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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 혜진 Jan 10. 2019

8-1. 홍은동 부동산 부자.

홍은동에서 오랫동안 고깃집을 했다. 한자리에서 계속했더니 맛 집으로 이름도 꽤 났다. 식당을 운영해서 큰돈을 번 것은 아니지만 성실하게 번 돈을 저축하고 그것을 종잣돈 삼아 부동산에 투자했다. 젊을 때부터 사 모으기 시작한 부동산 중에는 몇십 년 만에 2~30배 오른 곳도 있다.  부동산을 사고팔고 하면서 시세차익으로 또 다른 곳에 투자를 하기도 했지만  임대를 주고 안 팔고 가지고 있었더니 재개발되는 곳에서 얻은 이득이 적지 않다. 


재개발 지역에 작고 다 허물어 가는 상가도 가지고 있다. 그런 곳일수록 임대료는 꾸준히 잘 나온다. 재개발되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내 평생에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요즘은 재개발이 돼도 시세 차익도 많지 않고 옛날처럼 재개발 바람이 불 것 같지 않다. 그 대신 임대료 수입이 쏠쏠해서 괜찮다. 


여기저기 있는 부동산을  취합해보면 적어도  몆백억은 될 것 같다. 식당사업에 평생을 바쳤지만  돈을 번 것은 부동산 투자 덕이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이만큼 살게 된 것은 시대를 잘 타고난 것도 있고 안목도 중요하다. 물론 좋은 투자처를 소개해준 사람들 덕도 크다. 사람은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 식당일만 미련하게 했다면 여전히 고생스럽게 살고 있을 것이다. 버는 족족 부동산에 투자했다. 


부동산 관리를 하다 보면 번거로운 일도 있고  골치 아픈 일도 있다. 그래도 그 정도 수고를 감수하는 것치고 수익성이 가장 좋다 부동산만큼 돈 벌기 쉽고 안정적인 게 또 있겠나. 미련한 것 들은 죽겠다고 일해서 다 먹고 쓰고 늙어서는 자식 덕이나 보고 살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지 않는다. 자식에게 물려주면 물려줬지 자식 덕 보고 살면 되겠나. 악착 같이 벌어서 모은 재산은 전부 아들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캐나다로 이민을 가겠다고 했다. 이민 가기만 해 봐라. 재산을 물려주지도 않을 테고 부모 자식 간의 연을 끊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아들은 고집을 부렸다. 아들과 며느리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들을 데리고  캐나다로 와버렸다. 그것이 몇 년 전이다. 아들이 어떻게 영주권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가진 재산을 다 털어서 캐나다로 오더니 한 번도 한국에 오지 않더라. 가진 재산이라고 해봐야 결혼할 때 보태준 얼마 안 되는 전세자금이 전부였다. 


돈도 없는 놈이 세상 물정도 모르고 허세만 가득하다. 괘씸하고 서운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한심하기 그지없다. 제 복을 차 버린 거다. 제 부모도 나라도 버리고 떠나다니 그렇게 한심한 놈과는 연을 끊고 사는 것이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그래서  아들에게 연락하지 않았지만 손자들이 보고 싶기는 했다. 아들이 떠난 후에도 한동안 식당 문을 닫지 않았다. 젊은 손길이 없으니 운영이 힘들었지만  오기로 버텼다. 


아들이 돌아올 줄 알고 기다렸는데 안 오더라. 그러다 몇 년 전부터 동네 상권이 바뀌었고 주방 일을 주로 하던 아내가 더 이상 일을 못하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결국 식당을 팔았다.  더 이상 일은 하지 않는데 일하던 사람이 일을 놓게 되자 급격하게 늙었다. 젊은 시절 힘들게 살아서 그런지 남은 에너지가 별로 없다. 아내도 건강이 안 좋아졌다. 육체적인 건강도 문제였지만 우울증이 더 큰 문제였다. 아내는 아들 부부하고 연락을 종종 하는 듯하더니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캐나다에 와보자고 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아들에게 연락이 왔다. 시간 여유가 많으니 여행 삼아 캐나다에 올 것을 권하더라. 그래서 봄에  캐나다에 왔다. 아내가 간곡하게 원하지 않았다면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쁜 놈" 노인은 진심으로 아들을 미워하는 것처럼 욕을 했다. 진심은 아니겠지. 


