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딸아이가 말했다. 이층침대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꿈, 로망이 있다. 아이가 5살, 6살 무렵까지 죽 외동으로 자랐다. 그러다보니 자주 놀러가는 친구네집이 있었는데, 그 친구 집에는 이층 침대가있었다. 아이의 방 한켠에 자리한 침대에는 이층이 있었고 심지어 미끄럼틀도 있었다. 아이는 친구를 좋아했고 그 이층침대를 좋아했다. 놀러가면 미끄럼틀을 타고 내리고 친구와 숨바꼭질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이층침대는 아이의 마음속에도 다가왔다.
큰 결심없이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갔다.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둘째가 태어났다. 갓난아기를 돌보느라 첫째는 혼자서 해야할 일이 많아졌다. 자기만의 방의 꾸며주었다. 책상도 들여주고 책장에 책도 넣어주었다. 늦었다면 늦었을 시기인 10살. 이미 대여섯 살때부터 이층침대는 아이 마음속에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선뜻 사주겠다는 말을 못했고 그당시에는 아이방에 다른 침대가 놓여있었다. 단순하고 간편한걸 좋아하기에 침대도 그렇게 넣어주었다. 그런데 혼자 자려고 시도해보았지만, 감싸는 따듯한 기분이 없어서였을까? 아직은 엄마아빠와 함께 자고 싶어서였을까? 아마 둘 다 였을거다. 둘째도 늘상 갓난아기때부터 함께 지내고 잠을 자고 아침에 깨면 동생이 있고. 그런 분위기에서 막상 혼자 자려고 하니 무서웠을거다. 동생과 함께 나중에 방을 쓰게 되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만의 방이 있고 침대가 덩그러니 있으니 혼자 자기도, 그리고 같이 자기도 주저하게 되는 거다. 남편은 아이 혼자서 잘 수 있기를 바랐지만, 바로 옆에 붙어있는 방이 아니라서 그런지 더더욱 안방으로 쪼르르 돌아왔다. 남편은 아이방에서 혼자 자는 경우도 생겼다. 혼자 자니 편하기도 하고 아침 알람소리에 아이들이 깰까봐 혼자 자는 방을 선택했다. 그것도 아이 방에서 말이다.
이건 아닌데. 싶었다. 마침 올해초에 아이가 이층침대~ 이층침대~ 하며 노래부르기 시작했다. 이층침대를 검색해보니 천차만별이었다. 물론 최고급으로 아주 좋은 제품으로 널찍하게 (미끄럼틀도 달린) 이층침대를 들여놓고 싶었다. 그건 마음속의 이야기 일 뿐. 나는 금전적으로 어려운 시기였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최고의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아이방에 있는 침대다. 이층침대를 검색하니 어마어마한 종류가 나왔다. 며칠을 보고 가격을 보고, 침대를 보았다. 각 침대를 모두 사볼수는 없기에 신중해야 했다. 특히 침대란 것은 잠자리를 위해서 좋은 것이어야 했고, 무엇보다 아이가 좋아하고 아이방에 들일 수 있는 적당한 크기를 선택해야 했다.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여 아이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이젠 가격이나 비용을 따질 수도 있는 나이가 되었고 무엇보다 자신의 방에서 자기가 선택한 침대에서 혼자서 잠을 잘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처음 이층침대가 도착하는 날, 매순간 매초를 기다렸다. 오늘 이층침대가 오는 걸 알고 현관문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집에 설치기사님이 도착하고 한동안 드르륵 드르륵 끼우는 소리와 함께 설치를 해주었다. 아이를 따듯하게 감싸는 벙커도 처음에는 설치했지만, 지금은 떼어버리고 없다. 5살 무렵의 아이들은 참 좋아했을 거다. 캐노피 처럼 아이들만의 세상이 펼쳐질 테니까. 지금 벙커를 씌우기에는 그 당시는 너무나도 더웠고 그 안에서 잠을 청하면 땀을 흠뻑 흘리기 일쑤였다. 그렇게 며칠 벙커를 씌운 상태로 지내다가 아이의 몸집도 커진 상태라 치워버렸다. 벙커는 치웠지만 수면등과 세계지도 그림을 잘 붙여주었다. 아이는 세계지도를 좋아했고 근처 마트에서 생각해두었던 지도스티커를 사서 하나하나 아이와 함께 붙였다. 이미 지도관련 만화책을 많이 보아서인지 나보다 위치를 더 잘알고 있었다. 잠을 잠 때 보이는 세계지도가 자기는 좋다고 한다. 한 눈에 들어와서 좋고 따듯한 수면등 불빛 아래 아늑하게 지도를 보며 잠이 솔솔 올지도 모른다.
