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는 화이트보드 칠판이 있다. 거실 한 복판에 자리한다. 아주 큰 대형이다. 심지어 거꾸로 매달려 있다. 화이트 보드 칠판은 5년 전 내가 인터넷으로 주문한 것이다. 그 당시 자녀독서 육아 책을 보던 중 나의 눈이 들어 온 단어가 있었으니, '화이트보드 대형 칠판'이었다. 저자는 아이들과 화이트 보드로 소통한다고 했다. 영어도 적어놓고 매일 따라 읽으니 아이에게 좋은 영향이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마침 나도 워낙 집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고 아이의 눈에 매일 보는 화이트 보드가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주문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형 칠판이 도착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꽤, 너무나 무거웠다. 나 혼자서 들 수 없을 정도로. 나는 남편에게 말해두지 않은 상태였고, 큰 아이가 그 당시 다섯 살 무렵이었으니, 그 때는 남편과 사이가 서먹할 정도로 더욱 좋지 않았다. 이걸 매달아달라고 하면 분명 나를 탓할 것이 분명한 상황.
여자 혼자서 못을 박고 너무 무거운 칠판을 낑낑 들고 매다는 건 정말이지 너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때는 방법이 없었다. 하물려 심부름 센터(?) 같은 곳도 알아보았는데, 화이트보드 매다는 것 같은 심부름은 목록에 없었다. 좌절했다. 배달만 된다니. 이렇게 정말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는데, 출장비를 주고서라도 부탁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맘카페에 글을 올릴까도 부탁해보았지만, 딱히 방법이 없었다. 망망대해에 혼자 떠 있는 기분으로 그렇게 그냥 낙심하며 못질을 시작했다. 원체 이런 쪽에는 재능이 없는 터라, 못질도 엉성하고 엉망이었다.
왼쪽과 오른쪽이 수평인지 위치는 맞는 지 가늠해보고 어림잡아서 못질을 뚱땅뚱땅 했다. 엉성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화이트보드 칠판 고리를 위 아래가 있는 줄 모르고 혼자 박았다고 좋아했는데 알고보니 위아래가 바뀌었다. 나중에 놀러온 남동생이 그걸 발견하다니.. 거꾸로 달린것 같다고. (그래.. 내가 그 모냥으로 달아놔서 그래. 대충. 위아래 보고재고 따지지도 않고 그냥 못질을 했으니..)
여차여차 해서 얼렁뚱땅 정말 그렇게 못질을 겨우겨우하고 화이트 보드 보드 칠판을 벽에 장착했다. 커다란 화이트 보드는 거실 분위기를 색다르게 만들어주었다. 책에서 기억남는 구절을 적기도 했다. 아이는 커다란 대형 화이트보드 칠판을 유독 좋아했다. 다양한 화이트보드 펜들을 가지고 그림도 그리고 낙서도 했다 글자를 배워가는 시기라 영어도 쓰고 한글도 따라적었다. 요즘에는 아이돌보미 선생님과의 소통도 이 칠판이 대신한다. 둘째 아이 분유먹은 시간, 간식은 어떤 걸 챙겨주었는지,, 나는 나 대로 목욕시켜 주세요~ 병원 가는 날 등을 화이트 보드에 기록해둔다. 모두가 이 공간을 이용하며 하루에 몇 번씩을 보는 것이다.
카카오프렌즈 책이 워낙 유명했다. 독일, 이탈리아 한 권 한 권 출간될 때마다 구매를 했고 심지어 세계지도까지 사은품으로 받았다. 우리집으로 날아온 세계지도를 커다란 화이트 보드 칠판에 붙였다. 그 뒤로 아이는 나라를 보고 국기를 보았다. 나라 위치를 살펴보고 동생에게 가르쳐주기라도 하는 듯 설명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화이트 칠판으로 하나가 되었다.
일하는 엄마는 신경쓰기 싫어서 저질렀다.
