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국 옥스퍼드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큰딸과 캐나다 토론토에서 대학을 다니는 둘째 딸이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인간이 난관에 봉착해 있는 요즘 저희 가족도 예외는 아닙니다. 특히 아아들이 타국에 있으니 더 심난합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딸들이 내 걱정을 했는데 이제 양상이 완전히 뒤 바뀌었습니다. 유럽 전역은 전쟁 통과 다를 바 없고 영국 왕세자와 총리까지 코로나에 감염되었다고 합니다. 캐나다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확진자가 늘고 있습니다. 정말 바이러스는 사람도 지역도 계층도 가리지 않는군요. 다행히 아이들은 잘 대처하며 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딸 둘 모두 조만간 한국으로 입국할 계획이라는데 있습니다. 평소에도 4월이면 학기가 끝납니다. 현지 거주지도 비워줘야 합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비행기 표도 진즉에 끊어 놨습니다.
그런데 요즘 같은 때는 와도 걱정 안 와도 걱정입니다. 오는 길에 감염될 가능성도 높아 보이는 데다 국내 확진자 중 다수가 해외 유입자라서 여론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일부 ‘무개념자’들 탓에 모든 해외 입국자들이 싸잡아 질타를 당하고 있으니 유학생들은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온라인 유학생 모임에도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을 탓하는 글이 자주 올라옵니다.
서로 더욱 조심하자고 독려하기도합니다. 사실 그들의 ‘자숙’ 안에는 유학생이나 해외 입국자들에 대한 정책이 언제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도 있습니다.
유학생 모두를 금수저로 보는 사람들의 편견에 억울하다는 글도 있더군요.
한국으로 오는 것이 좋을지 그냥 현지에 머물 것인지 고민하는 글도 많습니다.
요즘 해외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것은 여러 가지로 좋지 않은 상황입니다.
토론토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둘째의 경우 벌써 3번째 비행기 노선이 변경됐습니다. 직항이 없어진 터라 미국을 경유해야 하는데 갑자기 운항이 취소되거나 일정이 변경되곤 합니다. 이러다 부모가 있는 집에 돌아오지 못할까 봐 긴장도 됩니다. 아직은 오는길이 막한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이 곧 집으로 돌아올거라고 기대하며 차분히 입국 후 자가 격리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입국 동선에서 감염되거나 전파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우리 가족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회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큽니다.
오늘 아침에 영국에 있는 큰딸과 1시간 넘게 통화를 했습니다. 인터넷 덕분에 전화요금 걱정 없이 지척에 있는 것처럼 얼굴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일상이 달라졌으니 대화 내용도 대부분 코로나 때문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나는 큰딸의 유학비를 지원해주지 않았으니 싸잡아 금수저로 취급받고, 욕먹는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괜한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요즘 개념 없는 유학생 들 때문에 유학생이 전부 싸잡아 욕먹는다. 금수저라고 욕하는 사람도 있어. 너는 금수저도 아니면서 도매금으로 욕먹는 것 같다. 요즘은 유학생이라는 말도 못 하겠어.”
“욕 좀 먹어도 돼. 자기 생각만 하는 인간들. 정신 차려야 해.”
“너도 유학생이잖아. 남들이 너도 금수저라고 생각해. ”
“나도 부모가 부자는 아니지만 금수저 맞지. 아무나 갖기 어려운 기회를 가졌으니까. 그러니까 더 조심하고 남들 눈치 봐가며 살아야 해.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지.”
오늘 아침에 대학원생 큰딸에게 한수 배웠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유학생은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었습니다. 부유한 사람들만 유학길에 오른다는 편견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 유학은 경제력보다기회와 선택에달렸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것보다 유학 비용 이 많이 든다고 생각들 하지만 의외로 모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보다 적은 비용으로 유학생활을 하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물론 많은 준비와 남다른 의지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내가 이민, 유학 수속 업무를 할 때 만났던 사람들 중에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젊은이는 한국에서 부모 찬스를 누리지 못했기 때문에 홀가분하게 독립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가난했던 유년기의 기억을 피해 한국을 떠난 젊은이도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기회를 찾다가 해외 취업길에 오를 젊은이도 무수하게 많습니다. 달랑 비행기 요금만 들고 출국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실 겁니다. 무모하다고 힐난하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었을 수도 있고 남다르게 진취적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할 때 용기가 생기는가 봅니다.
지금 유학이나 취업 때문에 다양한 국가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이나 그 가족들 모두 단지 다른 길을 선택한 용감한 한국인 일뿐입니다. 대부분 한국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우리’입니다. 그곳에서 고군분투하며 각자의 길을 가다가 어느 날 '집'이 그리워지면 문뜩 돌아올 짐을 쌀지도 모릅니다. '집' 은 항상 떠난 가족을 환영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요즘 같은 때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형편이 좋은 편입니다. 비자 문제 때문에 그곳에 남아 있어야 하는 사람도 있고 한국으로 와봐야 기거할 곳이 마땅치 않아 현지에서 숨죽이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 비행기 요금이 부담스러워 못 오는 사람도 많습니다.
만약 그들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고국으로 돌아온다면 응원하고 보듬어 주는 게 '우리'입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유학생과 해외 거주자, 동포들은 두고두고 고국의 은혜를 갚으며 '우리'로 남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