캐나다에 와서 보니 넓은 땅 맑은 공기, 아무나 보고 웃어대는 사람들을 보면 살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살고 싶은 것은 아니다. 사람이 조상 대대로 뿌리내리고 살았던 조국을 버리고 남의 나라에 와서 사는 것이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누구는 그 좁은 땅에서 아등바등 살고 싶어서 그렇게 살았겠나? 그게 다 자기 타고난 운명인 것을, 운명을 거스르고, 살기 좋다고 남의 나라 와서 얹혀사는 것이 좋을 리가 없다. 그게 다 사대주의다. 시간이 흐른 뒤에 나이가 더 들면 분명히 후회할 것이다. 


문제는 아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절대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한다. 손자들도 벌써 캐나다가 한국보다 좋다고 한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이래서 생긴 듯하다.  늙어서 손자 재롱 보면서 아들 옆에 살고 싶은데, 애들이 안 오겠다면 내가 와야지 않겠나. 그런데 내가 오겠다고 하면 싫어할지도 모른다. 가족들은 내가 영주권 상담하러 온 것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아내도 모른다. 아내가 알게 되면 아들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에 당분간, 아니 영주권을 받은 후에도 비밀로 하고 싶다. 조용히 돈 가지고 와서 살다가 나중에 돈이나 물려주면 된다. 그러니 누구에게도 비밀로 해주기 바란다. 노인은 혼자 말하듯 덤덤하게 사연을 털어놓았다. 당황스러울 만큼 내 눈을 똑바로 보기도 했지만  동의나 답변을 구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아무 말 없이 끝까지 듣고만 있었다. 그러는 사이 노인은 실내의 낮은 온도에 한기를 느꼈는지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천장을 쳐다보고는 “춥지 않으세요? 온도를 올릴 수는 없나요? ” 했다. 


“네, 저도  추워요. 여름에도 실내에서는 긴팔 옷을 하나쯤 걸치고 있어야 합니다. 캐나다의 오래된 건물은 중앙 냉난방인데 캐네디언들이 일 년 내내 실내 온도를 20도 정도로 맞추고 삽니다. 그래서 겨울에도 춥고 여름에도 춥습니다. 캐나다 사람들은 추운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그런지 우리보다 추위를 덜 타는 것 같습니다. 캐나다 오시면 춥게 사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농담처럼 웃으며 물었다.


” 나이가 들수록 더위는 견딜 만 한데 추위는 못 견디겠어요. 뼈마디가 시려서… 겨울에는 전기장판 있으니까 괜찮을 테고... 여름은 한국보다 시원한 것 같으니  살만할 것 같습니다...”


 캐나다 겨울이 전기장판 하나로 견딜만하지 않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었지만 노인이 캐나다에 오지 않겠다 할까 봐 추위에 대해서는 더 얘기하지 않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제가  흥미 있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노인은 무엇인가 믿을 수 없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듯 잠시 뜸을 들린 후 고개를  삐딱하게 돌려 나를 노려봤다. 똑바로 아는 대로 말하라는 뜻이다.


“여기 와서 노인들 만나 얘기하다 보니 알게 됐는데  캐나다는 증여세가 없다면서요? 그게 사실인가요? “


 “네, 캐나다는 증여세도 없고 상속세도 없습니다. 돈을 주고받고 해도 따로 세금을 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장성한 자녀와 부모님이 각자 이민 신청을 한 후 영주권 받고 한국에서 자산을 가지고 와 물려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금을 주고받는 것은 세금이  없지만,   부동산처럼 시간이 지나 가치가 상승하는 것을 주고받으면 최초 구입했을 때 와  증여하고자 하는 시점의 시세차에 따라서 양도 소득세는 내셔야 합니다. 증여하는 집에 성인 자녀가 거주한다면 그마저도 양도 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내가 반드시 영주권을 받아야 하겠군요. 긴가민가 했는데.. 확실하다면.. 더 망설일 필요도 없네요. 한국에서는 내가 아들한테 재산 물려주려면 4~50%는 증여세를 내야 한답니다. 내 재산이 300억이라고 치고 120억은 세금을 내야 하는 겁니다. 부모가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돈을 자식에게 물려주겠다는데 나라가 해준 게 뭐 있다고 세금을 그만큼 뜯어 가나요? 내 평생 내라는 세금 다 내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죽어서 내 재산을 물려주면서까지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게 억울한 일 아니겠어요? 삼성 이건희 씨가 지금 병원에서 1년 넘게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리지 않고 있잖아요? 그 양반,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지만 상속세 무서워서 죽었어도 죽었다고 못한다는 소문이 파다해요.  죽었다고 해도  어디 편하게 죽을 수 있겠어요? 그렇다고 안 죽을 수도 없고 죽고 나서 사망 신고도 안 하고 언제까지 안 죽었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상속세가 없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이건희 회장 자식들이 정부 누구한테 줄을 데서 상속세를 없애지 않을까 기대도 해봅니다. 그렇다고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그때까지 살아있으라는 보장도 없고 죽고 나서 사망 신고를 안 할 수도 없잖아요? , 어느 날 한국에서 상속세가 없어진다면 그건 다 삼성 덕일 겁니다. “


