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는 싶고 체력은 달리고
열심히 산다는 건 뭘까? 노력하면 성과로 이어지는 걸까? 우리는 학창 시절부터 평범화에 평준화에 짜인 프레임 안에서 살아 왔다. 열심히 공부하고 선생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로 자랐다. 내가 그의 대표적인 전형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특별히 공부를 잘 하거나 엄친딸은 아니지만..)
나이 마흔을 앞에 두고 바라보니 이제껏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마음은 휑했다. 결혼을 할 때 부무님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결혼생활을 잘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고 일도 부지런히 열심히 했다.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이 직장 저 직장 많이도 옮겨다녔지만 그래도 꾸준히 일을 해 왔다. 돈을 벌어야 했고 아이를 키워야 했으니. 그런데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온 40년 동안 내 안의 감정은, 마음은 많이도 무시당해 왔던 것 같다. 가장 소중히 대해야 하는 내가, 나에게 그렇게 대하지 못했다. 겉으로 열심히만 했고 노력을 했지만 남은 결과물은 별로 없었다. 나의 소중한 가족들이 곁에 하고 지금의 일도 하고 있지만 마음이 공허했다. 어떤 책에서 그랬다. 나는 본디 대단한 사람이고 미운사람이 되어도 좋아. 남들에게 꼭 친절하게 굴 필요없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도 된다고. 매일 아침 화장실에 앉으면 내 눈앞에 보이는 문구들. 매일 되새겼다. 정말?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해도 될까? 내가 대단한 사람일까? 미운사람이 되어도 좋은걸까?
그러던 어느 날 도움받을 수 있는 건 마음껏 도움받기로 했다. 내가 불편한 건 싫다고도 했다. 꼭꼭 숨겨왔던 마음을 조금씩 열어보았다. 솔직히 말하려고 했다. 내가 힘들면 (특히 직장에서 일이 너무 많이 몰릴땐) 힘들다고 했다. 나는 쉽고 편하게 일하는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첫째,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
둘째, 이정도면 충분해 하는 정신
셋째, 앞 일은 알 수 없어 라는 생각
그랬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내가 못 하면 못한다고 말했다. 급하면 다른 사람이 하겠지. 내가 아등바등 잡고 있지 않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조금 내려놓았더니 방문은 다른 사람이 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자신의 계획을 세우며 하고 있었다.
엄마가 옆에서 매번 이거해라 저러해라 잔소리해보았자 말을 듣지 않는 나이라는 걸 안다. 영어숙제를 하기 싫다고 펑펑 우는 딸 옆에서 이전에는 다독이기도 하고 어르기도 하면서 해내기를 바랬던 게 사실이다. 매번 그럴 때마다 나도 지쳤고 아이도 아이대로 힘들어했다.
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니가 하고 싶은대로 해봐. 할 수 있는 데 까지만 하고 그만해. 어떻게든 되겠지. 숙제는 받았고 다니는 학원의 선생님은 좋고, 진도는 따라가기 어려워했다. 내가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금 관두면 더욱 멀어진다는 걸 알기에 이야기만 들어주고 지켜보기로 했다. 한 쪽 한 쪽 단어를 따라적는 연습장이 빼곡히 채워질 정도로 책상에 앉아 한자 한 자 적어나가는 걸 지켜보았다. 한 쪽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말하는 딸.
이정도면 충분해. 이정도면 됐어. 그랬다. 나는 워킹맘이고 살림도 해야 한다. 가끔 퇴근하는 남편과 함께 할 저녁식사도 준비하고 아이들의 건강도 챙겨야 한다. 이것 저것 할 것 많고 챙길 게 많은 주부다.
일이 덜 끝났지만, 조금 만.. 더 할까? 이전의 그랬던 나라면 이정도면 됐어. 그만. 하는 마음으로 퇴근한다. 차에서 주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차 안을 말끔히 정리해놓고, 내일로 미룰 수 있는 건 내일로 미룬다.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회사가 나의 전부인 양 생활한 적이 있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일을 하기도 했고 나를 재촉하듯이 그렇게 몰아가기도 했다. 식사를 거르며 일을 다닌 적이 있었고 그렇다보니 나는 점점 센치해지고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대신 집중도 있는 아침시간을 최대한 이용하기로 했다. 전날 방문한 기록들과 서류를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가다듬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노트북을 켜고 전날 방문했던 기록을 취합하고 정리하는 일은 아침나절에 몰아서 하니 정리가 간편했다.
설거지도 그랬다. 내가 할 수 있는 양껏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려 했다. 할 수 있는 한 설거지를 몰아서 할 때도 있고 남편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평일에는 간호사 모드로 주말에는 엄마 모드로 스위치를 바꾸었다. 가능한 한 쉬는 동안에는 일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대신 아이들과 바깥으로 나가고 놀이터로 공원으로 나갔다. 내가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나름대로 계획을 짜서 생활했다.
앞 일은 알 수 없다. 정말 그랬다. 책을 싫어하던 내가 책을 늘 곁에 두는 사람이 되다니. 중고등학생 시절 친구가 읽던 연애소설과 남자여자의 연애생활을 다룬 만화책만 보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직 두꺼운 책이나 역사 소설 등은 기피하지만 그럼에도 자기계발서나 자녀의 육아 등에 관한 책은 정말 많이도 봤던 것 같다.
남편은 피씨방을 좋아했고 게임을 좋아했다. 그랬던 그이가 지금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딱딱한 네모모양이 전혀 헝클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그런 사람이었다. 둘째 아이를 낳고 아이에게 함빡 미소를 머금고 바라보는 남편의 모습이 아직은 낯설지만 참 좋다. 네모나고 까칠했던 사람이었는데 점점 동글동글 해지는 것 같다. 아마도 나의 잔소리들의 역할도 컸겠지만, 함께 아이를 돌보는 동안 많이도 마모되고 동글동글 해졌나보다.
앞 일은 알 수 없고, 어떻게든 되겠지. 이정도면 충분해. 하는 마음으로 일주일에 한 두번쯤은 지내보는 게 어떨까? 내가 꼭 해야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살짝 한 발 물러나니 상대방이 잘하는 부분도 보이고 나는 나만의 작은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바쁘게만 살아왔던 지난 시간들이 어쩌면 나에게 단순함을 주었는 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나의 경험은 쓰이고 그런 경험을 말미암아 지금의 소중함을 아는 것일테니 말이다.
오늘의 글도 이정도면 충분해. 이정도면 됐어~ 나의 글이 많은 이들에게 퍼져서 공감을 자아낼 지.. 앞 일은 알 수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