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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Oct 17. 2024

책방에서 유투브를 찍었습니다

희망이란 우연히 찾아오는 것

글이란 게 그렇다. 쓰려고 마음 잡으려고 자리에 앉아도 시간만 흐르고 전혀 써지지가 않는다. 막연히 무언가를 써야지 써보고 싶다 하는 순간 (마치 오늘 같은 날은) 왠지 블루투스 키보드 하나로 글이 써질 것만 같다. 어제는 브런치에 연재할 글을 발행하는 날이었다. 타임라인이란 건 굉장히 중요하다. 내가 나와의 약속을 하는 것, 내가 독자들과 약속을 하는 것. 그래서 소홀히 할 수가 없다. 글이 똥 같아도 어쩔 수 없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수밖에.


아침 출근길에 매일 둘째 아이의 등원을 함께한다. 지금 살고 있는 곳과 책방 그리고 둘째 어린이집의 거리는 차로 15분 정도 소요된다. 우리는 매일같이 이 거리를 차로 오고 간다. 매일 아침 첫째 아이 학교에 먼저 데려다주고, 옆자리에 잠든 둘째 아이와 함께 아침 드라이브를 한다. 아직 어리다면 어린 둘째 아이는 아침잠이 많다. (늦게 잠들어서이기도 하지만)


차가 지나치면서 팔락거리는 수풀림도 보이고 앞에 큰 트럭이 지나갈 때 흔들리는 가을단풍나무도 보인다. 커다란 차 한 대가 지나가니 가로수길에 심어져 있는 알록달록 단풍이 물든 나뭇잎들이 팔락거린다. 뒤에서 속도를 맞추어가며 나는 지그시 그 장면을 바라본다. 가을 단풍 알록달록 노란색으로 빨간색으로 주황갈색으로 변해가는 색감이 참 이쁘다. 그래서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무더웠던 여름이었는데, 이젠 제법 아침저녁으로 쌀쌀함이 느껴진다. 사람들의 옷은 긴팔 긴바지로 바뀌었다. 남방을 걸치고 재킷을 걸친다. 계절이 흘러가는 것처럼 나의 시간도 흘러간다. 내가 처음 그림책을 제대로 마주한 적이 언제였는지. 내가 처음 유튜브를 시작한 지 언제였는지 문득 생각해 본다.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에 시작한 유튜브가 이제 다른 이들과 함께 물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주 오전타임 책방업무를 도와주는 민정님과 유튜브를 촬영했다. 유튜브를 촬영한다는 건 사실 한번 마음먹기에 달렸다. 매주 하나씩 올려야겠다 생각이 들면서도 자리에 앉아 녹화를 시작하는 건 '마음과 의지, 함께하는 사람'이 역시 중요하다.

번갯불에 콩 볶듯이 진행된 촬영은 그야말로 박장대소할 상황이었다. 그림책 한 권을 꼭 소개해주고 싶었다. 하얀 백곰이 발그레하고 먹음직스러운 딸기 하나를 쥐고 있는 <이 세상 최고의 딸기> 그림책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었다. 그날 아침은 블로그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수업까지 남아있는 시간은 단 20분가량. 서둘러야 했다.

책방에 출근한 민정님에게 유튜브 찍어요!라고 말하고 테이블 위 진열된 책들을 한 곳으로 몰아둔다. 삼각대에 핸드폰을 고정하고, 마이크를 옷에 아무렇게나 끼워둔다. (유튜브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한쪽으로 많이 치우쳤다) 스노우 어플을 켜고 촬영시작을 누른다. 준비시간이 필요하기에 7초의 타이머가 가동한 후 촬영된다. 민정님과 나는 핸드폰을 보며 스마일 한껏 미소를 짓고 있는데 찰칵! 아뿔싸. 동영상을 찍어야 하는데 카메라사진 설정이었다. 활짝 웃고 있는 의도치 않은 사진 하나가 찍혔다. 박장대소의 시작이다.


그림책을 소개하기 전 민정님에 대해 간략한 소개와 인사를 나누었다. 오후에는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유치원선생님으로도 활동하고 있어, 내가 소개하는 책들을 유치원에 가져가 읽어주고 있다. <요구르트는 친구가 필요해> 그림책도 지난주 내가 소개해준 책으로,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고 집중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내주었다. 민정님의 따스한 마음과 그림책의 재미가 아이들에게 한껏 전해진 것 같아 기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 세상 최고의 딸기> 그림책 소개를 시작하는데 화면에 그림책이 잘 나오지 않아 촬영도중 자리를 앞으로 당겼다. 내가 그림책을 소개할 때 그림책의 그림이 잘 보여야 하는데, 이날 촬영에서는 도와주는 민정님의 손이 그림책을 꼭 잡고 있었다. 그림책을 잡아주는 섬세한 마음을 알기에 "안 잡아도 돼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림책을 민정님과 내가 줄다리기하듯 꼭 쥐고 있는 웃픈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아마 독자님들은 모르시리라)


요구르트 그림책 이야기를 하고, 딸기 그림책 이야기를 하고 마무리하려던 찰나 전화가 걸려온다. 아직 수업시간이 안되었는데? '잠시 후에 연락드릴게요'를 누르고 다시 촬영을 재개하는데, 또 전화가 걸려온다. 아무래도 책방의 위치를 찾기가 어려워 전화가 걸려왔을 것이리라. 촬영을 중지하고 전화가 걸려온 수업참여자를 마중하러 나왔다. 정말 이것이야말로 라이브리고 생방송이 아닐까? 후다닥 촬영을 하다가 중지에 끝내긴 했지만, 나도 오늘 최고의 영상을 찍어 올렸다고 생각한다.


오늘아침 출근한 민정님이 고맙다며 커피 한잔을 건넨다. 나에겐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색다르고 재미있는 경험이 된다는 사실을 오늘 또 한 번 깨닫는다. 너무 완벽한 준비보다는 일단 해볼까? 시작해 보는 자세가 중요하다. 내가 촬영을 권했을 때 자연스럽게 받아준 민정님이 그래서 참 고마웠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전하는 것, 일상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 그림책의 재미를 있는 그대로 아이들에게 독자들에게 전하는 것 그게 책방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책이 아니라, 재미있는 책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나의 본분을 다해보려 한다.

오늘아침 꽃집에 <이 세상최고의 딸기>를 진열하면서 또 하나의 희망을 발견한다. 희망은 우연한 순간에 찾아오기도 하는 법이니까. 오늘아침 가을 단풍처럼, 이곳 구래동에서 그림책의 향기가 물들었으면 좋겠다.


민정님과 함께 찍어 올린 영상을 아래에 함께 게시해두려고 합니다. 좋은 그림책을 함께 나누고 싶어 유튜브촬영을 시작했습니다. 재미있게 봐주시고 그림책과 함께하는 일상에 도움 되시길 바랍니다.


https://youtu.be/Xhq1Q2LeRyc?si=0eHguVntzrjEk9Y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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