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가고 다가오는 겨울이 또 얼마나 혹독할지 걱정하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전화를 받았다. 낮은 톤의 점잖은 목소리, 나이는 가늠할 수 없지만, 단호한 말투로 봐서 나에게 무엇인가를 따지려는 듯했다.
“저.. 안녕하세요. 장 실장님이신가요? 김 성환 씨 아들입니다.
"아, 네.."
"저희 아버지 영주권 진행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영주권 진행해봐서 아는데 영어도 못하시고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이도 많고 다른 방법으로는 저희 아버지 같은 분이 영주권 받을 방법이 없을 테고 저희 아버지가 영주권 수속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저는 부모 초청밖에 방법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저희 아버지가 어떻게 영주권을 받을 수 있나요? 저희 아버지는 돈도 얼마 없는데 노인 양반이 뭘 제대로 알아보고 하시는 것 맞나요?”
다짜고짜 묻는 질문 속에는 어리숙한 아버지가 어디 가서 사기라도 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묻어 있었다. 노인이 ‘가족은 아무도 모른다. 모르게 하고 싶다’는 당부를 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격 검증을 거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영주권 수속을 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버님께 직접 여쭤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저는 더 이상은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 설마 했는데, 그렇다면 투자 이민을 하신다는 얘기군요? 그 방법밖에 없잖아요? 전화기 너머로 한숨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돈을 써서라도 영주권 받고 싶은 이유가 뭐라고 하시던가요? 아들 따라서 여기까지 오시겠다던가요?” 했다 난감했다. “저도 그 부분에 대한 것은 아는 게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노인의 아들은 무엇을 알아내려는 것보다는 확인차 또는 본인이 아버지의 영주권 신청한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전화를 한 것 같았다. 난감해하는 나를 잡고 길게 얘기할 필요가 없다는 듯 그는 곧 “알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집안 사정이 무엇이든 간에 영주권을 신청했다는 것을 들키고 싶어 하지 않았던 노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은 듯했다. 배우자의 신용조회를 하면서 노인은 배우자의 부채가 어떤 연유로 생긴 것인지 궁금했을 테고 배우자는 왜 신용조회 서류가 필요했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서 서로의 의심이 집안에 분란을 만들지 않았을까 추측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이번에는 노인의 아들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역시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어색한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은 아들이 궁금해한 것은 그의 아버지가 언제쯤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지 영주권을 받을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아버지가 받을 영주권에 ‘별다른’ 조건 같은 것은 없는지였다.
“전화로 여쭤보면 대답을 안 해 주실 것 같아서 직접 찾아왔습니다. 저희 가족에게는 중요한 일입니다. 좀 알려주세요. 아버지는 얘기를 안 해주시는군요."
아버지를 빼닮은 아들은 목소리도 표정도 심지어 나이만 조금 젊을 뿐 입은 옷매무새도 비슷했다. 키가 더 크고 어깨가 넓어 보이기는 했지만 노인이 젊었을 때 그 모습 그대로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닮은 모습이었다.
“제가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이런 문제는.. 아버님께 직접 여쭤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고객의 정보를 아무에게나 알려드릴 수 없고 아드님이라고 해도 아버님이 원치 않으시면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
아버지의 영주권 수속을 '장실장'에게 의뢰했다는 것 까지 아들이 알고 있다는 것은 노인과 아들 간에 어느 정도 터놓고 얘기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들이 나를 찾아올 것을 노인도 눈치챈 것은 아닐까. 그래도 내 맘대로 추측해서 고객의 사정을 누설할 수는 없었다.
“저희 집 내막은 잘 모르실 겁니다. “
노인의 아들은 잠시 망설이기는 했지만 그의 집 ‘내막’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 아버지는 돈을 좋아하는 분입니다. 돈을 좋아하니 돈을 열심히 벌었죠... 그런데 번 돈을 쓰는 데는 인색했어요. 자린고비, 저희 아버지가 자린고비죠. 돈을 벌어서 어디에 쓰는지도 모르게 없어지는데 가까운 사람들한테는 너무 인색한 분이죠. 지금 아버지 사는 집은 오래된 단독 주택이에요. 그 집에서 어릴 때부터 살았어요. 단독 주택이 여름에는 살만하지만 겨울에 얼마나 추운지 아세요? 저희 집은 겨울에 너무 추웠어요.
