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봐야 알지
나의 남편의 나의 첫번째 책에서 말했지만, 첫 아이에게 자전거 한 번을 밀어준 적이 없었다. 나들이를 함께 나가는 게 소박한 꿈이었고, 한번쯤 내가 밀어붙어 나가는 날이 있어도 늘 웃음이 싹 가신 얼굴이었다. 상황이 그러했으니, 내가 그 사람을(남편) 데리고 다닐 이유가 있었을까? 집 밖을 싫어했던 사람, 나들이의 '나'자도 몰랐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나의 남편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둘째아이를 맞이하던 순간 남편은 아쉽게도 함께 하지 못했다. 내가 새벽에 이슬이 비추어 (아마 전날 나의 동생과 함께 신나게 웃으면서 깔깔 대면서 나의 둘째 아이도 내려와야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병원에 갔다. 그날이 아주 정확히 만삭 사진을 찍는 날이었다는 사실. 결국 우리는 만삭 사진을 찍으러 가기로 했던 그 날에 둘째를 낳으러 병원에 갔다. 나의 여동생의 집에 다녀오는 사이, 나는 혼자 외로이 진통을 견디고 둘째 아이를 맞이했다. (남편은 첫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두 번의 눈물을 쏟았다) 아쉽게도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10여분이 지나 남편은 첫째 아이와 나의 여동생과 함께 들어왔다. 그렇게 둘째 아이와 대면을 하게 된 그.
나는 첫째 아이의 육아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일도 하면서 첫째 아이를 어린이집 종일반에 맡겨가며 육아를 해왔다. 신림동의 언덕길을 매일 같이 오르락 내리락 했었고(남편의 도움도 많이 받기는 했지만), 병원 갈 일이 있을 때도 아이를 들쳐안고 급하게 택시를 타고 병원을 다녀온 적도 있었다. 에방접종을 하기 위해 아기띠를 메고, 버스를 타고 보건소에 다녀오기도 했다.(서울에 살때는 운전이 무서워 10년동안 장롱면허 였다). 집에 오면 육아와는 전혀 상관없는 표정으로 앉아있는 남편을 볼 때가 많았다.
그 당시 살았던 빌라는 4층이었는데, 지하 주차장 좁은 빈 공간에 유모차를 세워두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차들이 왔다갔다 하는 그 공간에서 유모차에 얼마나 많은 먼지가 씌워졌을 지 .. 그 당시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기를 데리고 근처 산책을 가고 싶었다. 산책을 싫어하는 남편이었기 때문에, 오롯이 나 혼자의 힘으로 유모차를 끌고 오르내리며 아이를 데리고 유모차 나들이를 가곤 했던 기억이 난다.
김포로 이사와서도 첫째 아이의 육아는 90프로 이상이 온전히 내 몫이었다. 내가 자는 아이에게 옷을 입히고 벗기면서 그렇게 묵묵히 육아를 해 나갔다. 어린이집을 알아보는 것도 내 몫이었고, 어린이집 등하원도 남편 역시 장거리를 다니고 있었기에 사실 부탁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나마 근처 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내가 시간적으로 여유가 되었기에 내가 아이를 데리고 오고, 또 데리고 갔다. 그러던 아이가 7살, 8살, 9살이 되었다.
아이를 위주로 생활했고 남편이 육아를 온전히 나에게만 맡긴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아이를 위해 나의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함께 도서관을 다니고 함께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녔다. 시간이 될 때마다 아이와 함께 동행하고 늘 함께했다. 그러다가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둘째 아이가 태어나니 첫아이에게 온전히 나의 시간을 쏟아부었던 시간들이 반토막, 또 토막, 또 토막,, 이제는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둘째 아이를 임신하면서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첫째 아이의 육아에 정말 온전한 힘을 다했다. 그러니 이제는 정말 남편의 몫을 두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그런것보다 실제적으로 체력이 너무 따라주지 않았다. 첫째 아이때와는 다르게, 이미 일곱살 터울이 생긴 둘째 아이를 육아하기에는 나의 체력도 너무 바닥이 나 있었다.
