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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 혜진 Oct 30. 2019

이민 가야 하는 구실, 역이민의 핑계(1)


2019년 3월 2일. 여전히 눈발은 거세다. 토론토에 봄은 멀었나? 한국은 벌써 동백꽃이 폈겠네. 곧 목련도 피겠지. 연분홍 진달래만 흐드러진 민둥산 등성이를 넋 놓고 올려다보다 이유 없이 눈물이 핑 돌던 사춘기 어린 시절이 아련하다. 요즘 아이들은 미세먼지에 가려진 빌딩 숲이 잊지 못할 감성이 될까. 토론토에도 미세먼지처럼 뿌옇게 눈발만 흐드러진다. 이래저래 캐나다 살이가 10년이 넘었는데도 3월만 되면 심장을 타고 봄바람이 콩닥콩닥 불어온다. 내 유전자 속에 3월은 눈이 와도 봄이다. 눈밭을 꽃 길삼아, 산책은 이런 날 해야 제맛이지. 등산 좋아하는 이들이 겨울 산행의 묘미에 빠지듯이 눈보라가 몰아치는 추운 겨울날 땀나게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것이 얼마나 상쾌한지, 아는 사람만 안다.  특별히 바쁠 것도 없는 주말 아침, 문득 옷을 챙겨 입었다. 일기예보 속 현재 기온은 영하 10도. 단단히 챙겨 입어야 문밖으로 나갔다가 뛰쳐 들어오는 일이 없겠지. 방풍 방수는 기본이고 몸에 열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특수 처리했다는 롱 패딩을 챙겨 입고 얼음판에서도 안 미끄러지는 캐나다산 스노 부츠를 단단히 동여 매고 뚱기적 거리며 집을 나섰다. 자. 나가볼까, 동네 한 바퀴. 뽀드득뽀드득 살아있는 눈길을 걷기에 딱 좋은 날이다. 캐나다산 스노부츠는 스노타이어만큼 단단하게 눈을 제친다. 


눈이 오기 시작하면 집주인은 자기 집 앞 인도에 쌓인 눈을 치워야 할 의무가 있다. 길가던 행인이 내 집 앞에서 미끄러져 다치기라도 한다면 변호사를 선임해서 치료비며 크고 작은 손해까지 청구한다. 내가 사는 콘도(아파트) 문밖에도 굵은 왕소금이 온통 길바닥을 덮었다. 콘도 관리실에서 뿌려댄 것이다. 발짝을 뗄 때마다 소금 밟히는 소리가 버스락 거린다. 백인 남자 하나는 반팔 차림으로 자기 집 차고 앞에 눈 삽질을 해댄다. 얼었다 녹았다 다시 쌓이는 눈은 틈틈이 치우지 않으면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여 삽 하나로 해결 안 되는 지경에 이른다. 눈치껏 쌓이는 눈을 가늠하면서 후다닥 뛰쳐나와 쓱쓱 몇 번 삽질을 하고 다시 후다닥 뛰쳐 들어가는 이들이 멀리서 한둘씩 퍼포먼스처럼 들락거린다. 요령이 없거나 게을러서 눈 삽질을 못하는 사람들은 왕소금 한 포대를 눈 위에 소복이 쏟아붓는다. 그런 집 앞을 지날 때 신발 밑에 엉겨 붙은 왕소금은 집에 들어가 신발을 벗을 때까지 집요하게 따라다닌다. 고급 가죽 구두를 신고 눈 온 거리를 걷는다면 소금물에 구두가 허옇게 변색되어 폼나는 제 모양을 되찾기 어렵다. 투박한 스노부츠 없이 토론토 겨울을 나기는 쉽지 않다. 


캐나다에서 겨울을 나는 방법은 많지 않다. 겨울이 오든 말든 쿨하게 무시하고 지내거나, 스케이트도 타고 스키도 타고 하키 게임에 몰두하면서 무료함을 달래야 정신 건강에 좋다. 또는 나처럼 뒤뚱거리면서 빠른 걸음으로 걷다 보면 어느 날 문득 겨울을 관통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봄을 만날지도 모른다. 모두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긴 겨울을 내내 달력만 쳐다보면 언제까지나 눈이 오고 또 오고 바람이 불어 겨울은 떠나지 않으리라. 캐나다는 겨울이 길고 추운 지역이라는 걸 고등학교 사회시간에도 배웠던 것 같다. 공부 잘하는 우등생이었다면 두고두고 기억했을지 모르지만 나 같은 어중이떠중이는 캐나다가 어디 붙어 있는지도 잘 모르다가 이민 가겠다고 설칠 때부터 어렴풋이 감이라도 잡아보는 게 고작이다. 토론토는 일 년에 반은 겨울이고 , 영하 20도를 예사로 오르내린다는  얘기를 듣고 그때서야  덜컥 겁을 먹기도 한다. 캐나다 더 북쪽에 있는 마니토바, 사스카츄원, 앨버타, 유콘 같은 지역은 체감온도 40도까지 내려간다는데 , 얼마나 추운 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런 곳에도 몇십만 명씩 모여들어 도시를 이루고 산업이 발달했으니 캐네디언들 참 대단하다. 이민 와서  맞은 첫겨울, 체감온도가 영하 30도까지 내려간 어느 날,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에게 담요를 나눠주는 자원봉사에 따라나선 적이 있다. 그날 두어 시간 동안 헤매고 다니면서 경험한 영하 30도는 추운 게 그냥 추운 게 아니었다. 내복을 겹쳐 입고 양말도 겹쳐 신고 털이 복슬복슬한 스노 부츠에 두툼한 장갑을 끼고 걷기도 불편하게 꽁꽁 싸맸지만 처음에는 덜덜 떨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몸이 어는 것처럼 뻣뻣 해지더니 따끔 거리는 통증까지 밀려들었다. 장갑 낀 손가락 끝은 감각도 없어지는 것 같았다.  동상이 그렇게 온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전기장판 덕에 뜨뜻해진 이불속에서 몸을 녹였지만 밤새 솜털 모근을 타고 찬바람이 빠져나오는 것 같아 잠을 설쳤다. 얼어 죽지 않으려면 겨울에는 섣불리 바깥 활동을 하면 안 된다는 걸 피부로 깨달은 날이었다. 그래도 먹고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한겨울에도 건물을 올리고 한 데서 자동차를 고치고 눈길에 배달을 하고 빙판길을 엉금엉금 걸어 나와 식당이나 가게문을 열어야 한다. 