제가 기억하는 한 연탄보일러로 난방을 하던 때는 그래도 그렇게 춥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때는 다들 춥게 살았으니 그런가 보다 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기름보일러로 바꾸고 나서는 말할 것도 없고 도시가스로 바꾼 후에도 겨울에 따뜻한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요. 따뜻한 집에서 살아보는 것이 제 소원이었죠. 지금도 엄마랑 아버지는 그 오래된 주택에 사세요. 벌써 30년이 넘었죠. 30년 전에도 낡았던 집이 지금은 오죽하겠어요. 30년 넘게 그 동네에서 사는 사람 별로 없어요. 아버지는 그 집이 재개발될 때까지 사시겠답니다.
그 집이 겉모습은 멀쩡해서 겨울에 그렇게 춥게 사는지 다른 사람들은 모를 겁니다. 요즘 같은 때 오래된 집도 다 따뜻하게 살지 않나요? 아버지는 돈을 벌만큼 벌었을 텐데 이건 돈을 아끼겠다는 게 아니고, 가족을 학대하는 겁니다. 물리적으로 때려 부수고 손지검 하는 것만 폭력이 아니잖아요? 그깟 도시가스 요금이 얼마나 나온다고… 돈이 없어서 그렇다면 모를까. 아버지는 식당 운영을 본인이 다한 것처럼 말씀하고 다니시지만 정작 일은 엄마가 다했어요.
엄마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손이 마를 날이 없었고 몸이 안 아픈 곳이 없었어요. 직원들에게도 끔찍하게 자린고비처럼 굴었어요. 겉으로는 점잖고 조용하지만 직원들 월급, 복지, 같은 돈 들어가는 일에는 잔인할 정도로 아꼈어요. 서너 명 이상이 해야 하는 일을 두 명이 해야 하고 직원들 안전은 각자 알아서 조심해야 하는 일이었죠. 아버지는 노동법 같은 것은 신경도 안 썼어요.
옛날에는 다 그랬다고 하니까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그래도 사람이 그럼 안 되는 겁니다. 고깃집은 항상 불을 다뤄야 하는 일인데 직원들 안전은 신경도 안 썼어요. 그러니 사고도 많았죠. 직원들이 화상 입는 일도 자주 있었고 주방에서는 안전사고가 자주 일어났어요. 그런데도 직원들 다쳐서 돈 들어가는 것에는 벌벌 떨었죠. 그러니 오래 일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힘든 일은 엄마가 다 하셨어요. 화가 나는 건… 아버지는 가족들이나 직원에게 돈 쓰는 것은 그렇게 아까워하면서도 동네 경찰, 공무원.. 이런 사람들한테는 무지 후했어요. 요즘이야 그렇게 못하지만 옛날에는 좋은 고기 들어오면 경찰서 직원들한테 갖다 주는 게 제 일이었어요.
아버지가 누구누구 갖다 줘라 그러면 몇 덩어리씩 들고 가서 돌리고 그랬어요. 공무원들이 밥 먹으러 오면 짠돌이 아버지가 사람이 변해요. 고기 아까운 줄 모르고 퍼 내놨어요. 그건 그때나 지금이나 이해가 안 돼요. 왜 경찰이나 공무원들한테 그렇게 후했는지. 그때는 그게 은근히 약이 오르기도 했고 이상하게 경찰이나 공무원들이 오는 게 싫었어요. 돈 벌어서 그런 식으로 다 쓰는구나 싶더군요. 궂은일은 엄마가 다하고 폼 잡고 다니는 것은 아버지가 다 하고,.. 가족들한테는 인색하면서 밖에 나가서 남들에게는 후하고 혼자 폼 잡고 다니고 … 아무튼 젊은 제 눈에는 불합리한 일들이 많았죠. “
아들은 간간이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저 조용히 들어야 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식당에 가서 심부름을 하기 시작해서 고등학교, 대학교 다닐 때까지 줄 곳 식당에서 일을 했어요. 대학교 졸업하고 다른데 취직을 해보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어요. 그래서 쭉, 결혼하고도 계속 식당에 나가서 일을 했어요. 그래도 월급은 겨우 생활할 수 있을 만큼만 받았어요. 결혼하고 나서는 집사람도 식당에 가서 일을 해야 했죠. 둘이 같이 식당일에 매달려 살아도 월급이 올라가지도 않았어요.
생활할 정도만 주셨어요. 애가 둘인데도 쪼들려 사느라고 애들한테 뭘 제대로 해준 적도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가족 간에 화목하지도 않았어요. 제가 자라면서 엄마 아버지가 일 얘기 돈 얘기 말고 대화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아버지는 식당 돈 관리를 다 맡아서 하셨는데 식당에 무슨 귀찮은 일이 생기면 예를 들면 손님이 무슨 불만이라도 얘기하고 싸움 거리라도 생기면 슬그머니 어디로 사라지셨다가 한참 후에 돌아오고는 하셨어요.
