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봄 퀘벡주 서류 심사가 끝나고 인터뷰까지 마친 노인은 퀘벡 주정부 승인을 받았고 투자금 2억을 송금했다. 무사히 커미션을 받았으니 내 일은 일단 성공적으로 끝난 셈이다. 마지막 과정인 연방 심사가 남았고 그 과정 역시 1년 이상 시간이 필요했다. 노인은 한국 부동산을 팔아 몆억씩 송금을 했고 아들 명의로 모기지를 받아 토론토 부동산에 투자를 했다. 방 두 개짜리 콘도를 구매해서 아들 가족이 살 수 있도록 했다.
명의는 아들 앞으로 했지만 저렴하게나마 월세를 받는다고 했다. 재산을 물려줄 때 물려주더라도 받을 것은 받아야 한다는 것이 노인의 지론이었다. 월세 잘 나가는 지역에 콘도 두 채를 더 샀는데 마침 2016년 캐나다의 부동산 시장은 거침없이 치솟았다. 30만 불 후반으로 구매한 콘도가 1~2년 사이에 10만 불 가까이 올랐다. 세입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기 때문에 입맛에 맞는 세입자를 골라서 들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노인의 부동산 투자는 이번에도 성공적이었다.
몇 개월에 한 번씩 캐나다에 방문해서 체류할 때 노인은 동네 마실 오듯 내 사무실에 방문했다. 영주권 수속은 어떻게 돼 가는지 어떤 단계가 남았는지 노인 연금은 언제부터 받을 수 있는지 어떤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요즘 캐나다 부동산 시장은 어떤지 같은 굳이 나에게 묻지 않아도 될 이야기들을 물었고 한국에 정치나 미세먼지와 교육제도 같은 얘기를 하면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민 가고 싶어 하는 이유를 얘기했다.
손자들이 영어를 잘한다는 것을 자랑처럼 얘기하기도 하면서 노인의 배우자가 한국에 있을 때는 매일 골골하는데 캐나다만 오면 쌩쌩하다는 얘기를 했다. 안사람이 왜 그런지 도통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왜 그런지 아느냐고 나에게 묻기도 했다. 나도 모를 일이다. 다만 “ 마음이 편하거나 즐거운 일이 많아 자주 웃게 되면 몸 건강도 좋아진다더군요.”라고 웃으면서 대답해주었다. 노인의 아들은 자동차 정비업소에서 기술을 배우면서 일을 했었는데 어느 날 꽤 규모가 큰 한국식 고기구이집을 열었다.
식당은 하기 싫다더니 결국 그 길로 접어들었다. 한국 스타일대로 맛을 낸 식당은 한인 고객뿐 아니고 중국인을 비롯한 다양한 민족들이 들랑거리며 입소문을 냈다. 노인의 돈이 들어가고 맛을 내는 비법 전수도 노인 부부의 몫이었지만 운영에 관한 모든 권한은 아들이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불법 , 탈법, 꼼수가 싫고 돈밖에 모르는 비 인간적인 모습이 싫다던 아들은 다행히 좋은 사장이 되었다. 한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중에 직원에게 가장 인심이 후한 레스토랑이었다. 직원들에게 야박하고 불법을 일삼는 다른 고용주들과는 다르게 시급도 가장 높게 주고 복지도 가장 후한 직장이었다. 나도 간혹 유학생이나 워킹 홀리데이로 캐나다에 와서 일자리가 필요한 젊은 청년들을 그 레스토랑에 소개했다. 밥값이 다른 식당에 비해서 비싸도 음식이 맛있으니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노인은 어느 날 “여기서는 노동법 어기면 큰일 난다면서요? 레스토랑 문 닫을 수도 있다더군요. 하.. 무서운 나라예요. 우리 아들이 여기서는 꼼수도 안 통한다더군요. 그리고 웬 세금이 그렇게 많은지, 매출액에 13%를 따박따박 몇 개월에 한 번씩 낸다면서요? 거기다가 아들 내외 개인 소득세도 둘이 합해서 40% 나 떼 간다 더군요. 증여세 아끼려고 왔는데 엉뚱한 데서 더 떼 가는 것 같아요. 한국은 양심껏 법대로 살아가는 것이 더 이상하고 어려운 일인데 캐나다에서는 법을 어기고 싶어도 쉽지 않다더군요.”라는 얘기를 넋두리처럼 점잖고 차분하게 웃으면서 했다. 나는 ”다른 레스토랑 사장님들은 여기서도 요령껏 법을 피해서 이윤을 남기는데 아드님은 정직한 분입니다” 라며 추켜세웠다. 노인은 듣기 싫지 않은지 말없이 빙그레 웃었다.
