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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Oct 21. 2024

책꽃 필 무렵

책방대표이고 책을 씁니다

토요일 오전시간, 둘째아이와 나설 준비를 한다. 오늘은 경기부천에 위치한 모알보알서점에서 북토크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미 한두달 전부터 예정된 일정이었다. 예스24는 온라인서점으로도 유명하지만, (최근 한강작가님의 책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던 당일 서버가 마비되기도 했다고 한다) 책방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책방북토크로도 굉장히 주도적으로 마케팅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나 역시 작년 8월에 책방 문을 열고, 벌써 5차례 예스24 책방콜라보로 작가님들을 초청해 책방에서 북토크를 열기도 했다. 그림책 전문작가님도 있었고, 출판사 대표님도있었다. 영어와 관련한 노하우를 알려주는 작가님, 소설을 쓰고 여성의 글쓰기에 관해 재미난 이야기로 북토크를 끌어준 작가님도 있었다. 지난 일년 간의 일을 반추해보며 북토크가 열리고 들뜬 사람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북토크를 열고 진행하고 관객을 모집해보았기에, 북토크라는 행사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다. 내가 운영하는 책방에서 북토크를 진행했다면, 이제는 내가 직접 북토크현장을 방문할 차례다. 책방 대표의 입장에서 작가 겸 강사의 위치로 자리가 바뀌는 순간이다. 말을 듣는 입장과 말을 하는 입장은 사뭇 다르다. 어제 열린 모알보알 서점을 방문하기 전 메이크업을 먼저 받으러 간다.


일종의 의식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오늘 마주할 독자들을 대하기 전, 메이크업을 받으면서 마음의 준비를 한다. 이미 그림책성교육 강의는 익숙하지만, 매 순간순간 설레고 새롭다. 차분히 메이크업 받을 자리에 앉아 톡톡 두드리는 손길을 느낀다. 평소 아주 간단한 화장을 한다면, 이날은 꼼꼼한 밑바탕부터 눈썹을 다듬고, 속눈썹까지 붙인다. 메이크업을 한다는 건 내 비용을 투자하는 것이고, 나만의 자신감을 장착하는 일이기도 하다.


둘째아이가 아이돌보미 선생님집에서 아침잠을 더 자고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 나는 북토크를 다녀오는 일정이다. 실제 북토크는 한시간 정도 소요되지만, 아이를 돌보미선생님 집에 데려다주고 메이크업을 받고 이동하는 모든 시간을 합치면 5~6시간 정도를 넉넉히 생각해야 한다. 하나의 강의와 북토크를 소화하기 위해 미리 강의자료를 검토하는 것은 기본이다. 북토크를 하면 할수록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사람과 의견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유난히 빛나는 아침햇살을 받으며 직접 차를 운전하며 경기도 부천으로 향했다. 김포에서 부천까지는 한시간 전후가 소요된다. 토요일 낮시간이라 늘 정체하는 구간을 지날 때는 내심 늦을까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차를 운전하는 일이 제법 많다. 서울경기권에 강의가 잡히는 날에는 차 안에 구두와 자켓을 늘 상비약처럼 챙겨두기 때문에 자차로 방문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 (아마 다른 강사님들도 그럴 것이다) 다만 장거리 운전을 하는 경우도 제법 있어서 컨디션관리를 잘해야 강의일정을 소화해낼 수 있다.


모알보알서점은 오밀조밀한 주택가 1층에 위치해있어서 차를 운전하며 동네를 쭈욱 둘러보았다. 주차할 공간을 찾아보았지만, 주말이라서 그런지 자리가 없었다. 마침 근처 주민센터 주차장이 주말이라 빈 공간이 있어서 주차자리에 차를 대놓고 (여기까지 카페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제가 테이블에 올려둔 영어필사에 관해 묻고, 같은 관심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멋드러진 펜과 따듯한 감동이있는 티백까지 선물받은 운좋은 날이었습니다. 아침 글에 이어 작성합니다) 네비에 찍히는 모알보알서점을 따라 나섰다. 아주 가까운 근처에 모알보알서점이 있었다. 보통의 서점은 2층이나 건물위쪽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고, 또 어느책방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1층에 자리한 서점들도 있었다. 나도 경기도 김포에서 1층에 상가자리를 계약해 작은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데, 1층과 다른층만이 가지는 장점과 단점이 있는 듯하다.

최근방문했던 서점들은 위층이나 반지하에 위치해있었는데 오랜만에 1층에 자리한 서점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모알보알서점이 한눈에 딱 들어왔다. 입구 간판에는 그림책성교육 북토크가 열린다는 예쁜글귀와 나의 이름이 가지런히 적혀져있어 눈길을 끌었다. 방문하자마자 이렇게나 환대받는 기분이라니. 내심 반갑고 기쁜마음이 들었다. 서점에는 북토크에 참여하는 분들이 이미 자리해있었다. 문을 열고 조심스레 인사를 건넸다. 밝은미소의 책방 대표님이 맞이해주었다. 강의하기 전 꼭 화장실을 들리는 습관이 있는데, 안쪽 화장실을 안내받고 작은공간을 둘러보았다. 화장실 한켠에 놓여진 라디오인가? 오르골인가? 작은 기계가 눈이 들어왔다. 대표님이 작은 공간 하나에도 이렇게나 세심하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작은 음악소리를 낼 것같은 기계는 어쩌면 책방에 온 이들과 화장실에 들어온 이를 함께 배려하는 작은 아이템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며칠 전 목소리가 안나와 애를 먹었는데, 다행히 오늘아침에는 목소리가 나왔다. 북토크현장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려면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걸 매번 느낀다. 오늘도 북토크를 시작하고 목소리이야기로 운을 떼면서 함께 자리한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체가 그림책성교육이라서 평소 자녀를 양육하고 있거나, 혹은 자녀가 이미 성장했지만 그림책에 관심이 있거나, 학교나 기관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교육을 하는 선생님들이 주로 방문을 하는데 이날도 그랬다.  


