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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 혜진 Jan 09. 2019

6. 맹가랍국 장 씨.

바깥 온도가 영하 10도를 오르내리고 눈발이 힘없이 흩날리는 날 점심을 먹고 나면 어김없이 몰려오는 잠을 깨워보려고 진한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있을 때 메이가 “누군가 곧 방문 상담을 올 것이니 상담 준비를 하시라” 고  알려줬다. 한국어 발음이 어눌 한 사람인데 "시간만 뺏는 영양가 없는 사람일 테니 시간 낭비하지 말고 대충 돌려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면서 이런 사람은 안 왔으면 좋겠다고 툴툴거렸다. 


흔한 일이다. 언어가 어눌할 정도로 캐나다에서 오래 산 2세라면 주로 배우자 초청 관련 상담을 하러 오는 것일 테고 중요한 정보 몇 가지를 얻어 간 후 자력으로 영주권 신청을 할 것이다. 공짜 상담만 받고 수속 의뢰를 하지 않는 그런 고객을 상대하는 일은 헛수고에 시간 낭비인 셈이다. 다른 나라에 살다 온 교포도 별 다르지 않다. 


일제시대부터 러시아 몽골, 중국 등지에서 살던 동포 후세들이 캐나다 이민 방법을 문의하러 오기도 한다. 영어를 못하니 주로 말이 통하는 중국, 러시아 이민 업체를 찾아가지만 사기가 횡행하니 상담받은 내용이 맞는지 확인차 나를 찾는다. 그들도 한국어를 잘 알아듣기 때문에 다른 업체에서 상담받은 내용의 진위여부 정도는 알려줄 수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나에게 수속을 의뢰하는 일은 드물다. 나는 다른 업체보다 수속 대행료를 비싸게 받기도  하거니와 그 나라에서 발급받아야 하는 서류에 대해서는 그 나라 대행업체들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중국은 공공기관에서 발급하는 서류라고 하더라도 위조가 판을 치니 캐나다 이민국으로서는 쉽게 믿지 못하는 서류로 분류되어 번역 공증 등 다소 까다로운 서류 준비가 필요하다. 어느 나라든 자기 나라 서류 발급처나 발급 방법 등은 자국 대행업체가 안내를 가장 잘한다. 한국은 대부분의 서류가 전산화되어 있어서 발급 처가 어디든, 같은 내용의 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다. 예를 들면 경기도 동사무소에 가서 가족관계 등록부를 발급 받든 서울 종로에 가서 발급 받든 같은 내용의 서류를 받아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나 러시아는 해당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특정 지역의 정해진 기관에 가야만 하는 경우도 많고 범죄기록 발급도 쉽지 않다. 각 국가별 이민 정보 공유 포럼이나 카페에는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기 위 한 정보가 공유된다. 이민 대행사 직원이라면 고객이 카페를 헤매는 수고 없이 서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알려줘야 한다. 까다롭고 요령이 필요한 서류는 다른 업체보다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실력 있는 대행사라는 평을 듣는다. 나는 중국, 러시아 서류에는 문외한이나 다름없으니 그 나라에 오래 산 고객이 찾아오면 난감 해진다. 그래도 굳이 나에게 수속 대행을 맡기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대부분 자기 나라 대행업체를 믿지 못하는 경우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공식적인 서류 안내만 하고 알아서 준비 해오라고 한다. 그러면 고객은 자기 나라 이민 대행사나 온라인 카페 같은 곳에서 정보를 얻어 서류 준비를 해온다. 


내 사무실에 그 나라 언어를 아는 직원이 없으니 번역도 알아서 해 와야 한다. 서로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으니 자주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한국인들 중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영어권 대행사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경우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돈은 그쪽 대행사에 내고 정보는 나를 비롯한 한인업체들에게 묻기도 하고 번역만 해달라고 억지를 쓰는 사람도 있다. 돈을 그쪽에 냈으니 그쪽 대행사와 마무리하라고 하면 대뜸 한인끼리 그것도 못해주냐고 성을 내는 사람도 있다. 평소에는 한인 욕을 해대며 상종하기도 싫어하다가 아쉬울 때만 ‘같은  한인끼리’를 외쳐 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에  웃어넘긴다.  


