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그림책 하나를 들고 길을 나선다. 나의 아침 출근길은 늘 책과함께 시작한다. 어느덧 김포에서 책방을 운영한지 일년이 넘었다. 심적으로는 10년이 된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책방을 운영하게 될줄 알았나? 학창시절에 유난히 책을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수진이는 글씨도 동글동글 이쁘게 적어나가는 친구였다. 편지를 주고받고 시절, 수진이가 적어준 편지는 그 자체로 빛이 나기도 했다. 글씨를 한번더 보고 싶어서 편지지를 펼칠 정도로 글씨 하나에도 정성이 묻어났다. 책과 친하던 수진이는 책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에게 <모리와 함께한 일요일> 이라는 책을 선물해주었다. 당시 베스트셀러로 인기가 치솟던,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그 책을 나에게 선물해준 것이다. 책에 담김 마음을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야 알았다.
어쩌면 내 주변에는 책과 함께하는 사람이 늘 있었던 것 같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보낸 수진이가 그랬고, 내 여동생 은주가 그랬다. 동생은 나와는 다르게 어릴때부터 책을 참 좋아했다. 성인이된 이후 들어본 여동생의 말은 이러했다. 초등학교에 가서 큰 흥미나 재미를 못 느꼈는데, 유독 학교도서관에 가면 책이 많이 있으니 그 곳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고 이야기한다. 정말? 그랬었나? 터울이 1살 차이인 내동생과 초등학교도 꽤나 긴시간 함께 다니고 어울렸었는데, 내 기억에는 초등학교도서관이 기억나지가 않는다. 학창시절에 운동회 준비를 했던 기억, 합창부에 들어가서 노래를 따라 불렀던 기억, 어린 나이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나를) 따돌림했던 씁쓸한 기억을 가지고 있던 나의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같은 공간, 같은 환경이었지만 내동생을 책을 참 좋아했고, 나는 책과 친하지않았다. 책에 담긴 마음과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그 주변에 전해지리라 생각한다. 동생이 어떤 책을 보든말든 관심도 없었지만, '내 동생은 책을 참 좋아해' 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것만으로도 책이 함께 하게 될거라는 일종의 사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마음 속 깊이 '나도 책과 친하고 싶어' 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잔잔한 호수 위에 작은 돌멩이들이 하나 둘 던져지는 어느 시점엔가, 내 안에도 책이라는 메시지가 조금씩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책에 대한 편견은 재미있는 책을 만나고나서 깨지기 시작했다. 어려웠던 책에 대한 이미지는 다양하고 읽기쉬운 에세이, 자기계발 서적을 통해서 변화되기 시작했다. 책을 다루기 어려웠던 내가 독서노트를 적으면서, 책을 사서 책의 귀퉁이를 접어놓는 것을 시작으로 책이 다루기 쉬워졌다. 드디어 내가 책과 친해지게 된것이다.
김포의 작은도서관에서 책을 만나고 아이와 함께 골목골목을 누비며 그림책을 만나기 시작했다. 한적한 카페에 놓여진 '수다씨' (EQ의 천재들 시리즈) 그림책을 만났고, 유치원 근처 도서관에서 다양한 그림책을 보기 시작했다. 당시 새로 문을 연 일산의 교보문고 서점은 나와 아이에게 최고의 행복한 공간이었다. 잔잔한 오르골소리가 매장안을 휘감았고, 은은한 불빛 아래에서 아이는 좋아하는 책을 고르고 털썩 자리에 앉아 책을 펼치기도 했다. 서점과 함께 하는 공간 옆에는 키즈카페와 식당이 함께 있어, 책도 보고 놀기도 하고 맛있는 걸 먹기도 하는 최고의 데이트장소였던 것이다. 잠자리에서 아이에게 필사적으로 읽어주기 시작했던 그림책들은 지금도 거실 한켠 책장에 소장용으로 꽂혀있다. 책을 읽어주어야 한다는 사실은 당시 닥치는대로 육아서와 자기계발서를 읽어나가던 나에게 알려준 큰 깨달음이었다. 책을 통해, 다양한 독서와 육아관련 서적을 통해 나는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기 시작했고, 그렇게 만난 그림책을 통해 참 많이도 울고 웃었다. 그림책과 함께한 경험과 깨달음은 이후 나의 책 <책 먹는 아이로 키우는 법>, <하루10분 그림책읽기의 힘>에 고스란히 담기게 된다.