한국도 부가가치세라는 게 있는데 어차피 고객이 낸 돈에 포함된걸 세금으로 내는 것이니 토론토의 소비세와 같은 개념이다. 소득세도 세율이 높을 뿐이지 한국에 없는 세금 제도가 캐나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캐나다가 세금을 많이 내는 나라라는 얘기를 듣다 보니 한국에도 동일한 세금제도가 있는 것을 모르고 넘겨짚는 것이다. 아들도 보란 듯이 세금을 많이 내서 남는 게 없다고 엄살을 부렸겠지. 아들이 노인의 재산 규모를 알게 되었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래도 부자관계로 봐서 분위기 파악은 됐다. 그렇게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런 줄 알았다.
노인이 영주권을 받는 것에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예상은 노인의 건강 문제 때문에 제동이 걸렸다. 2018년, 봄이 왔을 때 노인은 영주권 마지막 단계인 신체검사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미리 대학병원에 가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속속들이 종합 검진을 받았다. 건강 검진이라고는 정부에서 무료로 해주는 것도 시간이 없어서 못 받았는데 캐나다에 오면 병원 다니기가 쉽지 않다는 말에 일 인당 100만 원이나 되는 돈을 들여 건강 검진을 했다. 그런데 노인의 위에서 작은 종양이 발견됐고 조직 검사 결과 암이라고 했다.
실장님 안녕하세요.저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하고 시작하는 노인의 카톡 메시지에는 개복을 해봐야 알겠지만 당장 죽을 일은 아닌듯하고 다만 이민심사 최종 관문인 신체검사를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지 걱정이며 아들을 보낼 테니 아들과 상의를 해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퇴근 시간이 다 될 무렵 예상보다 늦게 노인의 아들이 나를 찾아왔다. 오랜만에 방문한 아들의 겉모습은 훨씬 보기 좋았다. 아버지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아들답지 않게 차분하고 밝았다. 다만 아버지의 영주권 진행이 순조롭지 않을 것에 대한 염려를 했다.
“아버지의 수술은 빨리하는 좋겠지만… 암 환자라고 하면 영주권을 못 받게 되는 거죠?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제가 영주권 받을 때 신검을 해봐서 아는데.. 암 환자라는 것을 밝히지 않으면 신검하는 병원에서 알 도리는 없는 것 아닌가요? 병력을 밝히지 않으면 모르는 것 같던데.. “
영주권 심사에 필요한 건강 검진은 피검사, 소변검사, 엑스레이 검사를 통한 결핵, 폐 질환 등을 확인하고, 먹고 있는 약은 무엇인지, 최근 5년 이내에 중대한 병을 앓은 적이 있는지 묻는다. 보통 전염성 질병에 매우 민감한 편이고 소변 검사나 피검사로 확인이 안 되는 병력은 알리지 않으면 모를 수 있다. 개복 수술을 한 경우 신검을 진행하는 의사가 흔적을 발견한다면 무슨 수술을 했는지 묻게 될 것이고 수술한 병원 의사의 소견서를 요구할 것이다. 암의 경우는 수술 후 5년이 지나 완치 판정을 받기 전까지는 영주권 수속이 거절되거나 중단될 가능성도 있다. 입국 후 5 년간 연간 7000달러 이상의 의료비가 들것으로 예상되는 중중 환자는 영주권이 거절되던 시절이다.(이법은 2018년 4월에 연간 2만 달러로 상향 조정되었다.)
캐나다 대부분의 주는 의료보험비를 납부하지 않고도 의료비 없이 병원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의료 비용은 정부 기금으로 운영된다. 그러니 의료비 지원을 많이 해야 하는 중중 환자나 장애인에게 영주권을 준다는 것은 그만큼 정부 재정에 손해를 의미한다. 그러니 암 환자라는 것을 신검 담당 의사가 알게 된다면 노인은 영주권을 받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았다. 아들은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아버지가 영주권을 받는데 문제가 없을 법한 계획을 얘기했다.
