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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 혜진 Mar 12. 2020

신천지 신자를 혐오하지 않겠습니다.

내 친구 중에도 신천지 신자가 있을지 모르니까요.


내가 어릴 때였으니까 70년대 후반쯤이었을 겁니다. 똘이 장군이라는 애니메이션을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반공을 주제로 다루고 있어서 북한군을  악랄한 늑대로 묘사했습니다. 똘이 장군은 타잔 같은 행색을 한 꼬마입니다. 그런데  항상 궁지에 몰린 선량한 사람들을 악독한 늑대에게서 구해 냈습니다. 어린이들은 똘이 장군에 열광했고 당시 어른들에게도 인기 많은 영웅이었습니다. 나에게 똘이 장군은 마루치 아라치, 태권 브이와 미래소년 코난과 함께 잊을 수 없는 추억 속 애니메이션입니다.  “똘이장군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로 시작하는 주제가를 지금도 흥얼거릴 정도니까요.


1980년대 후반이었는지 90년대 초반이었는지, 어느 날 텔레비전 뉴스에서 북한의 모습을 보여 줬습니다. 그런데 화면 속 어디에도 늑대는 없더군요. 뉴스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때 느낀  묘한 실망과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성인이 된 후였으니 똘이 장군 속 늑대는 북한 독재 정권을 표현하는 은유적 묘사일 뿐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북한에는 사람을 괴롭히는 ‘늑대’가 산다는 강렬한 이미지가 머리에 남아 있었나 봅니다.  늑대는 공포와 혐오를 넘어서 증오의 대상이었습니다.


친숙한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반공 교육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북한 괴뢰는 늑대와 다를 바 없는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문제는 주변에 적대시할 대상이 생기면 북한 괴뢰와 같은 편이라며  '빨갱이'로 몰아붙이기 일수였다는 것입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반항적인 친구를 빨갱이라고 놀리던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나에게 빨갱이는 늑대의 이미지였기 때문에 빨갱이로 불리던 친구도 늑대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슬며시 그 친구를 멀리 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한번 증오하는 마음이 생기면 지우기 어렵습니다.  만약 누군가를 증오하게 된다면 관계를 회복하기 쉽지 않습니다.      


오늘 우연히 어떤 기사의 댓글에서 입에 담기도 어려운 신천지 혐오 글을 읽었습니다. 영화 속에 나오는 마귀 같은 존재로 묘사를 했더군요. 살아야 할 가치를 운운하며 저주를 퍼부었더군요. 나도 신천지 신자들은 나와 다른 인간이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범죄 집단 조직원쯤으로 치부하니 공포스러워지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댓글을 보고 '빨갱이'로 불리던 친구가 떠올라 섬뜩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야. 단지 어쩌다 보니 사교집단에 들어갔고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을 뿐이야. 사이비 종교는 사람의 약한 마음을 파고든다는데... 나도 흔들릴 때, 무엇인가 붙잡고 싶을 때가 있잖아.”


그러다 문득 ‘내 친구 중에 신천지 신자가 있다면 어쩌지? 자신들이 신천지 신자인 것을 숨긴다고 하니 내 친구 중에도 신천지 신자가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신천지 신자가 아닐까 싶은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슬쩍 두려워졌습니다.


 하지만 만약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사람이 신천지 신자라면 그래도 그가 무섭고 증오스러워질까 하고 스스로 질문을 해봤습니다. 다행히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연달아 그 친구가 이 혐오 댓글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꼬리를 물더군요. 그래서 댓글 신고하기를 클릭했습니다.      


이단과 사이비 종교는 다릅니다. 이단은 단지 종교적 관점이 다른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같은 예수를 믿는 사람끼리 분파를 나누고 서로 이단이라며 분쟁을 일삼기도 합니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이단 논리는 사실상 '나만 옳다'는 배타적 표현입니다.  옛날 예수 시대에는 누가 이단이었을까요.


그런데 사이비 종교는 일개 분파를 자처 하지만 사회적 통념과 질서를 무너뜨리고 피해자를 만든다는군요. 나는 신천지에 대해서 잘 모르고 더군다나 교리에 관심도 없습니다. 누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요즘 사회적 질서에 반하는 모습을 보면 사이비 종교가 맞는 것 같습니다.  만약 지금까지 신천지가 사이비 종교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면 이젠 의심해볼 때가 된 것 아닐까요.


다만  내 옆에 신천지 신자가 있다면  나는 그를 혐오하지 않으려 노력하겠습니다. 아니, 혐오하지 않겠습니다. 내 머릿속에 신천지 신자를 공포 영화 속 마귀의 이미지로 남겨두지 않겠습니다. 내 친구로 기억하겠습니다. 만약 이 난리 통에 내 친구 중 누군가가 신천지 신자라는 게 들통 나서 난감한 상황이 된다면 나는 조용히 응원하겠습니다.


“괜찮아. 이제 옆에 있는 친구의 손을 잡고 , 그곳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바라”


내가 뭐라고 신천지를 이단이니 사이비니 하면서 정죄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이제 그곳에서 나오고 싶어 졌다면 옆에서 있는 친구를 믿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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