노인은 슬그머니 흥분한 내색을 보였다. 나는 이건희 회장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얘기를 그때 처음 들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건강이 안 좋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한국에서 제일 돈 많은 사람이 건강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이건희 회장은 우리 엄마와 동갑이다. 시골에서 평생 농사짓고 허드렛일이나 하면서 가난하게 살았던 우리 엄마는 나보다 산을 더 잘 올라가고 하루 세끼 푸성귀 반찬만 있어도 밥 한 공기씩 뚝딱 해치우고 손자 손녀 재롱을 보면서 숨넘어가게 웃기도 하고 매년 초겨울이면 동네 아줌마들과 품앗이로 김장을 몇백 포기씩 해치우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돈이 많은 이건희 회장이 어쩌다가 건강관리에 소홀했을까. 그렇게 돈 많은 사람도 그 나이에 쓰러져서 일 년 넘게 병원 신세를 질 수도 있구나 생각하니 믿기지 않았지만 돈이 많다고 수명도  길어지는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 돈 아까워 어떻게 죽을까.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는구나.


 “내가 한국에 재산을 그대로 두면 아들 가족이 언젠가는 재산 때문에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내가 가진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아들은 모릅니다. 내가 돈이 얼마 없는 줄 알 겁니다. 그러니까 저렇게 철딱서니 없이 굴겠죠. 그래서 내가 가진 재산이 얼마인지 알려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돈 욕심 없다고 해도 사람 마음이 그런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캐나다 와서 상속세 얘기를 듣고 보니  뒤통수를 맞은 기분입니다. 


제가 60대 들어서면서부터 상속세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큰 사업하는 사람들은 몇백억 정도는  상속해줘도 상속세 한 푼 안 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더군요. 국회에서도 큰 기업체 운영하는 사람들 상속세 면제해주는 법은 자꾸 발의를 하는데  나처럼 동네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그런 게 해당 안 됩니다.  20년 이상 운영하던 법인 사업체는 300억까지 상속세 공제를 해준다더군요. 자기 지분이 낮으면 그마저도 쉽지 않은 것 같지만 , 어쨌든 삼성 같은 큰 회사는 변호사나 회계사들이 머리 굴려서 주식이다 뭐다 해서 자식들한테 물려줄 것 다 물려줬을 겁니다. 빠져나갈 사람들은 다 빠져나가고 저같이  몸뚱이 하나로 벌어먹은 사람들은 상속 세고 뭐고 다 내야 하는 겁니다. 젊을 때 미리미리 아들 명의로 부동산을 샀다면 얼렁뚱땅 재산이 넘어가서 상속세 부담이 줄겠지만 아들놈이 지 애미를 닮아  씀씀이가 헤퍼요. 제 명의로 된 재산이 있는 줄 알면 다 팔아 치우고 남은 게 없을 겁니다. 그래서 미루다 보니  시기를 놓쳤네요. 


부동산을 팔아서 표 안 나게 증여를 할 수도 있다더군요. 남들은 다 그렇게 한다고 듣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 걸리기라도 하는 날엔… 어쨌든, 사람은 죽어도 돈은 남는다는 생각으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놈 한테 재산 물려주려고 얼마나 힘들게 돈을 벌었는데 재산의 절반 가까운 돈을 상속세로 내라고 하니 억울하지 않겠어요? 캐나다가 상속세가 없다는 말에 제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드는 게 이상할 것도 없죠. 안 그런가요? “


노인은 덤덤하게 얘기를 하다가 눈에 힘을 주고 나를 노려봤다. 아들에게 말 못 한 재산 자랑을 나한테 하면서 노고에 대한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인가. “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하지만 캐나다는 여러 항목으로 적지 않은 세금을 떼 가는 나라다 보니 적극적으로 수긍 하기도 난처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매기는 세금이 죽은 사람에게 매기는 세금보다 더 무거운 법이다.  