그럼 엄마가 나서서 다 해결했죠.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바빠도 아버지는 돈 통만 지키고 섰다가 하루에 한 번 은행 다녀오거나 어느 날 조용히 사라졌다가 한참 만에 돌아오기도 했어요. 그래도 엄마는 아버지한테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묻지도 않으시더군요. 제가 한 번은 아버지한테 물은 적이 있어요. 장사도 잘되는데 돈은 다 어디다 쓰는 거냐고 그랬더니 남는 게 얼마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무슨 바보도 아니고, 공부 머리는 없어도 눈치는 빤한데. 그때는 어디 나가서 도박이라도 하시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고 바람피워서 딴살림이라도 차렸는 줄 알았어요. 지금도 그런 의심이 없는 건 아니에요. 사람이 늙으면 주변 사람 앞에서 체면은 지켜야 하는데 지금도 구질구질하게 사세요. 다 쓴 치약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그걸 주워다가 가위로 반 잘라서 그 속을 후벼 파서 사용하세요. 집사람한테 부끄러우니 그러지 말라고 해도 말을 안 들으세요.”
노인의 아들은 잠시 숨 고르기라도 하는 듯 조용히 창밖을 응시했다.
“ 저는 그렇게 사는 게 이골이 나서 문제인지도 모르고 살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우리도 이렇게 살다가 엄마 아버지처럼 늙을 때까지 이 모양을 살 것 같다고 숨 막혀 죽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때 제가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제가 아버지를 닮아서 성격도 비슷해요. 애들한테도 살갑게도 못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식당에서 일만 했어요. 그렇다고 그 식당이 내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돈을 벌어서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겠으니 무슨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엄마 아버지 사는 것 보면 식당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았어요. 일을 즐기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그것밖에 할 일이 없다는 듯 그렇게 사셨어요.
저는 그렇게 살기 싫어서 캐나다로 왔어요. 고생할 만큼 했죠. 가지고 온 돈도 다 썼지만 그래도 여기서는 영주권만 있으면 사는 데는 큰 문제없을 것 같고 가진 것은 없어도 살만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얼마 전에 영주권도 받았어요. 양육비도 나와요. 가족 수입이 많아지면 양육비가 줄어든다고 해서 아내는 캐시 잡(현금으로 급여를 받는)으로 일을 하고 세금 보고는 안 하면서 근근이 살고 있어요.
그래도 한국에 있을 때 한 번도 못 해본 여행도 다니고 주말에는 공원에 가서 하루 종일 놀다 오기도 하고 커뮤니티 센터 같은데 같이 다니면서 운동도 해요. 저희 애들은 아내를 닮아서 밝고 쾌활해요. 저처럼 우울한 사람들이 아니죠. 캐나다에 잘 어울려요. 다행이죠. 엄마는 일을 많이 해서 그런지 큰 병은 없었지만 병원에 자주 다니셨어요. 식당을 그만둔 후로 정신과에도 다니신 것 같아요. 엄마한테는 많이 미안해요.
그래도 엄마 아버지가 여기 따라오시는 것은 싫어요. 제 와이프랑 애들한테 우리 부모님들의 우울한 분위기를 닮게 하고 싶지 않아요. 서울에 아파트 몇 채 있다고 들었어요. 거기다 큰돈 안 되는 홍은동 집이 있는 거죠. 그렇게 가족들 고생시켜서 모은 돈으로 부동산에 투자를 한 것 같은데 그걸 홀랑 팔아서 투자 이민하시겠다는 거잖아요? 빚이 없다면 몇십억은 되겠죠. 저라고 그 돈이 욕심 안 나는 것은 아니에요.
제가 이민 올 때 재산 안 물려주신다고 하시더군요. 솔직히 아들 하나뿐인데 물려주시겠지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그깟 돈 안 물려주면 말지 하는 생각도 했어요. 일단 그 식당에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던 거죠. 그렇지만 아버지는 저하고 생각이 많이 다른 분인데 왜 그렇게까지 해서 이곳으로 오시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돼요. 여기 와서 살다 보니 예상보다 돈을 많이 쓰더군요.
