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일기 2-8. 체면문화

25년 10월 15일

by 정둘


얼마 전 수첩을 보다가 올해 초에 내가 적어둔 다짐들을 발견했다.

2025년은 이렇게 살리라 다짐하며 올해 초에 쓴 내용


그러곤 곰곰이 생각했다.

그래,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게 남에게 피해 주는 일도 아닌데 왜 숨기려고 하고 있지? (내 친구들 중 단 1명만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 30대이지만 몰고 다닐 차 하나 없다는 걸 왜 부끄러워하지? (그들이 내 버스비 내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지금 일을 쉬고 있다는 걸 왜 은근 안 들키려고 바쁜 척하는 거지? (내가 수입활동을 안 하고 있다는 게 그들을 불편하게 만드는가? 아니다!)


내 안에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뒤엉켜 있는지.. 씁쓸해하며 밥을 먹다가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근데 우린 참 남들한테 피해 주는 일도 아닌데 눈치 보는 일이 많은 것 같아. 안 그래?"

" 응 맞아. 우리나라가 양반사회였잖아. 체면문화가 남아있어서 그래."

"!"


굉장히 통찰력 있는 한마디였다. 과거에 양반, 상인, 노비의 계급 사회였던 우리는 '체면'이 구겨지는 걸 못 참는 문화가 있다. 그 유명한 영화대사도 있지 않은가?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체면' =일본어의 '가오')


수업시간에 교실에 앉아 멍하니 앞만 보고 있다. 선생님의 친절한 반복 설명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질문을 할 순 없다. 다른 애들의 표정을 보라. 다 이해한 듯한 표정이다. 질문을 하는 순간 내가 이 교실에서 가장 멍청한 학생으로 낙인찍힐 것만 같다. 나는 똑똑해 보이고 싶다. 침묵으로 내 체면을 지킨다. 불행한 이야기다. 서로의 눈치를 보며 대다수는 이해 못 한 채로 넘어가고, 선생님은 대다수의 학생들을 이해 못 시킨 채로 넘어간다.


결혼식의 과소비 문화, 형편에도 안 맞는 중고 외제차, 아르바이트비로 명품가방 구매하는 것 등 이런 것들도 다 체면문화의 한 형태일 것이다. 하긴 사람들이 자기 돈으로 뭘 하든 내가 관여할 문제는 아니다. 다만 나는 그런 태도와 생각에 저항하고 싶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생각할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

자꾸 내 안에 점을 찍자. 어렵지만 자꾸 연습해 보자.



오늘의 칭찬일기.


1. 어젯밤부터 우울 비슷 했던 게 오늘 아침에 나타났다. 오늘 수영 수업을 가지 않은 것이다. 왜 오늘 안 왔냐는 수친들의 연락에 대충 늦게 일어났다고 둘러댔다. (늦게 일어난 건 맞다ㅎㅎ) 오늘 수영을 가지 않은 대신 운동으로 아침 산책을 다녀왔다. 평소엔 좋아하던 산책도 이상하게 가기 싫었는데 억지로 몸을 일으켜 다녀왔다. 결과적으론 다녀오길 참 잘했다. 마음이 무거울 땐 확실히 몸도 무겁다. 그럴 때 억지로 걸어서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잘했다 오늘!

2. 눈앞에 처음 보는 길이 생겼다. 그래서 일단은 거기로 가보려고 한다. 뭐 처음부터 다 알고 시작하는 완벽한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일단 가봐야 아는 법이지. 그래서 시험 하나를 준비하려고 한다. 아는 지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책도 샀다. 시험 준비로 마음을 결정하기까지 추석 내내 혼자 고민을 했었는데, 일단은 눈앞에 길이 보이니 가보려고 한다. 이게 내 나름대로 인생을 최선을 다해 사는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일단 뭐든 해봐야 알지 않겠는가. 일단은 가보자고!

3. 이렇게 자꾸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는 나를 타박하지 않으려고 한다. 네가 스스로 길을 정해서 개척해야지라고 생각하는 목소리 하나, 그 반대편엔 그래도 일단 길이 보이니 거기로 한번 가보는 것도 괜찮아라고 하는 목소리 하나가 서로 싸우고 있다. 잘 살아내고 싶은 마음, 실수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자꾸만 흔들리는 내 모습이 스스로 못 마땅하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내 모습..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게 지금 내 상태인걸. 이런 나라도 내가 나를 받아줘야지 누가 날 받아주나. 안 그래도 마음이 괴로운데, 스스로 질책하지 말아야지. 난 결국엔 길을 찾고야 말 것이다. 흔들리지만 길을 찾고자 계속 노력하다 보면 언젠간 발견할 수 있겠지. 중꺽마를 기억하자고!



뭘 했다고 벌써 수요일인가..

뭘 했다고 벌써 10월 중순인가..

시간도둑이 있는 게 분명하다..



오늘도 고생 많았어.




이전 07화칭찬일기 2-7. 타인에게서 듣는 칭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