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66만원을 날려버렸다

다한증 이라는 그 불편함에 대해

by 정희정

오늘은 나의 지병인, 오랫동안 나와 함께 지내 온 '다한증'이라는 녀석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나는 다한증이 있다. 다한증이라는 증상을 가진 지는 오래되었다. 내가 중학생 무렵이었을까? 언제 쯤부턴가 내 손이 축축한 상태가 되었다. 여름이든, 가을이든, 겨울 이든 할 것 없이 언제나 언제든 내 손은 축축히 젖어있었다. 기억난다. 내가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당시 나의 중학교는 여상(상업고등학교)과 함께 같은 학교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늘 쉬는 시간이면 학교 안에 위치한 간식을 파는 곳에 가서 친구와 간식을 사먹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던 여자친구는 이쁘장한 단발머리를 하고 늘 웃는 얼굴의 아주 호감이 가는 여자아이였다. 나는 들쭉 날쭉한 머리를 잘랐고 (아마도 엄마가 집에서 머리를 자른 듯하다) 키는 멀대같이 커졌을 때다. 그 아이 곁에는 늘 친구가 있었다. 나도 그 아이와 친해지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함께 신체활동을 하는 때가 되면 으레 긴장이 되었다. 손에 땀이 났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내 손을 감추게 되고 뒤로 숨기게 되었다. 친구에게 내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고 솔직히 창피했다. 원인도 모르고 치료 방법도 몰랐다. 그 당시엔 그냥 나는 땀이 많은 아이였다. 언제나 줄줄 흐르는 땀이 싫었지만, 그걸 해결할 방법 조차 몰랐다. 땀이 나는 건 부모님도 알았겠지만 특별히 병원을 간다던가 하는 과정은 없었다. 그저 땀이 많은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점점 소심해져 갔고, 좋아하던 그 친구와도 그렇게 대면대면하다가 멀어지게 되었다. 물론 그 친구와 더 친해질 수 있는 계기는 많았겠지만 그 당시에는 나에게 큰 컴플렉스였다. 내가 다한증이라는 사실은 어른이 되어 알게 되었고, 사실 알고 나서도 이렇다할 치료나 수술은 아직 받지는 않은 상태다.


그런 나에게서 아이가 태어났고, 아이가 어릴 때는 으레 아이가 잠을 자면 땀을 많이 흘리니 그런가보다 했다. 그 아이가 다섯 살이 되고 일곱 살이 되면서 아이의 손에도 나와 같은 증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의원에 침을 맞으러 가보기도 했고, 수술 관련 상담을 하기 위해 인터넷도 들여다보기도 했지만, 수술할 나이는 아직 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확인해야 했다. 아이는 아직 성인만큼의 체구도 되지 않을 뿐더러 성장기이고 아주 중요한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이 전달되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걸 알면서도 가능하다면 아이를 위해 수술을 선택하고 싶었다. 아마도 앞으로 5년, 10년을 불편감을 안고 살아갈 것을 알기 때문에 여기저기를 알아보았다.


내가 사는 곳 근처에도 다한증과 같은 피부질환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곳으로 향했다. 약간 허름한 건물에 오래된 냄새가 났다. 첫 인상은 썩 좋진 않았지만, 그래도 내 아이의 증상을 고쳐보고자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여러 명의 환자 들이 오고 갔고, 우리도 원장실로 들어갔다. 다한증에 대해 확인하고 땀이 있어 습진이 있다는 말과 함께 6개월을 꾸준히 한약으로 치료하면 좋아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한참 아이와 나는 상담을 진지하게 듣고 아이의 손을 잡고 나왔다. 그리고 결제를 하는 곳으로 안내받았다. 직원이 친절히 안내해주었고 나는 너무나 큰 금액에 놀랐다. 한꺼번에 결제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한 달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도 아이와 그리고 나를 위해서 , 다한증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친구관계에서도 위축되게 만드는 것인지 알기에 그렇게 카드할부로 결제하고 말았다. 남편이 밖에서 지켜보는 것만 같아 조마조마했다. 남편은 아마 모를 것이다. 그저 땀이 평소보다 많이 나는 정도라고 생각할 것이고, 이정도 가지고 이런 큰 금액을 결제했다는걸 알면, 미리 이야기를 하면 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여력도 없었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지만 그래도 내 소신으로 결제를 하고 말았다. 나오면서 나의 눈치를 보는 남편에게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 할 수는 없어 조금 내린 가격으로 말하고 남편은 흠칫 놀란 눈치였다.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의 딸에게 다한증이라는 증상이 생긴 것이 모두 나의 유전적인 소인 때문이리라. 나도, 내 여동생도 중학생 정도부터 손에서 그리고 발에서 무럭무럭 땀이 샘솟았다. 나보다 여동생이 더욱 심했는데, 특히 공책에 필기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도 늘 손 아래 쪽에 손수건이나 휴지, 조금 빳빳한 종이를 대고 필기를 하곤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런 불편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나와 같은 증상의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고 약한 정도부터 아주 심한 정도까지 다한증의 범위는 상당히 넓다. 사실 속으로는 매우 불편하고 일상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데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에, 불편감을 감수하고 지내는 것일 뿐.