현관에 자리한 마스크 걸이. 아이돌보미 선생님이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고 칭찬해주었다. 신발을 다 신고 현관 밖으로 나간 남편이 아차차 마스크 안 가지고 왔다며 몇 번을 돌아왔다. 다시 가져다주기 귀찮아 아예 현관 옆에 만들어버렸다. 마스크 보관함. 급할 때 집 밖을 나갈 때, 그 때 그 때 필요하면 가져갈 수 있도록 마련해둔 것이다. 나도 출근하다보면 깜빡깜빡 한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마스크가 요즘 필수이다. 외출할 때는 물론,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마스크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늘 구비해두고 손이 닿는 편한 곳에 준비해 두어야 겠다.
일을 하다가 들른 서점이었다. 합정역에는 교보문고가 분야별로 나누어져 있었다. 일반 서적이 아닌 예술, 해외, 외국책들과 관련된 또 하나의 코너에서 발견한 책이었다. 둘째 아이는 요즘 자석, 붙이기, 스티커에 관심이 폭발하고 있다. 마침 그림책인데 자석이 많이 들어있는 책이 있었다. 가격은 좀 비싼 편이었지만, 잘 됐다. 하면서 구입했다. 집에 와서 보니 책에 자석을 붙이는 건 별로 재미가 없었다. 잘 붙지도 않았다. 잘 사용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눈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다. 무조건 이럴 때는 아이의 눈이 닿는 곳에 가까이 두어야 한다.
매일 지나다니는 문은 현관문이다. 마트를 갈 때도, 차를 탈 때도, 외출하고 어린이집 가고 학교 갈 때도 우리는 늘상 이 현관문을 지나다닌다. 칙칙한 색깔의 현관문에 알록 달록한 자석 꼬맹이들로 도배를 하였다. (집 안에는 왜 이렇게 회색 빛깔의 어두운 색이 많은지!) 나름의 스토리를 가지고 자그맣고 큰 자석들을 여기저기에 혼자서 작업했다.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을 갈 때도 현관문에 붙여진 자석을 보고 그림을 본다. 첫째 아이가 학교를 갈 때도 자석들에 눈이 갈 것이다.
어느 날은 구몬학습지 선생님이 와서 가는 길에 현관문에 붙여진 자석들을 보고 빵! 웃었다고 했다. 나는 늘상 바깥에서 일을 하고 저녁 7시가 다 되어야 퇴근을 해서 구몬선생님을 만나지 못한다. 아이를 통해 전해들은 나도 웃겼다. 그래. 그럴 수 있겠다. 덕지 덕지 다른 곳도 아닌 현관문에 붙여질 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벽을 아끼지 말아야 겠다고 한번더 생각했다.
나의 아이는 열 살이다. 초등학교 3학년. 요즘 학교에는 일주일에 한 번 등교한다. 역사에도 부쩍 관심이 많다. 역사과목을 제일 싫어했던 엄마에게서 나타난.. 역사학자를 꿈꾸는 딸. 자기도 말한다. 역사학자가 되고 싶다고, 설민석 선생님을 좋아하고 유투브로 역사 관련한 영상을 찾아보는 걸 즐긴다. 하지만 난 역사과목, 사회 과목, 특히 지리 과목은 지리지리할 정도로.. 머리가 지끈할 정도로 좋아하지 않았다. 세계사는 더더욱. 그런데 나의 아이는 역사를 물어본다.
"엄마.. 마오쩌둥은 언제 죽었어? "
'끙.....'
알 리가 없는 나는 벽에 걸려진 역사연표에서 찾아보자고 했다. 아이가 한국사에 관심을 가지고 역사에 대해 조금씩 물어보기 시작하더니 내가 답을 해 줄 수 없는 범위까지 넘어설 때가 많았다. 최근 방문한 서점에서 학습 행사차원에서 한국사 연대표를 준다고 했다. 나는 원래 이런 홍보물이나 책자를 거절한다. 거의 100프로다. 그런데 그 날은 마침 정말 필요하던 역사연표 였으니.. 귀찮은 작성지를 대충 작성하고 혹시 연락이 오면 안한다고 하면 되지,, 생각하며 얼른 역사연표를 챙겼다.