평일에는 운전을 하고 일을 하면서 아이들을 돌보다보니 주말에는 몸이 축났다. 피곤했고 잠이 부족했다. 남편에게 내일까지는 그냥 쭉 자고 싶다고 깨우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남편은 둘째는 자신이 돌보고 재울테니 나에게 딸아이 방에서 함께 자라고 한다. '이게 웬일?' 싶었다. 밤 10시가 넘어가고 나는 첫째 방에서 수면등을 켜고 이층침대에 올라갔다. 아이는 1층에서 요즘 시간을 보낸다. 1층에 아늑한 알라딘 굿즈로 받은 램프를 켜주고 자기가 좋아하는 인형들로 공간을 채웠다. 책을 볼 때도 핸드폰 영상을 볼 때도 이곳에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 아이는 이 공간을 좋아했다. 핸드폰을 충전시킬 수 있고 오로지 자기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잇어서 좋았던 것 같다.
마침, 남편이 둘째를 봐준다고 하기에 얼씨구나 좋다! 하고 이층침대에 쪼르르 올라갔다. 아이가 1층을 좋아하니 나는 2층에 자리를 잡았다. 이런 날은 또 처음이었다. 아이는 아래층에 있고 나는 위층에 있다. 몸을 뒤트는 소리, 침대에 몸이 닿는 소리, 서로의 움직임을 들으면서 그렇게 잠을 청했다. 잘자~ 엄마 먼저 잘게. 하고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10여분이 지났을까? 30분은 지났을까? 그렇게 곤히 잠을 청하고 잠을 자고 있는데 바깥에서 "엄마~!!! 엄마~~" 하는 둘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엄마의 본능과 직감으로 이층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나의 몸짓이나 말투를 평소 잘 관찰하는 첫째도 역시 자고 있었는데 한번에 몸을 일으킨다. 둘째의 울음소리를 듣고 우리는 함께 달려나갔다. 둘째가 잠을 청하고 있었는지 자다가 깼는지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우는 둘째아이를 안았다. 토닥였다. 엄마와 함께 자고 싶었구나. 생각했다. 오늘은 첫째와 단둘이, 둘째는 아빠와 자게 될 줄 알았는데.. 우는 둘째를 달래면서 잠이 들 수 있도로고 안아주었다. 첫째에게 분유를 타달라고 부탁하고 아까 잠을 자다가 깨서인지 무척이나 피곤했다. 분유 먹는 둘째 옆에 누워 그대로 잠이 들었다. 어느 순간 깨어보니 둘째는 분유를 남기고 내 옆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첫째는 졸리운지 이미 책을 들고 안방에 가서 잠을 자고 있다.
