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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May 26. 2020

간호사는 염색하면 안되나요?

엄마간호사의 성장일기

나는 간호사다. 엄마간호사다. 예전부터 궁금했다. 왜 간호사는 염색하면 안되지? 간호사는 병원에서 순백의, 봉사의 정신을 지닌 아주 고귀한 이미지로 형성돼있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하는 일이 환자를 간호하고 돌봐야 하는데, 세균 감염의 위험 등으로 손톱을 길면 안되고 귀걸이도 찰랑찰랑 하는 것을 해볼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세 가지다 있다.


첫째, 염색이다.

정확히 말하면 노란색, 오렌지색, 보라색 빛깔의 염색 말이다.

며칠 전 브런치에서 본 글 중에 인상깊었던 내용이 있었다. 미쿡 생활 중 산부인과에 갔었던 내용이었는데, 그 곳에 있던 간호사가 머리 한 쪽을 시원하게 깍고(아마도 자유분방한 지역이라서 그렇겠지?) 숏커트한 간호사의 이미지가 나에겐 특히 더 와닿았다. 그래, 이거야. 어떤 이미지를 보고, 매개체를 보고 선을 따라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 듯 하다. 며칠 전 일도 그랬다.

쇼커트로 머리를 한 지 일년이 되는 시점이다. 딱 일년 전 나는 큰 용기를 먹고 치렁치렁하고 관리가 안되었던 단발머리를 싹둑 잘라버리기로 했다. 병원에서 면접을 보기 전이었는데, 웬지 나를 다른 모습으로 비추고 싶었던 것 같다. 큰 결심을 하고 숏커트를 자르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설마.. 설마.. 내가 해도 될까? 이대로 머리카락을 밀어 버려도 될까? 그렇게 일년을 지내는 동안, 나는 한 두 달에 한 번씩을 미용실을 찾는다.

그도 그럴 것이 숏커트로 밀게 되면 뒤 쪽 목부분이 머리카락들이 자주 자라나는데, 보기가 싫었던 것이다. 집에서 바리깡을 하기는 더더욱 싫었다. (사실 어떻게 하는 지, 혼자서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 번은 왁싱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곳의 분위기와 왁싱을 해주는 사람의 손길이 크게 나에게 편하지가 않았다. 아마도 내 마음에 드는 좋은 곳에서 했다면 일년에 몇 번 오는 행사처럼 나는 왁싱이벤트를 받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자주 숏커트 머리를 고수하기 위해서 자주 헤어샵을 들락날락했다. 며칠 전도 방문을 나가기 전 30여분의 시간이 남았고, 머리 뒤와 앞 머리카락이 자라 눈을 찌를 정도에 이르렀다. 아.. 언제 가지? 하다가 시간이 있을 때,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머리를 손질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싹뚝, 싹둑, 손질하는 가위질 소리가 좋다. 귀를 덮고 있던 머리카락이 시원하게 잘려나가는 느낌이 기분이 좋았다. 앞 머리, 뒤 머리, 옆 머리를 손질을 받으면서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래 머리 손질할 때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이 주인은 웬지 정감이 가고,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줄 것 같았다. 사람에게도 통하는 주파수가 있는 듯 하다. 주인의 아들도 10살, 나의 딸도 10살이라며 근처 초등학교로 이사올 생각이 있다는 등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나의 머리 스타일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염색을 해보는 건 어때요?"

"아.. 염색이요? 그것도 좋겠네요"

"메트 브라운 색도 잘 어울리실 것 같아요"

정말이었다. 나는 그동안 염색을 해 본적이 없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염색을 했냐는 주인의 말에, 20대 시절 젊을 때라고 말하고 말았다. 정말 그랬다. 대학교 시절 오렌지 빛으로 탈색(염색)을 한 적이 있었는데, 대학교를 졸업하고 간호사가 되면서 염색이라는 '염'자도 꺼내볼 수가 없었다. 아니, 아예 생각해볼 수가 없었다. 병원에서 노란색 머리 간호사라니! 상상이 되는지?