 “투자 이민하려면 2억을 내야 한다고요? 2억 주면 영주권을 받는다는 말이죠? 2억 내고 영주권 받으면 합법적으로 한국 재산 처분해서 가지고 올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어마어마한 증여세는 안내도 되는 거 아닌가요? 어차피 한국은  인구도 줄어든다 하고 부동산도 강남 빼고는 가격이 오르지도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캐나다는 이민자가 계속 토론토로 들어온다더군요. 인구가 계속 늘어날 거라는 얘기잖아요? 요즘 집값 오르는 것으로 봐서는 하루라도 빨리 한국 부동산 정리해서 캐나다에 집을 사야 하겠더군요. 영주권 받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마음이 급해진 노인은  서둘러 달라며 재촉했다. 


“퀘벡 투자 이민은 적어도 3년은 걸려야 최종 영주권까지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전에라도 한국에서 해외 투자 형식으로 토론토 부동산을 구입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단 영주권 취득을 못하게 되면 국세청에 자금 변동 상황을 보고 하셔야 하고 최종적으로 한국으로 가지고 들어가야 합니다만 많은 분들이 해외 투자 명목으로 한국에서 돈을 가지고 나오면 다시 한국으로 돌려보내지는 않더군요. 


어찌 되었든 불법적인 요소가 많고 과정이 복잡합니다. 토론토 부동산은 중국 사람들이 꾸준히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영주권 없이도 다들 캐나다나 미국에 부동산을 삽니다. 그 덕에 캐나다 부동산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기만 하고 있습니다. 당분간 캐나다 부동산은 계속 오를 겁니다. 특히 밴쿠버나 토론토 같이 이민자가 계속 들어오는 지역이나 토론토 다운타운 같은 곳은 한동안 더  오를 겁니다.”


( 내가 노인에게 한말은 금세 틀린 말이 되어버렸다. 해외자금 유입으로 집값이 폭등하자, 2018년 5월, 온타리오주는 영주권이 없는 외국인 부동산 투자자에게 취득세 15%를 더 부과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그 덕인지 가파르게 치솟던 부동산 가격이 주춤한 상태다. 밴쿠버가 있는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는 온타리오 주보다 빠른 2017년에 비슷한 정책을 시행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 유입 등 기타 호재 때문에 부동산 가격은 여전히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다.) 노인은 흡족한 표정으로 내 얘기를 다 듣고 난 후에 퀘벡 투자 이민 진행에 대해서 자세하게 물었다.


“퀘벡 주정부를 통해서 주정부 승인을 받고 연방정부 이민국에서 다시  심사를 하게 됩니다. 필요 서류는 현재 가지고 계신 증빙 가능한 모든 자산 내역과, 그 자산이  어떤 방식으로 축적되었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증빙서류, 사업체 운영 등 경력에 관한 서류, 그리고 가족 관계, 출생 등에 대한 동사무소 서류, 신원조회 서류 등입니다. 자세한 준비 서류 목록은 이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노인과 나는 퀘벡 투자이민 계약을 했다. 이 일이 잘 마무리되고 노인이 퀘벡 주정부로부터 승인을 받는다면 노인은 영주권자로서 한국의 자산을 캐나다로 수월하게 가지고 올 수 있을 것이고 증여세 걱정 없이 아들 손자에게 재산을 물려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거액의 커미션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서류를 모두 받아보고 확인해봐야 하겠지만 고객의 자격조건은 좋은 편으로 보였다. 노인도 좋고 아들도 좋고 나도 좋은 일이었다. 노인은 한국으로 돌아간 뒤 생각보다 빠르게 서류를 보내왔다. 


두꺼운 전화번호부 세권 분량의 부채 포함한 재산 증빙 서류와 식당 관련 서류, 신용 서류 등을 보내왔다. 자산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자산 축적 진술서 작성을 위해서 어떤 부동산을 무슨 돈으로 샀는지 언제 팔았는지 월세를 받는 부동산의 세금 보고한 내역까지 모두 퍼즐 맞추듯이 빈틈이 없어야 한다. 자산 축적에 대한 내역서를 꼼꼼하게 작성해달라고 노인에게 요구했다. 자산 내역의 대부분은 부동산이었다. 