평소 몸 관리도 거의 하지 않은 몸이라 더욱 그랬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 몸이 좋지 않아 늘 한의원을 다니며 한약도 먹고,침도 맞으러 다녔다. 그러는 동안 자연스럽게 둘째 아이를 잠깐씩 맡기게 되었던 것이다. 병원을 가야하기에, 내 몸이 육아를 하기에 턱없이 체력이 모자라니 어쩔 수 없었다. 첫째 아이 때는 사실 남편이 잘 돌보아줄 것 같지 않았기에 오롯이 내가 전담하며 육아를 해 온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를 육아하면서 조금은 돌봐주지 않을까? 믿음으로 (물론 80프로 이상은 불안감도 존재했지만) 그저 맡기려고 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울어도 분유를 타 주겠지, 어떻게든 한 시간, 두시간은 달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한 번을 맡기도 두 번을 맡겼다. 가능한 주말마다 남편에게 둘째 아이를 부탁하려고 했다. 그렇게 단 삼십 분을 힘들어하던 남편이 지금은 한 시간, 두 시간은 그런데로 아이의 뜻에 맞추어 돌보아 준다. 나에게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오기도 한다. 아는 지인이 운영하는 카페에 데리고 가서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하고 사과주스를 주문해서 빨대로 쪼옥쪼옥 들이키는 모습을 보내오기도 한다.
아이를 육아하는 건 부부의 공동 몫이다. 처음부터 잘 하는 부모도 없다. 처음부터 잘 하는 아빠도 없다. 나는 첫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꼬옥 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남편은 더욱 애정이 덜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란 생각이 들었다. 둘째아이는 (내가 첫째 아이를 정말 많이 돌보았으니) 남편에게도 아빠의 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커서 어색한 사이가 아니라, 아빠와 딸 사이에 끈끈하고 애정있는 돈독한 관계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선 나의 의도적인 부탁이 필요했고 어느정도 (못 해도) 눈감아 주는 센스를 발휘할 때도 필요했다. 정말 맘에 안 드는 것도 있지만(흘리는 걸 워낙 싫어하는 사람이라 밥을 자유롭게 흘리면서 먹게 하지 않고 꼭 숟가락으로 입에 떠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와 있을 때는 아빠 스타일대로 밥을 먹을 수 있게 한다.
내가 살짝 틈을 주었더니 남편은 둘째 아이와 정말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압~~빠~! 압~~빠~ 라며 입을 뻐금뻐금하면서 아빠를 부를 때, 남편은 입가가 한 없이 올라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도 참 마음이 좋다. 이 사람,, 이런 웃음도 지을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싶다. 둘째 아이를 바라보는 모습은 한 없이 다정한 아빠다. (물론 울며 떼쓰는 요즘 시기에 버럭버럭 할 때도 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를 않으니..) 그럼에도 첫째 때와는 비교될 정도로 화를 다스리는 수위도 조절하는 것 같다. 화를 내는 범위와 크기가 줄어들었다. 아마도 둘째 아이와 단 둘이 하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 것이며(동영상을 보여주는 시간이 많은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내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일 것이다.
아이가 남편을 조금씩 바꾼다. 거칠고 성난 돌처럼 모난 남편을 둥글둥글하고 섬세한 아빠로 조금씩 바꾸는 듯 하다. 아빠가 엉덩이 춤을 추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니 엘리베이터에서 엉덩이 춤을 씰룩 씰룩 따라 추고 있는 딸아이를 본다. 흘리는 걸 여전히 싫어하는 그 이지만, 궁시렁대면서도 아이가 엎질러버린 물을 수건으로 묵묵히 닦아준다. 이제는 제법 나의 시간을 허용해 줄 줄도 알고, 내가 카페에 가 있는 동안 자기가 아이를 데리고 육아의 도움을 받아야겠다며 아는 지인이 운영하는 카페에 데리고 가서 재우기도 한다. (혼자서 육아를 하기에는 아직도 힘이 든가보다) 내가 보기엔, 아이 낮잠 잘 시간에 재우러 가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런들 어떠하리. 단지 함께 있는 그 순간, 그 공기만으로도 그리고 아빠가 안아주는 그 감촉만으로도 아이는 충분한 사랑을 받을 것이다. 둘 만의 추억이 생기고 또 둘 만이 느끼는 공기가 존재한다. 내일은 또 어떤 추억이 새겨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