한 눈에 시대와 역사를 보기 쉽게 정리해둔 표가 마음에 쏙 들었다. 집에 가지고 와서 풀어보고 며칠을 고민하다 자리를 정해주었다. 우리 집에서 거실로 향하는 복도 가운데 알파룸이라는 공간이 있는데, 내가 주로 일하거나 글을 쓰는 책상과 테이블이 있는 자리다. 그 곳 역시 회색 빛깔의 어두운 벽면으로 들어서자 마자 우중충한 분위기였다. 이 곳에 붙이기로 했다. 테이블에서 온라인 수업을 들을 때도 아이 곁에 역사 연표가 자리했다.
힐끔 힐끔, 지다가다 힐끔, 수업 듣다가도 힐끔거리며 아이는 내가 붙여 놓은 역사연표를 들여다볼 것이다.
그리고 마오쩌둥은 1976년에 사망했다. 아이 덕분에 또 하나를 알게 되었다. 내일이면 또 까먹겠지만. 한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꿈이 판사라고 말하는 딸. 어제는 일하는 중에 영상통화를 하면서 법을 물어보았다. 1조 1항과 같은 법률말이다. 그건 구글에서 검색해봐~ 말했더니 자신이 검색을 한 모양이다. 1조 1항은 이러 이러한 것이다. 자신의 수첩에다 굵직굵직하게 적었다. 그걸 영상통화를 통해 읽어주고 보여준다. 수첩에는 아이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딸아이 방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아이가 크면서 아이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가족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자기만의 공간을 가지고 생각을 여유를 가진다는 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소증하다는 걸 안다. 한동안 남편은 딸아이 방에서 잠을 잤었다. 그러다보니 아이는 아이대로 자신만의 공간을 꾸밀수도, 100프로 만족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아이에게 이층 침대를 사주면서 남편의 공간분리는 끝이 났다. 안방에서 지금은 모두 다 같이 잔다.
어느 날은 딸아이 혼자서 잘 때도 있고, 엄마 아빠 동생과 놀다가 잠드는 걸 좋아하는 아이는 오늘도 안방에서 더블 퀸 침대에서 늘어져라 잠을 잤다.이리 뒹굴 저리뒹굴 대면서 말이다. 아이는 이층 침대를 굉장히 좋아했다. 그리고 책장을 채워넣고, 아이가 잠잘 때 늘 책을 보면서 자기 때문에(어릴 때부터 그림책 읽어준 것이 습관이 된 것 같다. 지금은 그림책에서 그림이 더욱 많아진 만화책으로 옮겨왔을 뿐) 키티 수면등을 켜고 책을 보다가 잔다. 아늑한 분위기의 침실에서 아이가 자신의 방을 더욱 사랑하고 좋아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먼저 휑했던 아이 방 벽에 이마트에서 봐두었던 세계 지도 스티커를 딸아이와 함께 붙였다. 아이는 세계지도를 좋아한다. 역사도 좋아한다. 어느 나라가 어디 위치해 있는 지, 국기는 어떤 모양인지 벽에 세계지도를 붙여두니 자주 들여다본 이유인 것 같다. 잠을 자려다가도 잠이 오지 않으면 한참을 세계지도 그림판을 바라본다고 했다. 자신의 상상의 나래에서 어디도 가보고 싶고 생각을 하겠지?