사고팔고를 거듭하면서 폐기했을법한 오래된 부동산 매매 계약서 등도 의외로 꼼꼼하게 보관하고 있었다. 1983년에 구입한 성남시 소재  2000만 원짜리 밭이 1990년도 3억에 팔린 자료도 있었고 그 3억을 종잣돈으로 구입한 강남의 작은 아파트 3 채를  소유하고 있었다.  부동산 114에 올라와 있는 그 아파트 한 채의 가격은 모두 10억 이상이었다. 


모두 전세를 주고 전세 보증금을 받았는데 한 채 당  전세금이 2~3억 정도 된다. 그래서 강남 아파트의 부채를 뺀 자산 가치는 20억 정도 됐다. 가로수 길 세로수 길로 이슈가 되고 있는 동네에 작은 상가 건물을 통째로 가지고 있었는데  처음 그 건물을 구입했을 때는 은행 빛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보유하면서 은행 빚은 거의 다 갚았다. 은행 담보가 잡혀 있기는 하지만 남아 있는 부채가 많지 않았다.  등기부 등본 상에 남아 있는 빚도 대부분 갚았다고 했다. 부채 사실 증명이 그 내용을 증명해줬다.  


다만 상가 건물이나 일반 주택은 아파트와 다르게 공시지가로 그 가치를 산정할 수밖에 없어서 인정받을 수 있는 가치는 아파트보다 훨씬 낮았다. 필요하다면 감정평가를 받아야 했다. 등기부 등본상의 공시지가로 산정했을 때 토지의 가치만 10억이었고 건물은 1억 정도 했다. 어차피 그 당시 퀘벡 투자 이민에서 증빙해야 하는 자산은 부채 뺀 순자산 16억이면 되기 때문에 굳이 비용을 들여서 감정 평가를 할 필요는 없었다. 노인의 말에 의하면  그 건물은 5~60억 정도 될 것이라고 했다.  


건물에 입주해 있는 식당과 슈퍼마켓, 위층 사무실의 보증금으로 받은 돈 6억이 부채로 산정된다. 공시지가로 부동산 가치를 계산하고 그중 보증금으로 받은 돈을 부채로 뺀다고 해도 4억 정도의 가치가 인정될 것이다. 그 외에 노인 부부가 현재 거주 중인 홍은동 오래된 주택의 공시지가가 1억 3천과 경기도 남부에 그린벨트로 묶여 있는 선산이 있었지만  지분이 많이 나뉘어 있어 가치가 높지 않았다. 선산  인근에 작은 빌라를 비롯한 월세 나오는 자잘한 부동산 몇 개가 더 있었지만 번거롭게 서류 준비할 필요를 줄이기 위해 일부 부동산은 재산에서 제외했다. 굵직한 부동산만으로도 부채를 빼고 16억 자산을 증빙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모든 재산은 노인 명의로 되어 있었다. 1년 전에 폐업신고를 한 식당은 비과세 신고 대상이었기 때문에 폐업하기 전까지 신고된 소득 액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신원조회 상에 오래전 청소년에게 주류 판매를 한 것으로 벌금을 낸 것이 있고  손님끼리  시비에 휘말려 쌍방 폭행으로 조사를 받았고 그 후 합의 본 내용이 있었다. 5년 이내 범죄기록이 없고 흔한 음주운전이나 폭행 관련된 기록 같은 것은 없으니 법원 판결문 진술서 등 서류만 제출해도 어렵지 않게 해결될 일이었다.


그런데 노인의 배우자의 부채 증명이 서류 안에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가 있던 노인에게 카톡으로 연락을 했다. 한국 새벽시간을 지나 아침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안녕하세요. 꼼꼼하게 서류 준비를 잘해주셔서 조만간 모든 서류의 번역을 마치고 접수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배우자 김영숙 님의 부채 증명원을 보내주지 않으셨군요. 신용 평가원에서 발급하는 부채 증명원을 발급받아서 보내주세요. 서류가 모두 준비되면 서둘러 접수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카톡을 보낸 지 한 시간 만에 카톡으로 답변이 돌아왔다. 


