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문득문득. 너의 존재는 엄마의 모든 것이었지. 너를 안고 업고 늘 함께했단다. 서울 신림동에 살 때 찬 겨울바람에 너를 안고 하늘에서 살포시 떨어지는 눈을 맞으며 엄마가 섬그늘에~~ 를 부르며 너의 눈을 바라보았지. 신발을 들고 아장아장 걸어 다니고 뛰어다니고 했던 너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해.
자상하지 못한 아빠를 원망하면서 너를 감싸 안았지. 내 품에 쏙. 그랬던 네가 벌써 열 살이 되었구나. 이쁘고 사랑스러운 나의 딸. 너에게 전해주고픈 이야기가 있어.
하나. 배우자에 대해
배우자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것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이면 좋겠지. 어느 책에선가 부부 사이란, 카페 안에 각자 다른 자리에 앉아있는 것처럼 함께 하면 좋고, 또 각자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겠지. 엄마 아빠가 다툴 때도 있었지? 그럴 때마다 너한테 들킨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진 않았어. 하지만 그러다 보니 각지어 있던 나와 아빠가 조금씩 마모되어 둥글어지는 걸 느낀다. 상대의 기분을 언짢게 하거나 화를 돋우는 일은 하지 않도록 각자 조심하면서 지내기도 해. 함께 할 때 그 자체로 좋고, 또 각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격려해 주는 것도 좋은 것 같아. 물론 게임이나, 술 등 정도가 지나치면 문제겠지만 말이야.
어느 날엔가 비정상회담을 보면서 타일러라는 사람이 좋다고 너는 그랬지. 엄마도 동의하고 기뻐했지. 너의 성향을 알기에. 역사를 좋아하고 설민석을 좋아하는 너와 말이 잘 맞고 대화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그런 사람을 만나면 좋겠다. 키가 멀대같이 크고 몸이 좋다고 해서 나와 맞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너도 알 거야. 진중한 이면과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내면과 진중함 등을 만나면서 깨닫게 되겠지. 설렘도 가질 거고 후회도 하게 될 거야.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하나하나 내가 성장하는 계기가 되겠지.
둘. 육아와 살림에 대해
엄마는 너도 알겠지만, 바쁘단다. 아침에도 7시가 넘으면 집을 나와 저녁 7시에 들어오지. 집안 살림이나 반찬은 할 겨를도 없단다. 아침밥을 함께 먹는 아침이 중요하다는 것도, 가족과 함께하는 오붓한 저녁식사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너는 알 거야. 지금은 엄마가 다시 일을 시작했고 바쁘게 운전을 하며 돌아다니는 직업이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건 힘들어. 그렇지만, 늘 집에 오면 너와 채영이가 있고 엄마를 반겨주니 늘 고맙단다. 너희가 좋아하는 반찬을 사 와서 맛있게 먹으면 좋지? 엄마가 일하고 돌아올 때 한 가득 장을 봐온 날 빛나던 너의 눈빛을 기억해. 엄마의 손맛보다는 엄마의 일 맛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엄마가 일을 하고 너희들에게 맛있는 걸 사주고 뿌듯하게 집에 돌아올 때가 엄마는 행복함을 느낀다. 손 한 가득 장을 봐올 때 늘 늦을 까 종종거리지만, 그럼에도 기뻐할 너희들의 모습이 떠올라 이것저것 한아름 장바구니에 집어넣게 되지.
살림이란 건 그래. 해도 해도 티는 안 나지만, 또 안 할 수는 없는 거지. 감사하게도 매일 바닥을 한 번씩 정리해주시는 아침 선생님이 계셔서 그래도 풀풀 먼지 날리는 상황은 피할 수가 있었다. 주말에나 청소기나 물걸레질 한 번씩 하는 게 고작이잖니. 화장실 청소, 가정 청소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청소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면 좋겠구나. 엄마라는 자리에 서면, 나의 성장을 위해 그리고 가정을 꾸리기 위해 일을 해야 하지. 집안일, 회사일, 먹는 일, 자는 일 등에 엄마라는 자리에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었단다. 그런 짐을 조금씩 덜어내면 내가 좋아하는 일에 잘하는 일에 집중할 수가 있는 거란다.
엄마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지. 아이돌보미 선생님, 반찬 선생님, 빵 선생님, 청소 선생님, 이런 선생님들이 있어서 엄마는 다행이고 엄마가 좋아하는 카페에 앉아 좋아하는 글을 쓰는 시간도 생기니까 말이야.
셋. 일과 사람에 대해
일이란 건 그래. 젊을 때는 경력을 위해 일하지만 지나고 보면 결국 일한 건 나의 밑거름이 되는 것 같아. 타이밍도 중요하지. 엄마가 다시 일을 시작할 때 많이 고민했단다. 홀로 일하는 거랑은 다르게 엄마라는 자리에 서면 챙길 것이 아주 많아지지. 아이들 학교, 어린이집, 병원, 예방접종, 각종 기념일은 물론이고 하루에도 수십 통씩의 전화통화를 해야 하지. 시간이 자유로운 게 좋아. 엄마는 그런 일을 하고 있어서 가끔 잠깐씩이라도 너의 얼굴을 보고 밥을 먹으러 오지. 결국 일이란 건 내가 평생 동안 즐길 수 있는 걸 찾는 연습이라고 생각해. 모든 사람이 선생님인 것처럼 환자 한 명 한 명을 만날 때마다 엄마도 배우려고 생각하지.
사람을 상대하는 건 때론 힘들기도 해. 나의 한 마디에 상처를 받거나 화를 내기도 하고. 엄마도 그런 경우가 참 많았단다. 10대, 20대를 거쳐 30대 마지막 줄에 들어서니 그래도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언제라도 연락할 수 있는 친구가 몇 명 있다는 게 감사하게 느껴진다. 매일 만난다고 친해지는 것도 아니고, 회사일로 애써 돈독하게 유지했던 관계도 집이 멀어지고 회사를 관두게 되면 저절로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된단다.
내가 좋으면 저절로 나에게 오고 갈 사람은 가게 된단다. 사람일에 대해서는 그리 애쓰지 않아도 좋다 라고 말하고 싶어. 좋은 사람은 또 곁에 오고 아주 자연스러운 거야. 서로의 의견과 생각은 모두 다르기에 강요하지 않아도 좋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으로 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