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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찾기 Mar 03. 2023

큰애 수학학원 이야기 1

엄마, 이렇게는 살기 싫어요!

얼마 전, 친한 언니 중 한 명과 커피를 마시는데 내게 하소연을 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큰 손주가 서울 대치동에 살고 있는데, 이제 겨우 아홉 살인데 벌써 학원에 치이고 공부에 치여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 동네에서 엄청 유명하고 들어가기 어려운, 무슨 0소 학원을 들어갔다고 부모들(언니의 아들과 며느리)은 좋아하는데 언니는 애가 너무 일찍 시달리는 거 같아 걱정된다고 했다. 공부하느라 바빠서 손주 만날 시간도 없다고 속상해하셨다.


아. 수학!

우리나라 입시에서 너무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과목. 대학에 들어간 후엔 별 쓸모없으나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하다는 수학! 나도 세 아이에 맞는 수학학원을 선택하는 것은  늘 고민이었고, 이곳저곳 방황했고,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어느 지역이든 가장 유명한 수학학원이 있다. 레벨테스트를 통해 아이들을 선별하고 최상위반부터 애들을 종렬로 줄을 세운다. 초등학교 중학년(보통 3-4학년) 즈음부터 아이들은 수학학원에서 공부하는 거 같은데 학구열이 높은 곳은 좀 더 일찍 시작하기도 다.


나도 솔직히, 큰 애는 다양한 학원을 꽤 많이 보냈다. 첫 애이고 잘 모르니 주변 분위기에 편승해서 따라가게 되었다.

우리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수학학원에 큰 아이만 일 년 좀 넘게 보냈었는데, 5학년 초에 들어갔으니 빠른 것은 아니었다. 그전에는 소규모로 가르치는 작은 사고력수학학원에서 쉬엄쉬엄 공부했었다.


그 유명한 수학학원을 다니던 때를 돌이켜보면, 

약간 늪에 빠진 느낌이었다.

하루만 결석을 해도 진도가 어마어마하게 나갔고 숙제양도 장난 아니었다. 소위 잘 나가는 아이엄마들 얘기로는 수학은 ‘양치기- 많은 양의 문제를 푸는 것’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한번 확 양을 늘려놓아야 수학문제를 빨리빨리 해결할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경험치가 안 쌓여, 판단이 안 서있을 때라 주변 선배 엄마들의 조언을 새기며 따라 하는 시기였다.  


수학학원 스케줄이 '가족 모든 일정'의 기준이 되었다. 휴가나 가족 행사도 수학학원 없는 날로 비껴 잡아야 했고 난리부루스를 떠는 날들이었다.

우리 큰 애는 숙제를 다 못한 날은 배가 종종 아팠는데(꾀병으로) 짐짓 모른 척도 해줬고 너무 빈번하다 싶으면 한 번씩 혼도 냈다. 그래도 순한 아이어서 그럭저럭 문제없이 잘 다녔다.


그러다 느닷없이 전국 수학경시대회에서 상을 받는 바람에 사달이 났다. 주중에 정규수업을 듣고 있는데 주말까지 아이를 불러대는 거였다. 학원 이름을 빛내 줄 가능성이 큰 아이들을 훈련시키느라 경시대회를 앞두고 시험대비를 시켜주는 거였다. 나는 처음에는 공짜로 공부시켜 주니 내심 좋았는데, 그게 반복되고 길어지자 아이가 어느 날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이렇게는  살기 싫어요!


처음엔 흘려 들었는데, 얼마 있다가 두 번째 다시, 이렇게는 살기 싫다,는 말을 했다. 운동 좋아하고 축구 좋아하는 애가 허구한 날 수학문제만 풀고 있으니 삶의 재미가 없어진 거다. 그게 초 6 가을무렵인가 겨울 무렵인가였는데 사실 정말 중요한 시기였다.


아이입에서 두 번이나 이런 말이 나오니 덜컥 겁이 났다. 그냥 지나가는 소리가 아니라 아이의 진심이었다. 들어줘야 할 거 같았다. 그래서 아이에게 물어봤다.

"그럼 중학교도 앞두고 있고 수학이 중요한데 어쩌고 싶으냐?"

대학생 형 같은 사람에게 과외로 배우고 싶단다. 아휴,, 형이 없다 보니 멘토같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선생님을 원했나 보다. 난감했다. 그런 선생님을 어떻게 구하나,,

그래도 다행히 나는 아이들의 일에는 빠릿빠릿 잘 움직이는 편이다. 과외사이트를 통해 구인을 하고 연락을 남긴 선생님들과 전화상담을 하고 좋은 멘토가 될 듯한 선생님을 구했다. 무려 2년의 시간을 대학생 선생님에게 배웠다. 거의 둘이 놀았다.


이 일을 평가해 보자면,

객관적으로 보면 수학에 있어서 엄청 도약할 수 있는 시기를 허비했다. 2년의 시간은 야무지게 채워지지는 않았다. 물론 심화문제도 풀고 선행도 나갔지만 밀도 있는 수학공부를 했다고는 할 수 없는 시기이다.

그러나 얻은 것도 크다.  대한 큰애의 신뢰가 단단해진 계기이다. 우리 엄마는 내가 진짜로 힘들다고 하면 내 말을 들어주신다. 내게 귀 기울여 준다.

아이 말에 귀 기울여 주니, 큰애의 사춘기는 눈빛에 살짝 반항기가 깃들어 있던 몇 주 밖에 없었고 내내 무난했다.


더 이상 대학생 선생님과 계속하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될 즈음, 선생님이 마침 병역의무를 치러야 할 시기가 왔다. 그 선생님이 대타로 꽂아 준, 또 다른 대학생형은 멘토역할도 선생님 역할도 제대로 못했다.

아들과 나는 다시 학원에 가야겠다는 합의를 봤다. 중 2 겨울방학을 앞두었을 때였다.


소규모 팀수업을 하는 학원으로 갔다. 숙제의 양은 많지 않지만 개념을 철저히 가르치고, 매 수업 전, 식을 증명하는 시험을 보고, 단원이 끝날 때마다 평가 시험을 보는데, 틀이 잘 잡혀 있는 작은 학원이었다.

아주 유명한 학원은 아니지만 우리 아이 성향에 맞는 학원이라 생각했고, 잘 맞았다.

선생님의 인품도 좋아서 아이에게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셨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즈음까지 다녔다. 계속 다녀도 좋았을 텐데, 팀수업 멤버들의 진학한 학교가 다 달라 시험범위 일정들이 다르니, 힘들어서 바꿔야 했다.


그 후에도 큰애의 수학학원 여정은 험난했다. 나머지는 기회 될 때 또 써야겠다.


<아, 미리 밝히자면 , 그래도 수능에서 수학 100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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