‘집사람 이름으로는 재산이 아무것도 없는데 그래도 부채증명을 내야 하는가 보군요. 부채 확인 서류는  본인이 아니면 발급이 안되는데 집사람한테 이 서류를 발급받아오라고 하면 어디에 쓸 건지 물을 것 같은데요 영주권 신청을 한다는 것은 비밀로 하고 싶은데요..’


‘네. 부부 모두 자산과 부채 내역을 제출해야 합니다.  배우자에게 자산은 없지만 이민국은 부채 내역도 없다는 증거를 보고 싶어 합니다.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서류입니다.’


‘알겠습니다. 무슨 핑계를 대든 내일 날 밝은 대로 서류 발급받아서 보내드리겠습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부탁드립니다’


최초 준비 서류 안내를 할 때 이미 안내를 한 내용이다. 한 번의 서류 안내로 모든 서류를 완벽하게 준비하는 고객은 없다. 어떤 서류는 어디 가서 발급받아야 하는지 두세 번 이상 설명해줘야 한다. “이 서류는 왜 필요하냐, 이 서류는 안내면 안 되는 것이냐.” 하는 질문을 수속 준비하는 동안 적어도 한두 번 이상은 받게 된다. 어떤 사람은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으니 신원조회 서류를 내지 않겠다고 우기는 사람도 있었다. 


캐나다 이민국에서 범죄기록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려면 그 서류를 봐야 하니 제출해야 한다고 해도  이해를 못한다. 어떤 사람은 예전에 다니던 회사가 없어져서 경력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없다거나 심지어 학교가 없어졌다는 고객도 있었다. 학교가 없어졌어도 교육청에 가서 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고  회사가 없어졌으면 소득 증명원상에 세금 보고된 회사가 나오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든 학력과 경력을 설명을 해야 한다. 범죄기록도 공문서를 통해서 확인해야 하고 국가별로 6개월 이상 거주한 경우는 전쟁 국가 등 서류 발급이 불가능한 곳을 제외하면 모두 제출해야 한다. 중국이나 일본 같은 제3 국가에 체류하다가 캐나다로 이민 오는 경우도 많아서 신원조회 때문에 시간과 돈을 많이 들여야 하는 고객도 많다. 모든 서류는 공공기관에서 발급받은 원본 그대로 제출해야 하지만 최근에는 원본을 스캔해서 온라인으로 제출하는 방식으로 점점 바뀌어가고 있다. 


노인에게도 이미 설명한 내용이지만 배우자에게 핑계 댈 방법이 없으니  모르는 척 넘어가려고 한 것이다. 이민국도 고객의 마음을 헤아려 모르는 척 넘어가 주면 좋은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일주일이 안돼서 빠른우편으로 원본 서류가 한국에서 왔다. 그런데 배우자  김영숙 씨의 부채가 있었다. 노인의 자산 16억을 입증하는데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부채가 있었다. 배우자의 생명 보험을 담보로 받은 대출이었다. 


김성환 님의 케이스는 자산 증빙을 할 수 있는 것이 넉넉해서 국민연금이나 보험 내역까지는 확인을 하지 않았었다. 나중에 확인 한 내용이지만 월 150만 원씩 20년 이상 보험이 납부되고 있었고 암 특약 같은 금액을 뺀 나머지는 사망 후 자녀가 받는 종신 보험이었다. 그 보험을 담보로 받은 대출인 것이다. 전체 자산 증빙에  영향을 미칠 정도가 아니어서 별다른 문제없었지만 부채 기록이 있으니 보험 납부내역도 공개를 해야 했다.  


서류가 약간 더 복잡 해지기는 했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종신 보험까지 들어 놓은 것을 보며 아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많은 자산을 물려주고 싶은 노인의 의지가 대단하다 싶었다. 자산 축적 진술서를 완벽하게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노인과 여러 번 카톡을 주고받았다. 모든 서류를 완성한 후 번역을 마치고 이민관이 보기 좋게 정리한 후 오타는 없는지 확인했다. 노인이 다녀간 몇 달 후 모든 서류가 준비됐고 투자은행의 변호사 검토까지 마치고 퀘벡 이민국에 접수됐다. 주정부와 연방 정부 심사를 다 마치려면  3년 정도 걸린다. 서류 심사에 통과되면 신체검사를 해야 하는데 노령인 점을 감안해서 건강상에 문제가 없길 바랄 뿐, 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다. 편안하게 기다리면 되는 케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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