을 때는 미용실 가는 일이 연중행사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머리자를 때가 되었구나 싶을 때 미용실로 향한다. 미리 예약을 해두니 편하다. 정해진 시간에 원장님의 손길을 받으며 편하게 샴푸를 즐기고 커트를 받는다. 머리손길하는 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이다. 온전히 내가 즐기는 시간이다. 왕비처럼 그날은 대우받는다.


책방에 별다른 수업이 없는 시간에 미용실을 예약한다. 무인책방으로 운영하면서 책방을 열어둔다. 돌보미선생님이 오는 시간에 미용실을 예약하기도 한다. 남자들은 긴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는 여자를 좋아한다는 말이 있다. 당연히 예쁘고 좋다. 나도 긴 머리카락이 나풀나풀거리고 좋은 향기가 나면 한 번 더 눈길이 간다. 또 보고 싶다.

내 몸을 건사하고 긴 머리카락을 말릴 시간이 충분하며, 아이육아의 도움을 받거나 배우자의 육아도움이 뒷받침되거나 머리카락이 떨어져도 청소를 자주 할 정도로 부지런한 사람이라면 긴 머리를 고수해도 좋다.

그렇지 않다면 짧은 단발도 좋고 숏커트도 좋다. 뒤로 한 번에 질끈 묶는 머리도 좋다. 긴 머리를 고수했을 때 첫째 아이는 하루종일 기다린 엄마의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잠이 들었다. 엄마의 머리카락이 편안함이었고 안도감이었으며 사랑이었다.

머리카락이 훨씬 짧아진 지금, 둘째 아이는 나의 귓불을 만지고 잠이 든다. 하루종일 엄마를 기다린 헛헛함을 머리카락이나 귓불등의 감촉으로 채우는 걸까?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표현해야지. 숏커트를 한 후로 아침시간이 훨씬 여유로워졌다. 편해졌다. 여유로워진 시간에 나는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오늘의 일과를 정리할 수도 있고 아침시간 글을 쓰기도 한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무엇보다 한두 달에 한 번씩 나를 사랑해 주는 시간을 자주 가질 수 있어서 좋다.


자주 잘라야 되니 나에게 자주 관심을 가지게 된다. 어떤 날은 따귀머리 소녀처럼 머리카락이 날아가기도 하고, 머리 안 감은 날은 사정없이 뻗치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의 숏커트가 좋다. 머리 하는 시간에 나를 돌볼 수 있어서 좋다. 한 번쯤 숏커트를 생각해 본 사람에게 넌지시 건네고 싶다.


쇼커트 한번 해보세요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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