아이가 요즘 가정돌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거의 집에서 혼자 지낸다. 밥도 혼자 먹고, 온라인 학습도 배움노트 숙제도 혼자 풀어야 하는데, 저녁 늦게나 집에 오면 숙제를 상세히 봐줄 수가 없다. 나 역시 하루 종일 집을 찾아다니고 운전을 하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방문을 하는 일을 하는 터라 퇴근하면 녹초가 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돌봐주려고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늘 혼자 지내는 아이에게 학교 상담선생님(위클래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주고 만다라 색칠하기도 권해주었다. 선생님에게 배운 요가와 명상을 집에 오면 따라하기도 했다. 선생님의 귀기울임과 이야기 나누는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아이는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갔다. 그러면서 전화통화를 하던 중,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이가 다한증으로 힘들어하고 불편해 하는 상황을 눈치채신 것이다. 그렇게 선생님은 나와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손에 땀이 축축하게 묻어나와 공책에도 젖고, 제일 중요한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위축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한증을 조금이라도 낫게 할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는 이야기를 했다. 나 역시 다한증의 불편함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어떻게든 치료를 하고 싶어 선생님의 조언과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여러가지 이유들로 인해 나는 아이의 다한증을 고쳐주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 노트북 자판기를 두드리면서도 스물스물 손바닥과 손가락에 땀이 찬다. 나와 같은 증상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겠지? 그리고 나의 이런 증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운전을 할 때도 손에 땀이 축축하게 묻어나고 주사를 놓을 때도 긴장을 하거나 하면 더욱 손에 땀이 짙어진다. 물이 뚝뚝 흘러내리기도 한다. 나의 딸을 위해 한의원에서 약을 지어 한 달동안은 거의 매일 3번을 꼬박꼬박 잘 챙겨먹었다. 그렇게 믿음으로 쭈욱 나아갔으면 좋았겠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아이의 발가락 염증이 한달 넘게 지속이 되었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면서 항생제도 매번 바뀌기도 했다. 마지막 피부과에 들러 지은 항생제 때문인지, 정확한 연유는 모르겠지만 그 날 이후로 아이 몸에 두드러기가 확 번졌고 항생제 알레르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발가락 염증에 여러가지 약물에 한약까지 버티면서 먹어왔는데, 아이의 몸이 우선이었다. 어떤 작용을 일으킬 지 알 수 없고, 지금 당장 아이가 두드러기에 신경통까지 걷지도 못할 정도로 정말 많이 힘들어했다. 나 역시 일을 하는 중간중간 들러, 아이의 몸 상태를 체크했지만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아주 미세하게 조금씩 나아지면서 당분간 한약은 끊기도 했다. 아이도 한약을 먹는 것에 많이 힘들어했고, 맛도 좋지 않았다. 모든 한약재가 그렇겠지만, 어른이 먹기에도 사실 힘든 경우가 많다. 하루 매일 세 번을 자기 스스로 혼자 챙겨 먹기란 더욱 힘들었을 거다. 그런 상황을 알기에 나 역시 강요를 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의 다한증이 치료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아이의 두드러기와 통증을 잡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였고, 아이에게 너무 큰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약은 냉장고에서 기다렸고, 그렇게 보관되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아이의 상태도 나아졌고, 아쉽지만 한약은 다시 먹을 엄두를 못 내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66만원을 날렸다. 이미 보관되어 있긴 하지만, 사실 다시 먹게 될 거라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한약이란 것이 그렇지 않은가. 누군가의 성의와 정성에 의해 전달되었고, 나도 산후보약으로 시댁에서 지어주신 한약이 여전히 냉장고 속 서랍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많이 먹는 다고 먹었지만, 믿음이 부족해서일까? 나의 인내심이 부족해서 일까? 나도 그럴진데, 아이에게 한약을 먹으라고 매일 챙겨먹는 것을 지키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거금의 돈 66만원. 카드 할부로 다달이 빠져나갈 돈. 이 돈이면 책을 얼마나 많이 살 수 있는데. 아이들과 맛있는 걸 사먹고도 남을 돈인데. 아이의 증상과 건강을 생각하면서 지은 한약의 값이 그제서야 크게 와닿았다.