돈 버는 것도 쉽지 않아요. 그래서 엄마가 가진돈으로 저희를 도와주기도 했어요. 이민 생활해봐서 아시겠지만 벌기는 어렵고 쓰는 것은 많고 월세는 터무니없이 비싸요. 모기지 얻어서 집을 사고 싶지만 제가 수입이 많지 않으니 모기지도 못 받아요. 그래서 지금 랜트로 살고 있는데 월 2300불씩 따박따박 월세로 나가고 이것저것 숨만 쉬고 살아도 4~5000불씩 쓰게 되더군요. 외식도 거하게 못하고 남들처럼 근사하게 멀리 여행 한번 못 가고 살아도 그래요. 처음 캐나다 올 때는 몰랐는데 돈 없이 살기 힘들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한국의 전 재산을 팔아서 여기 오시면 그 재산 줄 테니 엄마 아버지 노후를 책임지라고 하시겠죠? 그 돈으로 식당이라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엄마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식당 사업은 지긋지긋해요. 여기는 한국하고는 분위기가 달라서 사업하다가 돈 날린 분들 많이 봤어요. 섣불리 식당 같은 거 하면 안돼요. 아버지 보고 그 돈 잘 뒀다가 노후자금으로 쓰라고 하는 게 낫겠다 싶어요. 하나뿐인 아들이라서 당연히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죄송하지만 엄마 아버지 노후까지 책임질 여력이 없을 것 같아요. 다른 것 다 제쳐 두고 저는 엄마 아버지랑 정이 없어요.
아내도 엄마 아버지가 영주권 받아서 캐나다 오신다 하니까 기겁을 해요. 식당에서 돈 버는 일 외에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가족들한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돈밖에 모르는 그 비인간적이고 미련한.... 그게 가장 싫어요 “
노인의 아들은 아버지와 꼭 닮은 얼굴로 똑같은 말투로 차분하고 낮은 톤으로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얘기를 했다. 처음부터 그런 얘기를 다 하려던 것은 아니었을 테지만 한번 시작된 이야기를 어디에서 어떻게 편집해서 끊거나 이어 붙어야 할지 생각하지 못하고 술술 모두 다 얘기해버린 듯했다. 그의 아버지도 치밀해 보이는 겉모습이나 말투, 태도와는 다르게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시시콜콜했었다. 내가 자신들이나 주변 사람에게 별 영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거나 믿음직해 보였거나 둘 중에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마도 전자였겠지.
“ 도대체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그래야 내가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을 할 수 있죠. “
노인의 아들은 어쩌면 나에게 아버지의 영주권 수속을 말려 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버님은 퀘벡 투자를 통해서 영주권을 받으시게 될 겁니다. 자격이 나쁘지 않습니다. 주정부를 통해서 승인을 받고 나면 2억을 캐나다 은행에 송금하고 은행은 고객 대신 캐나다 정부에 80만 불을 예치하는 프로그램입니다. 2억은 없어지는 돈입니다. 영주권을 받으시면 아버님은 부동산 투자를 하고 싶으신 듯합니다.”
듣고 있던 아들의 눈이 커졌다.
"2억요? 2억이 없어져요?"
아들의 흥분을 가라앉혀야 했다.
"아버님은 아드님이 알고 계신 것보다 재산이 훨씬 많으십니다. 얼마 정도나 되는지는 제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아드님이나 손자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싶어 하십니다. 증여세에 대해서 많이 알아보신 듯합니다. 한국은 증여세가 너무 많고 캐나다는 증여세가 없어서 좋다고 하시더군요. 아버님이 그렇게 열심히 자산을 모은 이유가 아드님께 물려주고 싶어서 그러신 듯합니다. 제가 드린 말씀은 부디 아버님께 전달하지 말고 모른 척해주셨으면 합니다..”
노인이 탈 없이 영주권을 받아야 아들 가족이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고 나도 커미션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니 아버님의 영주권 진행을 방해하지 말라는 뜻으로 힌트를 주었다. ‘당신의 아버지는 재산을 무사히 물려주는 것이 인생 목표다. 조용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게 어떻겠나.’ 잠시 우두커니 앉아있던 노인의 아들은 “훨씬 많다는 게 어느 정도나 …” 하고 말끝을 흐렸다. 나는 배시시 웃었다.
노인의 아들은 한숨을 몇 차례 쉬더니, "왜 , 그런 얘기를 남한테서 들어야 하나요. 왜, 나한테 직접 얘기를 안 하셨을까요, " 했다. 나도 모를 일이다. 한국 아버지들 중에는 과묵한 것이 멋인 줄 아는 분들이 종종 있다.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생색내지 않기. 그렇지만 그것이 불러오는 오해와 불신은 계산 못하는 것이다. 아들은 잠시 멍하니 앉았다가 조용히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속내를 알 수 없으니 못내 불안하기는 했지만 큰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또 한동안 노인도 아들도 연락 없이 잠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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