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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 혜진 Dec 07. 2022

내 아이는 왜 자기 주도성이 없을까.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자기 주도성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합니다.  "누굴 닮아 그런지 모르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쯤 혼자 알아서 공부하고 방 청소하고 자기가 할 일을 계획하고 실천할까. 하는 질문을 합니다. 어떤 입시 전문가는 자기 주도성은 고등학교 들어가야 발현된다고 했다더군요. 맞는 말일까요?


자기 주도성이 무엇인지, 목적과 이유, 주도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언제 주도적이 되는지, 어떻게 해야 주도성을 기를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바라는 자기 주도성이란 아침에 혼자 일어나서 밥 먹고 준비하고 빠진 물건 없이 가방을 챙겨 학교에 가고 정신 똑바로 차려 수업에 집중하고 집에 와서 씻고 밥 먹고 책상에 앉아 예습 복습하고 학원에 가서 다시 배우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선생님께 질문하고 집에 돌아와서 배운 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반복 학습을 하는, 일련의 과정을 스스로 해내는 것을 말합니다. 심지어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는 것도 포함됩니다. 이중 한두 가지쯤 빠져도 괜찮지만, 적어도 공부와 관련해서 만큼은 주도적으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자기 주도적으로 저 위의 모든 일을 해 내는 아이들을 정말 많이 만났습니다. 제 딸들을 포함해서, 제가 만난 많은 아이들이 초, 중등과정부터 자기 주도적으로 하루를 살고, 한 달을 살고, 1년을 살더군요. 안타깝지만 대부분 캐나다에서 만난 아이들입니다.


그렇다면 캐나다의 아이들과 한국의 아이들은 무슨 차이 때문에 주도성에서 차이를 보일까요. 이건 명백히 무슨 일을 왜, 얼마큼 해야 하고 일을 마친 후 돌아오는 만족감(성취감)이 아이에게 어떤 동기부여를 해주느냐의 차이입니다. 감내해야 할 고통이 얼마나 큰지, 큰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는 분량의 일인지에 따라 주도적으로 하기도 하고 못하기도 합니다.


내가 캐나다에서 만난 아이들은 대부분 얼마 되지 않는 학교 숙제를 마치고 기꺼이 부모의 가사일을 돕고 부모와 상의해서 예체능 활동을 하더군요. 해야 할 일의 분량이 많지 않고 감내해야 할 고통도 크지 않고, 합리적인 선에서 이해하고 타협하며 수긍할 수 있는 목표를 정하기 때문 입니다.


반면 한국은, 아이들이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대학 입시, 출세나 영달은 아이들에게 너무 멀고 막연한 목표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적고 밤늦은 시간까지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해야 합니다.


만약 입장을 바꿔, 시부모가 매일 나를 불러서 일을 시킨다면, 그것도 쉴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일,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난이도의 일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하기 싫을까요. "왜? 무엇 때문에?"를 외치다가 남편과 사이도 나빠지고 급기야 이혼을 선언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혹여 수억 자산을 물려주겠다고 하면 참고 견뎌 볼까요? 그런데 그 자산을 언제 물려줄지도 모르겠고 노동의 강도는 참기 쉽지 않을 만큼 세다면 그래도 계속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처한 상황이 위의 예와 별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주도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할 수 없는 양과, 노력만으로 불가능한 목표를 아이들에게 짐 지우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힘들다고 포기해도 괜찮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견뎌가며 목표를 달성해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아이에게 코뚜레를 꿰어 끌고 갈 수밖에요. 채찍질도 필요할 겁니다. 그러면 적어도 자기 주도성 없다며 아이를 나무라지는 말아야 합니다.


이쯤 되면 꼭 한마디 질문이 생깁니다.

" 왜 우리 애만 못하나요? 옆집에는 혼자서 잘만 하는데?"

그건 사실, 인정하기 싫지만 내 아이의 그릇이 그만하기 때문입니다. 타고난 기질 탓이든 길러진 습성 탓이든 옆집 아이와 내 아이는 역량도 습관도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좀 쉬워집니다.


지금부터라도 타고난 기질과 습성을 파악하고 아이에 맞춰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힘을 길러줘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누굴 닮아 그 모양이냐"라는 말을 하는 분이 계시다면 어쩌면 누워서 침 뱉기 거나 자기 비하가 아닐까요? 누굴 닮았는지 생각하기 전에 이렇게 해 보세요.

1, 아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파악한다

2. 아이가 잘하는 게 뭔지 파악한다.

3.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바탕으로 한 목표를 세운다.

4, 너무 버거운 과제나 목표를 달성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5. 달성하기 쉬운 과제를 주고 성취했을 때 충분한 기쁨을 누리도록 한다.

6.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달성하도록 격려한다.

7. 남과 다른 도전을 해도 응원한다.

그럴 수 없다면 그냥 부모가 아이의 계획표를 짜서 제시간에 학원에 보내고 해야 할 분량의 과제를 주고 옆에 앉아 감시하며 끌고 가는 수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제가 만나는 아이들도 대부분 부모의 주도와 성화를 못 이겨 저에게 옵니다. 밖에 나가 놀고 싶고 게임을 하고 싶고 누워서 뒹굴거리고 싶지만 부모 손에 이끌려 저에게 옵니다. 덕분에 한 달에 몇 권이라도 책을 읽고 몇 줄이라도 글을 쓰며 책 속의 사고와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갑니다. 그것만 해도 기특하다고 칭찬해 줘야 합니다.


한국 사회, 특히 사교육에 온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학군지'에서 아이를 키우고 계시다면 아이들에게 주도성 없음을 탓하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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