나는 그림책전문가는 아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칼데곳 상이라던지, 나라별 유명한 그림책이라던지, 누구나 알고있을 법한 작가라던지, 인증할 만한 요건이나 자격을 갖춘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림책방을 운영해요?"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지 않을까? 글쎄요. 그림책방이라고 해서 꼭 그림책전문가가 운영해야 할까요? 그림책을 좋아하고 관심을 가지고, 책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면 되지 않을까요? 라고 말이다.
책이 어려웠던 내가 책과 친해지고 책을 자연스러운 친구처럼 대하듯이, 책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그림책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그림책의 재미를 전해주고, 책이 함께 하는 삶에 대해 함께 이야기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책은 어려운게 아니에요. 우리가 책을 어렵게 대할 뿐이에요. 재미있고 쉬운 책부터 한번 읽어보세요. 책은 책상에서만 읽는 게 아니에요. 침대에서도 소파에서도 바닥에서도 편하게 읽고 뒹굴고 노는 장난감이에요.
부모가 책을 어려워하면 자녀도 책을 어려워한다. 부모가 성에 대해 창피해하면 아이도 성을 창피해하듯이. 책도 그렇다. 내가 운영하는 최고그림책방은 그림책만 있는게 아니다. 아이 그림책을 고르러왔다가 엄마아빠의 책을 보고 고르기도 한다. 반려동물을 위한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그림책모임에서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그림책이 고스란히 책방 한켠에 보관되어있다. 뽀로로나 아이들을 위한 일부캐릭터 그림책을 제외하면, 그림책은 사실 모두의 것이다. 그림책은 아이만 본다는 생각은 나의 책방에 오는순간 깨어진다. 그림책을 그 자체로 예술품이다. 아이 어른 할것없이 그림책을 통해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추억을 회상하고 아픔을 치유해나간다.
<그림책읽기티비> 유투브채널에서 내가 최근 찍어올린 영상이다. 비오는 날, 구름낀 날 아이와 함께하는 좋은 그림책을 소개하고 읽어주었다. 영상에 달린 댓글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나의 유투브영상이 무해하다는 사실과 (이런 표현도 참 좋다!) 친구어머니가 그림책을 읽어주었던 추억을 소환해내면서 참 좋았다고 말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남겨준 독자에게 참 감사하고 기쁜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그림책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아이와 함께 책을 구매해서 읽어보고싶다는 독자님도 있었다. 나의 레이더망에 잡히는 그림책은 그날그날 다르다. 파란색 옷을 입은 날에는 <달꽃밥상> 그림책을 소개하기도 하고, <최고그림책방> 카페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다음 영상에 올라갈 그림책을 선정하기도 한다. 그림책을 통해 다양한 세상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지금 있는 위치에서 보다많은 사람들에게 책의 재미와 읽어주기의 기쁨을 전하고 싶다.
그림책을 보러왔지만, 그동안 관심있었던 영어필사에 관심을 보이기도 하고 함께 필사를 시작하는 회원님도 있었다. 최고그림책방은 그림책도 있고 자기계발, 에세이, 소설, 요리책까지 다방면으로 다양한책들이 속속들이 입고되고 있다. 책방 한켠에 잠자고 있는 많은 책들이 새로운 주인을 만날 날을 기대하며, 나는 오늘도 책을 고르고 그림책을 소개한다. 책이 좋아 책을 사기 시작했고 나의 안목으로 고르고 추천한 책들이 새로운 주인을 찾아 떠나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다.
오늘은 또 어떤 그림책이 주인을 만날까?하늘에서 떨어지는 가을비처럼 세상을 따듯하게 해줄 그림책비가 내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