여유가 있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 우선순위는 아이의 다한증의 불편감을 없애주는 것이었고, 두드러기가 나면서 전신통이 왔을 때는 한약은 후순위로 밀려난 것 뿐. 그리고 아이가 원체 한약 먹기를 너무너무 싫어했다는 것 뿐. 그 뿐이다. 지금에 와서 다시 먹을래? 물으면 당연히 안 먹는다고 한다. 자신도, 엄마처럼 다한증이 있고 친구의 손을 잡거나 사귀는 것에 위축되는 감정을 느낄 지도 모르는데 지금 당장은 싫은 거다. 한 두달 먹고 정말 드라마틱하게 증상이 없어지면 어떻해서든 먹겠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니 그대로 두기로 했다. 이 역시 엄마의 욕심이 아니었을까? 내가 불편한 것을 알고, 내 아이가 똑같은 불편감을 안고 살아가는 건 너무 싫었다.


최근 이쁜 아기를 출산한 여동생과 전화 통화를 했다. 여동생은 나보다 더 심한 다한증으로 고생을 했는데, 몇 년전 다한증 (교감신경 절제술)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 속상하고 답답했는데 여동생에게 토로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나를 이해해주었다. 아직 10살인 아이가 스스로 한약을 어떻게 챙겨먹을 것이며, 당장의 효과가 보이지 않는데 어른의 입장에서도 약을 챙겨먹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거라는 말. 그리고 자신은 수술을 했지만 이전처럼 뚝뚝 떨어지듯이 흘러내리는 땀 때문에 불편함을 없다는 것. 물론 보상성으로 가슴이나 등쪽으로 땀이 나는 경우가 있다고 했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생활에서 훨씬 자유로워 진것은 분명해 보였다. 여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리고 아이를 생각하며 그래.. 우리도 나중에 필요하면 수술을 하자. 생각했다. 아직 아이는 연령이 되지 않지만, 점점더 좋은 의료기술과 다한증 약제가 개발될 것이라 믿는다. 한약이 백프로 치료가 되지는 않을 것이고, 수술 또한 마찬가지일 거다. 단지 순간수간의 선택의 기로에서 내가 우선시하는 우선순위를 정해가며 선택할 뿐.


그렇게 우리는 66만원을 냉장고에 묵혀 두었다. 살다 보면 정말 예상치도 못하게 나가게 되는 돈들이 있다. 알차게 쓰면 다행이지만, 이렇게 한 달더 먹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은 약값이 상황 때문에 먹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그렇게 이대로 영원히 안 먹을 기로에 서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허공에 돈을 날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쓴 돈도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는 걸까? 실속없이 쓴 만큼, 66만원보다 더 많이 벌어야지 생각을 하게 되는 걸까. 더 많이 벌어야지. 우리 가족과 더 잘 살기 위해, 더 잘 먹고 잘 쓰기 위해 오늘도 나는 생각한다. 앞으로 나갈 카드할부금은 속이 쓰리지만, 지금에라도 나머지분은 취소해서 다행인 걸까. 올해가 가기 전 그 만큼의 수익이 또 들어왔으면 좋겠다. 곧 그렇게 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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