몇 년 전 항공기 정비사라던  스물두 살 젊은이가 이민 상담을 왔는데, 계약서 사인할 때 보니 손톱 밑이 새까맣고 손등이 가뭄 든 논바닥처럼 거칠었다. 일하는 데가 추운지 물었더니 ”추워요. 춥지요" 하면서 배시시 웃었다. 추운데 왜 여기서 그러고 사는지 물었더니 “그래도 마음은 편해요. 일만 열심히 하면 멀리 보고 꿈을 꾸며 살 수 있어요.”하길래, 한국이 싫어서 떠나왔느냐 재차 물었다.  “한국이 왜 싫어요. 한국 좋죠. 맨날 가고 싶은데 꾹 참고 살아요. 영주권 받고 나면 군대도 다녀오고 기회만 된다면 한국 가서 살고 싶어요” 답변을 듣고  안쓰러운 마음에 손등을 살짝 어루만질 뻔했다. 그 청년은 갑자기 바뀐 이민제도 때문에 영주권을 못 받고 계획보다 일찍 군대에 다녀와, 의리 있게 기다려준 시민권자 애인과 결혼했다. 지금도 여전히 추운 데서 비행기를 고치고 있겠지. 혹한의 추위쯤 거뜬하게 넘어설 수 있는 젊음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나이 든 이민자는 젊은이와 형편이 좀 다르다. 가족까지 이끌고 호기롭게 캐나다로 넘어왔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체 시간만 보내다가 돈 잃고 건강마저 잃은 이도 있고, 예상보다 이민생활이 버거워서 부부간에 서로 탓을 하다가 가정이 파탄난 집도 여럿 있었다. 그나마 가족 간에 뜻을 모아 힘겹게 추스르고 ‘철수’하는 일은 다행스러운 축에 든다. 그 정도 어려움을 견딜만한 각오를 안 했거나 그만큼 힘들 거라는 예상을 못했나 보다. 캐나다 이민을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같은 아파트에 살던 우아한 기러기 엄마는 말끝마다 후회를 달고 살더니 끝내 본인이 왔던 길을 되돌아 한국으로 가버렸다. 무거운 롱 패딩을 입고 둔한 스노 부츠를 신고 어기적 거리는 자신의 모습이 추해서 싫다는 게 귀국의 핑계였다. 싸 짊어지고 온 살림은 뭐가 그리 많았던지 다 추스르지도 못하고 대부분  버려둔 채 돌아갔다. 그중 화려한 식기 몇 개는 어울리지도 않는 우리 집 허름한 식탁 위에서 어색하게 빛나기도 했었다. 캐나다가 얼마큼 추운지 모르고 왔었나 보다. 그런 이들을 더러, 아니 생각보다 자주 만난다. 그렇다고 그들 말을 다 믿는 것은 아니다. 만만한 핑곗거리가 날씨였겠지. 아니나 다를까 아줌마들 수다 속, 진위를 알 수 없는 그 집 사정은 은행 통장 역할을 하던 남편이 직장 후배와 바람났는데 돈도 안 보내주고 이혼을 요구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돌아갔다는 영하 30도만큼 썰렁한 얘기였다. 애들은 무슨 죄라고, 다 같이 혀를 끌끌 찼었지. 그러고 보니 추워서 못살겠다며 돌아간 이 상수 씨는 한국에서 여전하실까? 


몇 년 전 3월 어느 날 눈 폭풍이 몰려온다고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 뉴스에서도 떠들썩하게 경고를 하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얼마나 오길래 이 난리야.’ 매년 당하는 일이지만 당할 때마다 긴장이 된다. 마지막 고비라고 생각하기에는 겨울이 두 달이나 더 남았으니까. 전화가 왔다. 내가 10여 년 전 한국에서 일할 때 내 손으로 영주권을 받아준, 그때는 40대였는데 이제 50대 중반이 된 이 상수. ‘데이 트레이딩’이 직업이라던 이다. 이민 수속을 하면서 고객과 2~3년을 훌쩍 넘겨 동행을 하다 보면 미운 정 고운 정이 들기도 하는데, 지나치게 미운 정이 많이 들었던 남자다.  캐나다 동부 뉴브런즈윅 주정부 사업이민을 진행하면서 어찌나 잘난 체를 하고 까칠하던지, 급한 서류 작업 때문에 밤을 새우는 직원들을 붙들고 사사건건 확인하고 또 하고 한 시간 넘는 훈계질도 서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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