한국도 발급처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서류가 하나 있다. 범죄기록 자료 회보서(실효형 포함). 이민이나 비자 신청자의 18세 이후 모든 범죄기록을 보고 싶어 하는 캐나다 이민국은 실효형 포함된 범죄기록 자료 회보서를 요구한다. 중범죄자나 파렴치범의 입국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당연한 요구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해당 서류를 다른 나라 기관에 제출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중대한 범죄행위로 간주한다. 경찰서에 가서 실효형 포함된 범죄기록을 발급해달라고 하면 법적으로 안 되는 일이라며 거절당하기 일쑤다. 


발급처의 행정과 수민 국의 요구가 다르니 신청자만 난감하다. 하지만 운이 좋으면 불법을 감수하고 서류를 발급해주는 경찰관을 만나기도 한다. ”원래 안 되는 건데..”하면서 선심 쓰듯을 발급해준다.  법으로 금지한 서류를 발급해주는 경찰이나 그 서류를 타 국가 기관에 제출해야 하는 신청자는 의도와는 상관없이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이민 대행업체나 이민 정보 카페 등에는 어느 지역  경찰서에 가면 발급받을 수 있다 하는 노하우가 중요한 정보처럼 공유되고 있다. 다 같이 범죄를 공모하는 것이다. 


국민을 범죄자로 만드는 제도가 벌써 수년째 시행되고 있다. "방문하겠다는 사람의 국적은?" 방문 예약 전화를 받은 메이에게 물었다. 상담 신청자의 국적에 따라서 상담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고객의 국적을  확인해야 한다. “한국 여권 갖고 있데요” 한국 국적자라는 뜻이다. 발음이 어눌할 정도로 다른 나라에서 오래 살았다면 그 나라 국적을 취득해서 그 나라 여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한국 국적 포기를 하지 않아서 한국 여권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한국은 이중 국적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고 다른 나라 국적을 취득하면 한국 국적을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이 또한 현지 공관과 한국 법무부에서 각각 다른 소리를 해대니 정확한 정보인지 알 수 없어 얼렁뚱땅 넘어가기 일쑤다. 그래서 많은 이민자들이 다른 나라 국적을 취득했음에도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 한국 여권을  사용 중인 경우가 있고 정작 한국 국적을 포기할 필요 없는 사람이 법을 지키겠다고 국적을 포기하는 일도 있다. 어느 나라에서 얼마나 오래 살던 사람일까 궁금해 하고 있을 때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런데 그를 보고 나도 모르게 ‘어?’ 했다. 예상했던 외모가 아니었다. 피부색으로 보나 행색으로 보나 한국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좀 다른 외양이었다. 영락없는 인도나 파키스탄 쪽 사람이다. 캐나다에서는 외양을 보고 국적이나 핏줄을 추정하는 것은 일종의 인종 차별이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 입 밖으로 “캐나다 사람처럼 생기지 않았다” 거나 “캐나다 사람은 백인이다”라고 말을 한다면 단순한 인종 차별이을 넘어 이민자 국가, 다양성을 국가의 자랑으로 생각하는 캐나다를 부정하는 말이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단일, 백의민족을 외쳐대는 민족주의자들이 넘쳐나는 대한민국. 국가와 민족을 동일시하는 나라에 저런 외모를 가진 한국 사람이 있구나 싶었다. 한국은 단일 민족이라는 단어에 유별난 자부심이 있다. 가까운 중국에는 조선족 한족, 기타 등등 다양한 민족이 모여 국가를 이루었고 일본 열도에는 야마토, 류큐 , 아이누 , 윌타 , 니브히 , 오로치 민족이 살고 있으니 단일 민족 국가가 아니다. 멀리 나가서 북유럽 몇 나라와 고립된 채 살고 있는 섬나라를 빼고 나면 세계 어딜 가든 단일 민족 국가를 찾아보기 어렵다. 어차피 ‘말로만’ 단일 민족이라는 것은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지만 유별나게 단일 민족, 순혈 주의를 고집하는 한국은 오죽하면 애완견도 순종이 아니면 모조리 똥개 취급을 하고 있으니 순종 한국인이 아니면 사람이라고 똥개보다 나은 대접을 받고 있지도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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