 고등학생인데 스킨십을 너무 좋아한다는 아이, 중학생 자녀를 키우는데 어떻게 처음부터 접근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질문, 남자아이들이 용변을 볼 때 변기에 오줌이 묻어나서 청소하기 힘들다는 사연, 나의 책 <그림책으로 시작하는 성교육>을 읽고 '음순' 음경이라는 정확한 용어를 가정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다른이들이 함께 자리하는 자리에서 음경이라는 표현을 써서 주위사람이 놀랐다는 사연 등등. 다채로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상황이고 궁금했던 사항들이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방향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성교육이 전해지면 좋은지를 논의하는 시간이 흘러갔다.


누구나 부모는 처음이고, 아이를 키워가면서 반복해나간다. 육아도 그렇고 그림책도 그렇다. 성교육은 더 그렇다. 내가 늘 강의때마다 전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다. 누구나 처음이라 서툴고 어색하고 어렵다고. 성교육은 아마 더 그럴거라고. 우리도 어릴때 제대로된 성교육을 받아보지못해서 나의 자녀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전해야 하는지 알지못하는 거라고. 그래서 아이와 함께 '배워나가는 입장'이라고 생각하면 좋다고 이야기한다. 실수하고 넘어지면서 앞으로 나아가듯 아이와 발맞추어 함께 성교육을 배워나가면 된다. 하나의 육아서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이런책도 보고 저런책도 보면서, 나의 상황에 나의 가정에 맞는 방식을 실천해보면 된다. 그러다보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자녀의 입에서 나올수도 있고, 그렇게 부모와 자녀는 내 주변에 성교육을 전하는 성교육메신저가 되어가는 것이다.


책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


강의를 다마치고 소감후기를 발표하는 시간에, 함께 참석한 남자분이 전하는 말에 또한번 감동받았다. 강의를 시작할때만 해도 어색하고 말하기부끄러워한 모습이 있었는데, 강의후반부에는 콘돔과 피임,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방식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어느새 성교육을 전하는 메신저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심 뿌듯하고 기뻤다. 숨기지않고 있는그대로 전하는 모습이 바로 이런것이 아닐까?

아빠도 엄마다 처음이라서 잘 몰랐었는데, 이제 너희와 함께 배워가려고 해. 책을 통해 그림책을 통해, 나의 몸과 마음이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는 부모가 되고싶다는 메시지를 우리는 함께 전하고 있었다. 모알보알이라는 작은 서점에서 성교육메신저들이 강한 메시지를 시작하고 있었다. 부모의 인식이 먼저바뀌면 학교나 기관이 따라온다는 말이 바로 이런의미다. 내주변에 의식이 깨인 사람이 있다면, 그 주변은 서서히 성교육이라는 메시지로 물들어간다. 음지가 아닌 양지로 아이들을 바르게 이끌어나갈수 있는 힘이되고 가이드가 되어주는 것이다.

부모가 창피해하면 아이도 창피해한다.


파워레인저 처럼, 성교육메신저가 된 우리는 그림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함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오늘 북토크라는 기회의 장에 함께 참석해준 분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행운아라고. 이런 자리에 참석하는 것 자체가 성교육의 시작이고, 엄마(아빠)를 시작으로 여러분의 자녀도 자연스럽게 성교육메신저가 될거라고 이야기했다. 부모와 관심과 의식의 변화는 자녀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부모의 관심과 사랑과 배움을 전해받은 아이는 분명 훗날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제대로된 성교육메시지를 전해주는 멋진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책꽃 필 무렵 이란 제목은 부천을 가는 길에 우연히 마주한 가게이름을 보고 떠오른것이다. 그 식당의 상호명이 "돈꽃 필 무렵"이었다. 빨간신호등에 정차한 동안 발견한 그 메시지를 보고 아! 어쩜 이렇게 잘 지었지? 생각하면 순간적으로 사진에 담아냈다. 메밀꽃필무렵 이라는 멋진 제목을 따라 돈꽃필무렵, 책꽃필무렵을 생각해낼 수 있다. 오늘아침 우연히 카페에서 마주한 필사에 관심있는 청년처럼, 내가 평소 정성과 시간을 들여 하고 있는 일은 또다른 기회와 인연과 연결이 된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는 말이 있다. 평소 노를 열심히 저으면 연습하던 사람은 물이라는 기회가 왔을 때 힘껏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평소 아무것도 하지않은 채 물만 기다린다면 그 배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모알보알서점에서 그날 참석한 분들과의 만남을 위해 나는 이때껏 강의를 하고 성교육을 하면서 글을 적어오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평소 말하고 글을 쓰고 유투브를 찍으면 단련되어 온 시간들이 우연한 기회에 좋은 강연의 자리를 만나 성교육이라는 메시지를 전할수 있게 된 것처럼, 평소 꾸준히 필사하고 연습해오는 시간들은 다른사람은 모르지만 차곡차곡 내안에 쌓이고 축적된다. 시간과 정성과 노력이 길들여진만큼, 나만의 자산이 되고 무기가 된다. 하루 단 10분이라도 꾸준히 하고싶은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보자. 없다면 이제부터라도 함께 시작해보자. 그 시작은 10년 뒤 나만의 무기가 되어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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