그런데 지금의 나는 무언가에 크게 쿵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왜 염색을 할 생각을 못했지????? 내 안의 질문들이 쏟아졌다. 그동안 나를 싸고 있던 껍질이 바스슥 깨어져버리는 느낌이랄까? 그동안의 통념과 관습들이 나를 얽매어 온 것을 안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고 나의 생활이 그렇게 나를 고착화시킨 것이다.

일년 동안 수 없이 이 집 저 집을 다니며 헤어샵을 방문했지만, 유일하게도 이 곳에서 '염색'을 먼저하라는 말이 내 귀에 쏙 들어왔다. 보통의 헤어샵에서는 볼륨 파마를 먼저 하라고만 했지, 염색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던 것이다.


브런치에서 미쿡 간호사의 어~메이징한 머리스타일, 헤어샵에서의 염색을 추천한 일.. 이런 것들이 사선처럼 엮어서 내 마음에도 진동파를 일으킨 것 같았다. 순백의 단정한 간호사라는 고착화된 이미지를 내가 깨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작은 미미했지만(쇼커트를 하기까지도 사실 큰 결심이었다), 아마도 조만간 나는 매트브라운 색의 염색을 하고 다닐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일년동안 나에게 맞는 헤어샵을 찾아헤맸는 데 이번에 제대로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둘째, 네일 이다.

간호사는 언제나 손톱이 단정해야 한다. 엄마도 그렇다. 나는 간호사도 해보고 엄마도 해보니, 정말 그렇더라. 손톱이 조금이라도 자라나면 상처가 될 수 있다. 특히 갓난 아기를 대하는 엄마는 더더욱 그렇다. 뱃 속에서 갓 태어난 조그마한 생명체를 안고 있을 때, 혹시라도 나의 잘못으로 아이에게 상처를 낼 까 두려웠다. 그나마 임신 중에 하고 있던 팔찌, 귀걸이, 반지를 모두 빼 버렸다. 그리고 손톱을 매번 정리했다.

간호사도 그렇다. 병원에서 일할 때는 해야할 검사도 맞고 처치해야 할 응급상황들이 수시로 벌어진다. 환자에게 주사를 놓아야 하는데, 내가 만약 빨간색? 핑크색? 좋아하는 색의 네일관리를 받았다면? 환자는 급속도로 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깨져버릴 것이다. 그 무엇보다 손톱을 매개로 감염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늘 청결하고 손톱 관리를 하고, 손을 씻어야 하는 이유이다.

간호사로 일할 땐 못하다가 아이를 키우면서 잠시 잠깐 잠깐 쉬는 시기가 있었다. 그 때 네일관리를 받아 본 적이 있다. 물론 화려하게 장식된 네일 젤이라든가 하는 것은 아직 시도해보진 못했다. 사시사철마다 네일관리를 받고, 발톱에도 예쁘게 콕콕콕 장식을 하고 길거리를 활보하는 멋쟁이들을 부러운 눈길로 보기도 했었다. 비용도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다만, 나도 한 번 시도해보았고 특별한 건 없다는 생각이다. 간호사라는 옷을 입고 있을 때는 아무래도 잠시동안 자제하고 있으려 한다.


셋째, 찰랑거리는 귀걸이다.

