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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May 31. 2020

주사 잘 놓는 법, 그딴 건 없지만

간호사 이전에, 나라는 사람

나는 간호사다. 솔직히 말해 나는 주사를 놓기를 싫어하는 간호사다. 더욱 엄밀히 말해 주사 앰플을 따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다. 간호사로 일한지는 10년이 넘은 것 같다. 그 동안 참 많은 병원들을 다녔다. 참 많은 직장을 다니기도 했다. 병원 근무로테이션이 싫어(처음 입사한 강동경희대병원은 정말 운이 좋게도 나이트근무 전담이 따로 있었다! 운이 좋게 데이, 이브닝 근무만 하기도 했었지만,,) 상근직 회사를 들어가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주사를 잘 놓을 수 있을까? 


하나. 하다 보면 는다.

뭐든 그런것 같다. 정말 그렇다. 간호사도 그렇고 엄마란 역할도 그렇다. (요리는 예외...) 나는 2010년에 처음 대학병원 간호사로 입사했다. 한방병동을(편할 것 같아서) 지원했지만, 소아과병동으로 발령받았다. 소아과라.. 나는 아이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소아과를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간호학과에서 실습을 할 때 전체 여러 개 과를 모두 도는데, 딱히 소아과를 지망해야지, 원해본 적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소아과 병동에 배치가 되고 나니 주사부터가 겁났다. 사실이다. 아기들은 (특히 대학병원이라 생후1개월 된 아기부터 입원하는 경우도 많다) 혈관 자체가 성인과 다르기 때문에 신규 초짜 간호사인 내가(?) 이곳에서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그저 묵묵히 뒤에서 하는 걸 많이 지켜보고, 시키는 대로 혈관주사에 도전해 보고 실패해보고 죄송합니다. 말하고. 그런 과정의 연속이었다.

내가 아니면 안되는 경우도 있었다. 팀널싱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어느정도 일에 익숙해지고 나면 내 담당 환자가 되는 것이다. 소아과는 그 당시 산부인과 병동도 함께 있었다. 새로 개원한 대학병원이라 환자가 적고 채용된 인력도 적다보니 여러개의 과를 동시에 병동에서 간호한 것이다. 다행히 산부인과 성인 환자들을 대하면서 IV (intra venous: 정맥주사) 기술을 나름 터득하게 되었다. 주사의 종류도 여러가진데 18G는 보통 수술 전 환자들에게 삽입하는 크기다. 수술하면 출혈의 위험성이 늘 도사리고 있고 수혈은 기본적으로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큰 혈관으로 수혈을 해야 하는데, 18G가 수술용 게이지다.

산부인과 수술을 그 외 준비할 것이 많았다. 수술부위(특히 자궁,난소수술) 주변을 shaving 하는 것 부터, foley catheter를 삽입하는 전반의 과정을 준비해야 했다. (수술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소변이 배출되도록 요도관을 삽입하는 것이다).

소아과는 24G가 대부분이다. 아주 작은 아기들에게도 24G는 삽입이 가능하고 성인에 비해 길이도 짧고 만져지는 촉감자체도 쉽지 않아 보통 2~3년은 많은 경험을 통해 혈관주사를 능숙하게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이다.


두울. 주사는 용기다.

요즘도 그렇다. 주사는 용기다. 내가 할수 있을까? 실패하면 어떻하지? 이런 마음은 당연하다. 나도 매번 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으로 바꾸려고 한다. '한번 해보지뭐!'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면 된다(무엇이든 그렇지만..) . 하지만 우리는 환자를 마주대하는 입장에서 쉽지만은 않다. 정확히 딱 보이고 만져지기도 하고, 정말 좋은 혈관인데도 불구하고 실패하는 경우가 생긴다. 우리도 사람이기에 100프로 완벽한 성공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보호자(특히 소아과)가 아이에게 주사놓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고 한번에 제발 성공해주세요.. 라고 말한다면 부담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런 영향을 좋지 않다. 주사는 마음이 가벼워야 하고 용기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패하더라도 "한번 더 해볼게요!" 하는거다. 베짱도 필요하다. 보통 3년이 넘는 어느정도의 경력이 생기면, 실패란 자연스럽다 라는 이치를 깨닫게 된다. 내가 왜 이것도 못하지? 정말 딱 보였는데.. 한번에 할 수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나를 자책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자신도 나를 탓하고 있는데, 거기다가 보호자가 "아니, 혈관을 왜 그렇게 못 찾아요? 다른 간호사 없어요??" 이런 말을 들으면 더욱 의기소침해 지는거다.


세엣. 주사는 감정소모가 큰 일이다. 부담을 주면 잘 할 수 있는 데도 실패한다!!!!(특히 소아과는)

감정을 마주대하는 일. 내가 그렇다. 요즘 하는 일이 그렇고 주사를 놓을 때도 마찬가지다. 전화상담을 받으면 단순한 상담은 괜찮지만(그렇지만 주말,휴일, 업무시간외 전화는 곤란하다. 아무리 간단한거라도 연락이 오면 스트레스가 된다), 내가 당장 해결해줄 수 없는 온갖 잡다한 걱정거리와 불만을 나에게 토로하면 나 역시도 감정소모가 큰 편이다. 위축되고 우울해진다. 그 영향을 오롯이 가족들에게 간다. 나는 이런 감정의 전가가 정말 제일 싫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일은 일, 가정에 돌아오면 일에 대한 생각은 바깥에 두고 오려고 한다. 일을 집으로 가져오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환자를 대하고, 고객을 상대하는 모든 직업이 그렇지 않을까? 나의 남편도 그렇고.. 함께 일했던 간호사가 그런말을 한 적 있다. 
"한번에 성공하라고 부담주면 더 긴장이 되서 못 하겠다고. 감정노동자라고." 맞는 말이다. 나도 한번에 하고 싶지, 두 번 세번을 찌르기 싫다. 내 담당이고 내가 할 일이기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안좋은 감정이 결합되면 주사를 잘 놓을 수 있는데도 실패하는 거다. 


경력이 많다고 한번에 성공하는 건 아니다. 성공확률은 높아지겠지만, 선배간호사도 실패한다. 그리고 다시 시도한다. 주사라는 스킬은 감정이 어우러진, 용기와 당당함을 필요로 하는 작업인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 주사를 놓는다. 주사 잘 놓는 방법 따위는 없다. 그저 묵묵히 환자를 마주하고 토니켓을 묶고 보이는, 만져지는 혈관에 45도 각도로 (포를 뜨듯이) 바늘을 부드럽게 삽입하면 된다. 이런 모든 과정은 이미 간호대학에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아는 것 처럼, 실전이 더욱 중요한 IV injection. 어찌 보면 무모하지만 또 누가 (잘 놓으라고! 한번에 성공하라고!) 부담을 준다면 그건 간호사에게 최대의 실수를 하는 것이다. 부담을 주지 말지어다. 또한 간호사 역시 한번, 두번(혈관의 위치가 정확하고 확실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찔러볼 것) 해보고 그때도 실패할 경우는 반드시 동료간호사나 선배간호사에게 손을 바꿀 수 있도록 요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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