첫째는 머리카락을 좋아했고 둘째는 귓불을 좋아한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 첫째는 6살때 까지 늘 나의 머리카락을 잡고 잠을 청했다. 애착인형이나 애착이불은 없었다. 애착 머리카락이 있었다. 엄마의 온기와 엄마의 숨결이 맞닿아있는 순간, 그 순간에 아이는 안정감을 느낀다. 첫째에게는 하루종일 어린이집에서 생활하다가 늦게 퇴근한 엄마의 머리카락이 위안이었을 거다. 첫째는 생후 100일경부터 영아어린이집에서 지냈고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퇴근하고 아이의 눈을 맞추고 아이에게 질적으로 사랑을 온전히 몰입했다. 양적으로 시간을 채울수는 없으니 질적으로 2~3시간은 아이와 몸을 부대끼며 엄마의 온전한 사랑을 느끼게 해주라는 원장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나의 머리카락을 늘 만졌다. 엄마의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그림책도 보았고,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다. 엄마가 그림책을 읽어주는 동안 귀를 귀담아 들었다. 성장하면서 혼자 자는 횟수나 기회도 늘었는데, 그럴 때 아이는 책을 혼자보기 시작했고 인형을 가까이 두기도 했다. 지금은 엄마 머리카락을 만지지 않아도 잠을 자지만, 그래도 엄마와 동생곁에서 놀면서 책을 보다가 잠드는 시간을 좋아한다.
둘째는 특이하게 귓불을 좋아한다. 갓난아기때부터 였을까? 모유수유도 하고 분유수유도 했지만, 초창기에 모유가 잘 늘지를 않았다. 물고만 잠을 자기도했다. 분유를 먹일 때 아이의 눈을 맞추고 무릎아래 베개를 놓고 높이를 맞춘다. 어정쩡한 자세긴 하지만 함께 누워 먹이기도 한다. 그럴 때 아이는 나의 귓볼을 잡고 먹기시작했다. 내 귓불으 잡기 어려우면 자신의 귓볼을 잡았다. 귓볼은 아주 부드럽게 예민한 부위다. 몰랑몰랑해서 만지면 잠이 솔솔 쏟아지나 보다. 분유를 먹이고 있으면 아이는 어느순간 자신의 또는 나의 귓볼을 잡고 스르르 눈이 감긴다. 아이는 귓볼을 참 좋아한다. 엄마 대신 돌보미선생님의 귓볼을 잡을 때도 있다. 둘째에게는 귓볼이 위안이고 안정감인가 보다. 나의 아이들은 애착 인형이나 애착이불은 없지만, 엄마의 머리카락과 귓볼이 애착이고 엄마의 사랑이었다. 엄마의 감촉과 느낌을 머리카락과 귓볼을 통해서 느끼고 싶었던 거겠지. 마음껏 내어주리라. 언제까지 분유를 먹을 지 모르겠지만, 언제까지 엄마 귓볼을 잡고 잠이 들지 모르겠지만 이 소중한 시간을 마음껏 즐겨보리라 다짐한다. 말랑말랑한 귓볼의 감촉처럼, 말랑말랑한 마음이 될 수 있기를. 모나고 뽀족했던 마음도 귓볼처럼 말랑말랑해지기를 바래본다. 아이는 귓볼을 좋아했고 나는 아이와 눈을 맞추는 순간이 좋다.
셋이 누워서 뒹굴거리고 이불놀이도 하며 서로의 웃음을 느낀다. 하루동안 집에서, 차에서, 바깥에서, 어린이집에서 각자의 공간에서 주어진 할일을 하고 저녁 퇴근시간이 되면 다시 '모여라 집합' 한다. 함께여서 좋은 우리. 지금 아이방에 자리한 이층침대처럼 지금의 로망을 그리워할 날이 올것이다. 잠자리 독립을 준비하기위해 들여준 이층침대지만, 어쩌면 나 역시 아이와 아직은 같이, 함께 자고 싶은 거다. 같이 잠을 자든, 따로 잠을 자든 자연스러운 게 좋은 이유다. 언젠가 혼자 잘 날이 오고, 언젠가 독립할 날이 오겠지만 복작복작 거리고 하하호호 웃으며 잠을 자는 지금 이 순간을 잘 기억하고 싶다. 아이가 머리카락을 만지는 손길에서, 아이가 귓볼을 만지는 느낌에서 나는 아이들의 사랑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