“실장님.. 일단 아버지의 수술은 두 달 후로 잡겠습니다. 암 수술이니 하루가 급 한일이지만 아버지의 상태가 위중한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의사는 하루라도 빨리 수술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두 달 정도 늦춘다고 큰일 나지는 않는다더군요. 어차피 수술할 의사 스케줄도 빨라야 보름 정도 이후에 수술이 가능하다는데 그보다 조금 더 늦춘 다고 큰일 날일은 아닌듯해서요. 그리고 그 안에 엄마랑 아버지 신검 끝마치면 될 것 같습니다.
원래는 수술을 한 달쯤 후로 잡는 것도 생각했지만 엄마가 당뇨가 있으시고 잔병이 많은 분이라서 신검을 했는데 재 검사를 하라고 하면 난감 해지겠죠. 안전하게.. 두 달쯤 후에 수술 예약을 잡을까 합니다. 아버지는 한국 부동산 몇 개를 처분하시겠답니다. 마음이 급해지셨나 봅니다. 영주권 승인서 나오면 캐나다로 송금하신다더군요. 지금은 그런 일이 더 급합니다. 신검 후 1년 이내에 캐나다 입국하시면 되니까, 항암 치료는 그 안에 마치면 될 것 같고요.. 그렇게 하면 되겠죠? 아버지는 영주권 받고 캐나다로 돈을 보내는 것이 목적이지 캐나다 와서 계속 살 생각은 없는 것 같아요. 수술 후 몸이 편찮아지면 병원 다니기 편한 한국이 아버지가 사시기엔 좋은 곳이니까요.”
노인의 아들은 나를 만나러 오기 전에 인터넷을 찾아보거나 여기저기 연락을 해서 알아보고 어떻게 할 것인지 미리 계획을 세우고 온 것이다. 그의 방문 시간이 예상보다 늦어진 이유였겠지. 내 조언이나 제안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돈 밖에 모르는 아버지가 행했던 불법과 비인간적인 모습이 싫고 그래서 아버지가 영주권을 받아서 캐나다에 오는 것이 싫다던 아들에게 아버지의 건강이 걱정이라거나 하루빨리 수술해서 완쾌되길 바란다는 얘기를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이민제도의 허점을 노려 아버지가 영주권을 받을 수 있도록 꾀를 내는 아들의 속이 훤히 들여다 보여 씁쓸했다.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노인의 아들은 장실장이 권한 방법이라고 하며 본인의 계획대로 아버지의 수술 일정을 잡고 신검 예약을 할 것이다. 예상대로 노인에게서 온 카톡 메시지는 ‘실장님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아들이 다녀가고 한 달이 안돼서 노인과 배우자는 지정 병원에서 신검을 마쳤고 몇 개월 후 별 탈 없이 영주권 확인서(COPR)를 받았다. 노인의 영주권 확인서를 아들에게 전달하면서 신체검사받은 날로부터 1년 이내에 캐나다 국경을 통해서 ‘랜딩’을 해야 하고 그래야 완전한 캐나다 영주권자가 된다고 다시 알려줬다. 영주권 카드는 5년 이 지나면 말소된다 것과 기타 소소한 안내도 했다. 아들도 본인의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는 내용들이니 잘 알아서 할 일이었다. 내가 할 일은 모두 마친 셈이었다. 노인이 나에게 연락을 해서 ‘랜딩 방법’을 자세히 묻는다면 건강은 좀 어떠신지, 근황을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노인은 연락이 없었다.
레스토랑은 여전히 잘 되고 있고 아들은 가끔 직원을 소개해달는 부탁을 한다. 노인의 소식을 듣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아들이 아버지의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면 내가 묻기 전에 얘기해줬을 텐데 아무 말 없는 것으로 봐서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그래서 뒷얘기를 수소문해보지도 않았다. 고액의 커미션을 받는 퀘벡 투자 이민 수속을 무사히 마무리했다는 안도감 뒤에 무엇인지 모를 찜찜함이 남았다. 돈을 물려주는 것이 아버지로서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아버지와 그래서 돈만 물려받은 아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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