우리 집에 일주일에 몇 번 자란다 선생님이 오신다. 아이의 돌봄시간이 필요할 때 아이를 보살펴 주고, 학원까지 데려다주시는 고마운 선생님이다. 특히 초등학생이 되면서 자기만의 생각과 주관이 형성되는 시기에 부모 이외에 멘토는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모 이외의 좋은 롤모델 멘토가 상담도 해주고 아이의 장래나 지금현재 고민에 대해 털어놓을 수 있다. 자란다 선생님의 활동 일지를 보니, 아이와 함께 피아노 학원에 데려다주는 길(걸어서 10분~15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에 아이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영이는 자란다 선생님과 해외여행 가고 싶은 곳을 말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리스, 케냐, 프랑스에 가보고 싶고 유럽쪽보다는 남아메리카, 아프리카쪽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평소 밥을 먹는 자리에서도 널찍한 회색벽면이 보기가 싫었는데, 어느 날 파스텔 톤의 세계지도를 주문했다. 몇 달동안 고민을 해오다가 결정하고 주문을 한 것이다. 아이는 밥을 먹다가도 앞의 벽면에 붙여져 있는 세계지도를 보기도 하고 선생님과 이야기도 나눈다고 했다.
자주 보는 것이 눈에도 새겨지고 마음에도 새겨지는 것 같다. 아무 것도 없었던 벽면에 하나 둘, 세계지도가 새겨지고 아이는 늘 눈에 띄는 곳곳에 숨은 그림찾기하듯 국기를 찾고 나라이름을 찾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 만의 동경하는 나라도 생길 것이고, 자신 만의 꿈을 찾아 떠나겠지?
벽은 최고의 인테리어다. 벽은 최고의 학습도구다. 아이가 바라보고 싶은 걸 만들어주고 싶어서 벽을 이용했다. 벽을 아끼지 않았다. 조마조마 하며 살기 싫었다. 처음 공공임대아파트인 이 집에 입주할 때까지만 해도 늘 전세집을 전전했기에, 벽에 못도 그림도 그리면 안되고 혹시라도 아이가 낙서라도 할까봐 조마조마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지금 머무르는 이 공간을 이용하기로 말이다. 그것이 아이들을 위한 것이면 더욱 좋고 나를 위해서도 벽에 배경을 입히고 글자를 새기었다. 5년이 지나가면서 벽도 조금씩 더러워지고 군데 군데(하지 말라고 해도 했던) 아이들의 낙서 흔적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이 오히려 예술이 되고 아이를 생각하는 발판이 되었다. 오히려 너무 깔끔하고 새것이 아니니 더욱 자유로워졌다. 벽을 왜 깨끗하게 써야 하지? 란 생각으로 바뀌었다. 어차피 우리가 사는 이 공간은 영원히 깨끗할 수 없고 더러워진다. 우리의 손때가 묻어나는 이 공간을 마음껏 사랑해주기로 했다.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추후 누군가 이 집으로 이사온다고 하면 도배장판을 해주면 그만인 것이다. 나의 시간을 위해서, 아이들과의 추억을 위해서 혹시 모를 나중일을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벽은 또 하나의 예술품이 될 수 있다. 벽은 아이들의 장난감이다. 벽을 마음껏 부리고 엄마의 숨겨진 솜씨를 발휘하는 훌륭한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미술품, 그림도 좋다. 나는 꼼꼼하게 액자에 철하는 성향은 아니라 굵직 굵진한 세계지도 화이트보드 칠판 등으로 벽을 마음껏 가지고 놀았다. 꼭꼭핀은 늘 서랍에 여유분으로 가지고 있고 필요할 때마다 못 대신에 꼭꼬핀을 이용한다. 벽에 살짝만 끼워주기만 하면 되니 큰 무게감이 있는 것 말고는 대부분 만족한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미니멀이 현재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어차피 한번 쑤왁 들어오는 아이들의 성장과정의 짐이라면 마음껏 허용해주려고 한다. 밀물처럼 아이들이 성장하고 독립해나가면서 또 한번 쓰윽~ 하고 많은 양의 짐들의 빠져나갈 것이다. 그때까지는 벽도 나의 친구다. 바닥 대신 벽에 걸고 벽에 나의 마음을 담고 소소한 인테리어를 하나씩 적용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