나는 귀걸이를 하기에 상태가 좋은 귀 가 아니다. 무슨 말이냐면, 20대가 되자 마자 귀를 뚫었는데 (무엇이든 처음할 땐 두근두근!!) 어떤 귀걸이를 해도 나의 귀를 반겨주진 않았다. 진물이 나고 퉁퉁 붓기 일수였다. 특정한 한 두 개의 귀걸이를 빼고는 나에게 맞지 않았다. 금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매장에 즐비한 예쁘고 신기한 귀걸이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내가 하고 싶은 귀걸이들은 나의 귀에 맞지 않았다. 알러지 처럼 귀가 붓고 한 번 꽂아놓으면 진물이 나는 것이다. 그렇게 이것 저것 시도해보면서 20대, 30대 시절을 보내었고, 아기를 낳고는 귀걸이는 아예 서랍속에 장식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유일하게 매일 착용한 귀걸이가 있었는데, 둘째 아이를 임신하기 전까지도 내가 매일같이 착용한 귀걸이였다. 나에게 맞는 귀걸이를 찾기가 쉽지 않았고, 아이를 돌보고 일을 하는 입장에서 여유롭게 귀걸이를 고르고 착용할 시간조차 나에게는 사치였기 때문이다. (귀찮다고 해두자. 솔직히..)

그렇게 나와 한 몸이었던 귀걸이는 언젠가 귀걸이를 빼놓았다가 뒤에 고정부분(아주 조그맣고 귀 뒤쪽에서 귀걸이를 고정시켜 주는 부분)을 바닥에 떨어뜨린 것이다. 남편의 컴퓨터 방 탁자위에서 떨어뜨린 것인데, 한참을 찾아도 도통 보이지가 않았다. 결국 그렇게 청소기에 휩쓸려버렸는데, 그 뒷 부분이 없다는 이유로 유일하게 내가 착용하고 애정했던 귀걸이와는 이별을 하고 말았다.(귀걸이 전문점에 가서 뒤 부분만 얻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정도의 열의는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염색을 하고 치렁치렁한(꼭 치렁까진 아니어도 됀다. 나를 돋보이게 하는 반짝이는 귀걸이면 된다) 귀걸이를 한 숏커트한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니, 웃음이 난다.

숏커트한 지금의 내 모습이 너무도 편하고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염색을 할 수 있고, 귀걸이도 조만간 시도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자의 일생을 잠시 생각해보건데, 학창시절(중고등학생)까지는 단발머리를 고수했고, 20대 대학교를 가고 남친을 만나는 시기엔 치렁치렁한 긴 머리를 고수한다. 30대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는 치렁했던 머리를 고무줄로 질끈 묶어버리고(모유수유를 하고 아이를 돌보다보면 당연한 수순), 그리고 아이가 어느정도 커갈 무렵 다시 염색을 하거나 머리를 손질하기 시작한다. 40~50대 줄에 이르면 쇼커트를 하거나 파마를 많이 하는데, 이젠 나 역시 이해가 된다. 숏커트하는 거, (나의 엄마도 그랬다. 짧게 자르고 파마를 하셨다) 정말 너무너무 엄청 편하다.

다음 이야기는 쇼커트에 대해서 써볼 까 한다.


수 많은 병원에는 수 많은 간호사가 있다. 흰색의 각자의 유니폼을 입고 지금 이 순간에도 분주하게 이동하고 환자를 간호하고 있을 간호사들이 떠오른다. 나의 친구들, 나의 동기들, 선후배들.. 하고 싶은 것들을 묵묵히 참고 간호사라는 옷을 입는 이 순간 지금의 역할과 마음가짐, 몸가짐에 최선을 다하는 그들이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라는 사람은 염색도 하고 싶었고, 네일 관리, 치렁치렁한 귀걸이도 하고 싶었다(그래서 5년간 몸담았던 대학병원에서 뛰쳐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이 역시도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마흔을 앞에 둔 요즘, 그동안 나를 싸고 있는 관념들이, 생각들이 조금씩 벗어지는 기분이 든다. 이전에는 낼 수 없던 용기가 생긴다고 해야할까? 그것 역시 자신감, 자존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이에 대한 자신감일 수도..)

나를 꾸미고 싶고 나를 돋보이게 한다는 건 모두 나를 사랑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금의 여유가 생기면 할 수 있는 생각들이다. 매일 새로운 장소를 가고, 새로운 것을 접한다. 오늘도 새로운 곳에 갈 것이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볼 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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