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신혼이랄 게 없었다. 한 달 반 만에 큰애가 생겼고 연년생으로 둘째까지 낳으면서 정말 정신없이 살았다.
결혼하고 한 10년은 몸과 맘이 다 힘든 시기였다. 6년 연애하고 결혼해서 남편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연애때와 결혼 후는 좀 달랐다. 다를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했다.
내 나이28세에 나는 연달아 두 아이 낳고 몸이 퉁퉁 부어원래 내 얼굴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는데,남편은 생기가 넘치고 한창 예뻤다. 바빴고.
둘째 낳고 직장 퇴직 후 집에 있을 때는 살짝 산후 우울증이 왔었다. 자주 울고 가라앉았다. 남편 하고도 꽤 다퉜다. 나는 너무 힘든데 남편은 생기 있고 바쁜 게 원망스러웠던 것도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도 어렸다.
남편과 싸우고 슬픈 날엔 혼자 노래방 가서 맥주 먹으며 몇 시간 노래 부르고 들어가기도 했고,놀이터에서 서성이다 들어간 적도 있었다. 싸워도 갈 데가 없었다. 나는 싸우고 친정 가는 타입은 아니었다. 싸운걸 누구에게 털어놓고 하소연하는 타입도 아니었다.
남편은 무던하지만 무심한 사람이기도 한 게 내가 속상해도 무엇 때문에 그런지 파악도 못했다.
어떨 땐 화가 나서 나갔다 한두 시간 만에 들어와도 스포츠 보느라 내가 나간 줄도 몰랐던 때도 있었다.(거의 둔함의 극치였다! 내가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었는데 말하지 않으면 전혀 알지못한다는 걸 깨달았다.아들 셋을 키우는 과정에서 남편에 대한 이해도가 확장되기도 했다.)
나는 예민한데 남편은 둔하니 서로 좀 힘들었다. 그래도 남편은 내가 불만인 부분을설득력 있게 얘기하면, 고치려고 노력은 하는 사람이었다. 나도 나를 가라앉은 채로 두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고 우리는 조금씩 나아졌다. (지금의 나는 세 아들, 아니 네 남자를 키우면서 적당히 둔해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저절로 그렇게 된 거 같다.)
남편은 아들들이 일찍 결혼하길바란다. 자기는 일찍 결혼해서 좋았단다.
나는 굳이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충분히 성숙한 후 결혼하길 바란다. 나는(솔직한 말로) 내가 남편도 키웠다고 생각한다. 힘들었다. 네 남자 키우는 거.
지금은 서로가 많이 편안해졌다. 나는 좀 씩씩하고 둔해졌고, 남편은 꽤 섬세해졌다.예전에 남편은 TV는 바보상자라고 드라마는안 봤는데, 지금은 감동적이라고 두 차례 정주행한 드라마도 생겼다.
4개월 전부턴 내가 줌바하는 것에 큰 관심을 보이더니 좋은 운동이라고 따라다니고 싶어 했다. 좀 귀찮은 맘도 살짝 들었으나, 몸치 남편이 용기를 내서 댄스에 도전하는 게 기특했다. 그래서줌바하는 부부가 되었다. 월, 수, 금 주 3회 수업인데, 얼마나 열심인지 남편은 모임도 줌바 요일을 피해 잡는다.
20살에 만나 54살이 된 우리는 좋은 동지가 되었고, 진짜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다고 느낀다.
봄도 좋지만 가을도 참 좋다.
2023. 3월 11일에 서울 결혼식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시작한 글을 3월13일에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