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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이어도 우아하게

밥은 먹고 다닙니다

by 정희정

밥 잘 챙겨 먹고 다녀라.

밥은 먹었니?

밥 맛있게 먹어~

우리의 일상은 밥 이야기로 시작해 밥 이야기로 끝난다. 밥심으로 살고 밥심으로 하루를 버틴다. 엄마의 반찬과 어릴 적 즐겨먹었던 오징어 뭇국이 가끔 생각이 난다.

엄마가 되어보니 실상 하루 세 끼니를 챙겨 먹는다는 게. 아이들에게 챙겨준다는 게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 밥을 잘 먹는 나였는데.. 지금은 하루 한 끼라도 제대로 챙겨 먹으면 영광이다.


아침은 커피 한 잔이면 끝이고 아침 방문과 일을 하다 보면 벌써 12시다. 배에서 꼬르륵 나 배고파. 어서 먹어줘 하는 것 같다.

어느 날은 뜨근한 순두부찌개가 당기고 또 어느 날은 국수 한 젓가락이 먹고 싶다. 육회를 원래는 먹지 않는데 아는 지인분이 육회비빔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회사 지하 일층에는 고깃집이 있다. 점심시간에 가도 지글지글 고기 굽는 맛 좋은 고기의 향연이 펼쳐진다. 운 좋게 회사 상사가 고기를 사 준 적도 있다. 가끔 혼밥을 하러 오면 얼큰한 육개장을 먹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숯불 돼지 덮밥을 먹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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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불향이 제대로 배어있어 쫄깃쫄깃한 부드럽고 맛 좋은 고기를 입속에서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알싸하면서도 아삭아삭한 양파는 또 어떤가. 수줍은 듯 고기 아래 숨겨진 양파가 살포시 고개를 내밀고 젓가락으로 휘이휘이 저어 입안 가득 고기와 양파가 춤을 추었다.


또 어느 날은 노트북을 가지고 단출한 상에 가 앉는다. 함박이 전문인 식당가에 나 혼자서 가지런히 가지고 온 짐들을 올려두고 볶음밥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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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부터 눈여겨보거나 가보고 싶었던 곳들은 기억해 두었다가 혼자라도 찾아가 보는 것이다. 워낙 어릴 적에 엄마가 동생들과 함께 데리고 간 예술회관 2층에는 함박스테이크 집이 있었는데 몇 년 동안을 그 함박스테이크의 부드러운 감촉에 길들여져 있었다. 성인이 되고 독립한 후에도 그때 맛보았던 함박의 맛을 그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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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들르는 일산의 교보문고 서점에도 식당가가 있다. 오후 3시 늦은 점심을 하기 위해 들른 그곳에서 함박의 부드러운 감칠맛과 풍미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입안을 오물거리며 음식을 느껴보았다.


밥이란 건 함께 먹어도 좋고 혼자 먹어도 좋다. 눈치 안 보고 남의 속도를 따라갈 필요도 없어 좋다. 내가 평소 먹고 싶었던 메뉴를 정하고 내 속도로 맛을 음미해본다.

어떤 날은 정말 제대로 된 맛을 만나는 가 하면, 또 어느 날은 2프로 부족한 맛을 만날 때도 있다. 기분이 우울한 날, 일이 많아 피곤한 날 맛 좋은 음식을 만날 때면 또 어디선가 숨어있던 내 에너지가 나올 때도 있다. 기분이 울적하다가도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혼자여도 맛 좋은 음식을 대접해보자. 하루 한 끼라도 나를 위해 우아하게 꼭 꼭 씹어 먹어보자. 우린 소중한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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