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벡 투자이민
영어 능력이 없고 나이가 많아서 기술이민이나 주정부 취업 이민 자격이 안될 경우 누구나 한 번쯤은 “투자이민은 어떤가요?”라고 묻는다. 2019년 현재 영어성적과 학력 같은 적응력을 따지지 않고 오로지 가진 돈과 경영능력만 입증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프로그램이 퀘벡 주정부 투자이민이다. 최근 5년 중 2년 이상 관리자로 일한 경력이 있고 본인 자산 200만 불 (약 18억) 이상이 있어야 한다.
심사에 통과하면 본인의 자산 중 120만 불(약 10억)을 캐나다 정부에 5년간 예치했다가 5년 후 원금만 돌려받는다. 또는 지정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도 있다. 단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은행에 선이자를 미리 내야 한다. 선이자 액수는 일반 금융권 이자율보다 훨씬 높은 3억 정도다. 퀘벡 주정부 지정은행에서만 대출을 받을 수 있으니 은행 간의 담합도 있고 이민대행사에 커미션을 줘야 하니 이자금액이 시중 금리보다 턱없이 높은 것이다. 이민대행사가 받는 커미션은 적지 않다. 고객이 지불하는 선이자 중 상당 부분은 이민 대행사의 몫이다.
이민대행사 입장에서 모든 투자 이민은 돈 되는 장사다. 그렇다고 단순히 이민대행사만 좋은 일은 아니다. 영주권을 갖고 싶어 하는 자산가는 지불해야 하는 돈에 비해서 캐나다 영주권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셈을 해본다. 유학비용을 줄일 수 있고 군대 가기 싫은 아들이 있다면 영주권을 받아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내 자산의 해외 반출이 쉬워진다. 자산 형성 과정만 입증할 수 있다면 원하는 만큼 재산을 해외로 빼돌릴 수 있다.
그들이 왜 자산 반출에 목을 맬까. 국내 정세가 불안정하니 계란을 여러 바구니에 나누어 보관하듯 자산을 여러 나라에 나누어 보관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탈세도 중요한 목적이 아닐까 싶다. 유학생의 경우 매년 1인당 미화 10만 불( 약 1억) 정도를 유학비로 송금할 수 있다. 아이 둘이 유학비자를 받고 부모 중 한 명이 동반을 해서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다면 매년 3억 정도를 송금할 수 있다. 하지만 영주권을 취득한다면 그런 제한 없이 해외로 재산을 보낼 수 있고 그것으로 무엇을 하든 한국 국세청에서는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니 해외로 자산 반출을 하고 싶다면 환치기 같은 불법적인 방법 외에 영주권을 받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다만 퀘벡 투자 이민 신청자는 자산의 형성 과정이 투명해야 하고 경영능력도 입증해야 영주권 승인을 받는다. 단순히 돈이 많다고 누구나 영주권을 받을 수는 없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블랙머니는 자기 자산으로 인정받을 수가 없다. 자산 축적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 자산 축적 과정을 가장 쉽게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은 급여받은 내역으로 성실하게 저축을 했거나 증여세와 상속세를 납부하고 물려받은 자산 또는 부동산 가격이 올라서 얻게 된 이득이나 주식을 통해서 얻은 이득 등이다.
퀘벡주 이민국은 몇 년마다 보유자산과 투자금을 상향 조정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보유자산 80만 불이 있어야 하고 40만 불을 예치하거나 10만 불 선이자를 내는 조건이었는데 2012년도에 보유자산 160만 불에 80만 불 예치로 상향 조정되더니 2019년 초반에 보유자산 200만 불에 120만 불 예치 조건으로 바뀌었다. 보유자산과 투자금액이 많지 않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캐나다 투자이민 신청자가 많았다. 강남 지역 이주 대행사 대부분이 캐나다 투자이민 커미션으로 먹고살만할 때였다.
캐나다 조기유학이 붐을 이루던 시기였으니 신청자 중에는 아이들을 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가 다수를 차지했다. 아이가 둘이라고 가정하면 5년 유학을 했을 때 학비로만 1억 정도를 지출해야 한다. 그에 비해서 선이자로 1억을 내고 영주권을 받는다면 학비혜택과 우유값이라고 칭하는 양육비를 받을 수도 있었고 무료 의료혜택도 받을 수 있었다. 대학 학비까지 고려한다면 영주권 신청을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군대 갈 아들이 있는 경우는 영주권자로서 입대를 연기하거나 시민권을 받고 군대 면제도 받을 수 있으니 어지간하면 본전을 뽑고도 남는 장사였다. 게다가 그 당시에는 영주권 심사 기간 중에 유학생 학비를 면제해주는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신청만 해도 학비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유학생 부모에게는 더할 것 없이 좋은 제도였다. 그 무렵에는 투자이민 자격이 되든 안되든 일단 영주권 신청을 하고 학비 면제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많았다. 투자금을 먼저 보내고 심사를 기다리는 미국 투자 이민과 달리 캐나다 투자 이민은 영주권 심사에 통과된 후에 투자금을 송금한다.
그러니 심사 기간 중에 캐나다에서 학비 혜택을 받고 지내다가 영주권 심사가 마무리될 때쯤 자기 나라로 복귀하는 얌체 족들이 민족, 국가를 막론하고 기승을 부렸다. 그런데 2012년 무렵 보유 자산과 투자해야 하는 금액이 두배로 오르고 각 지역 교육청은 영주권 신청자 무료 학비 혜택을 없앴다. 영주권 신청자의 편의를 위해서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제도였는데 악용하는 사람이 많아서 선의의 피해자들이 생겨난 것이다.
게다가 토론토나 밴쿠버에서 거주할 수 있는 연방 투자이민이 잠정 중단되었고 퀘벡주 투자이민만 유지됐다. 퀘벡주는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지 않은 불어 생활권이다. 이민을 가고 싶은 사람 중에 2억이나 들이면서 영주권을 받는 것은 더 이상 ‘남는 장사’가 아니었다. 캐나다 (퀘벡) 투자 이민 신청자가 급감했다. 중국의 투자이민 신청자는 쿼터를 넘길 만큼 많고 다양한 나라의 돈 많은 부호들이 캐나다 영주권을 목표로 퀘벡 투자 이민 신청을 하고 있지만 한국인 신청자는 많이 줄었다. 거액의 커미션을 받을 수 있는 퀘벡 투자이민 신청자가 줄었으니 한국 이민대행사의 화려한 날은 가고 말았다. 그러니 이주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금으로 비슷한 수익이 생기는 미국 투자이민 고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간혹 퀘벡 투자이민 자격이 될 것 같은 고객이 상담을 오면 어떻게든 퀘벡 투자이민 수속을 권하는 것이 이민대행사가 살아남는 길이기도 했다. 나도 마찬 가지였다.
다음 이야기는 책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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