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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May 08. 2020

혼밥이어도 우아하게

밥은 먹고 다닙니다

밥 잘 챙겨 먹고 다녀라.

밥은 먹었니?

밥 맛있게 먹어~

우리의 일상은 밥 이야기로 시작해 밥 이야기로 끝난다. 밥심으로 살고 밥심으로 하루를 버틴다. 엄마의 반찬과 어릴 적 즐겨먹었던 오징어 뭇국이 가끔 생각이 난다.

엄마가 되어보니 실상 하루 세 끼니를 챙겨 먹는다는 게. 아이들에게 챙겨준다는 게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 밥을 잘 먹는 나였는데.. 지금은 하루 한 끼라도 제대로 챙겨 먹으면 영광이다.


아침은 커피 한 잔이면 끝이고 아침 방문과 일을 하다 보면 벌써 12시다. 배에서 꼬르륵 나 배고파. 어서 먹어줘 하는 것 같다.

어느 날은 뜨근한 순두부찌개가 당기고 또 어느 날은 국수 한 젓가락이 먹고 싶다. 육회를 원래는 먹지 않는데 아는 지인분이 육회비빔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회사 지하 일층에는 고깃집이 있다. 점심시간에 가도 지글지글 고기 굽는 맛 좋은 고기의 향연이 펼쳐진다. 운 좋게 회사 상사가 고기를 사 준 적도 있다. 가끔 혼밥을 하러 오면 얼큰한 육개장을 먹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숯불 돼지 덮밥을 먹기도 했다.

숯불향이 제대로 배어있어 쫄깃쫄깃한 부드럽고 맛 좋은 고기를 입속에서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알싸하면서도 아삭아삭한 양파는 또 어떤가. 수줍은 듯 고기 아래 숨겨진 양파가 살포시 고개를 내밀고 젓가락으로 휘이휘이 저어 입안 가득 고기와 양파가 춤을 추었다.


또 어느 날은 노트북을 가지고 단출한 상에 가 앉는다. 함박이 전문인 식당가에 나 혼자서 가지런히 가지고 온 짐들을 올려두고 볶음밥을 주문했다.

이전부터 눈여겨보거나 가보고 싶었던 곳들은 기억해 두었다가 혼자라도 찾아가 보는 것이다. 워낙 어릴 적에 엄마가 동생들과 함께 데리고 간 예술회관 2층에는 함박스테이크 집이 있었는데 몇 년 동안을 그 함박스테이크의 부드러운 감촉에 길들여져 있었다. 성인이 되고 독립한 후에도 그때 맛보았던 함박의 맛을 그리워했다.

자주 들르는 일산의 교보문고 서점에도 식당가가 있다. 오후 3시 늦은 점심을 하기 위해 들른 그곳에서 함박의 부드러운 감칠맛과 풍미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입안을 오물거리며 음식을 느껴보았다.


밥이란 건 함께 먹어도 좋고 혼자 먹어도 좋다. 눈치 안 보고 남의 속도를 따라갈 필요도 없어 좋다. 내가 평소 먹고 싶었던 메뉴를 정하고 내 속도로 맛을 음미해본다.

어떤 날은 정말 제대로 된 맛을 만나는 가 하면, 또 어느 날은 2프로 부족한 맛을 만날 때도 있다. 기분이 우울한 날, 일이 많아 피곤한 날 맛 좋은 음식을 만날 때면 또 어디선가 숨어있던 내 에너지가 나올 때도  있다. 기분이 울적하다가도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혼자여도 맛 좋은 음식을 대접해보자. 하루 한 끼라도 나를 위해 우아하게 꼭 꼭 씹어 먹어보자. 우린 소중한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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