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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찾기 Mar 14. 2023

솔직히 네 남자를 키웠지

결혼식 가는 버스 안에서

봄이 되니 결혼식이 많다.


올 상반기만 친한 언니집 결혼식이 네 차례다.

멀리서 결혼할 경우, 축의금만 보내는 경우도 꽤 많은데 성당 친한 언니 혼사라 단체 버스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다. 언니 고등학교 친구들이 버스담당을 하나보다. 인원체크하고 먹을거리 챙겨준다. 커피까지 꼼꼼히 준비했다.


춥지 않고 완연한 봄느낌 나는 날이다.

오늘 결혼하는 신랑신부도 봄 같은 날들을 맞이하는 거겠지.

그럼 아이들을 낳고 육아와 교육하는 시기는 소나기도 오고 천둥, 번개, 벼락도 동반하는 여름이겠다.

아이들이 성장해서 독립하는 시기부터는 가을을 맞이하는 느낌이겠고. 부부의 인생도 무르익는 시기네.

그럼 나는 지금 초가을날 어딘가에 서있는 걸까.. 싶다.


이런 생각이 흘러 내가 결혼할 때까지 이른다.


결혼하고 신혼이랄 게 없었다. 한 달 반 만에 큰애가 생겼고 연년생으로 둘째까지 낳으면서 정말 정신없이 살았다.

결혼하고 한 10년은 몸과 맘이 다 힘든 시기였다. 6년 연애하고 결혼해서 남편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연애때와 결혼 후는 좀 달랐다. 다를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했다.


내 나 28세에 나는 연달아 두 아이 낳고 몸이 퉁퉁 부어 원래 내 얼굴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는데, 남편은 생기가 넘치고 한창 예뻤다. 바빴고.

둘째 낳고 직장 퇴직 후 집에 있을 때는 살짝 산후 우울증이 왔었다. 자주 울고 가라앉았다. 남편 하고도 꽤 다퉜다. 나는 너무 힘든데 남편은 생기 있고 바쁜 게 원망스러웠던 것도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도 어렸다.


남편과 싸우고 슬픈 날엔 혼자 노래방 가서 맥주 먹으며 몇 시간 노래 부르고 들어가기도 했고, 놀이터에서 서성이다 들어간 적도 있었다. 싸워도 갈 데가 없었다. 나는 싸우고 친정 가는 타입은 아니었다. 싸운걸 누구에게 털어놓고 하소연하는 타입도 아니었다.

남편은 무던하지만 무심한 사람이기도 한 게 내가 속상해도 무엇 때문에 그런지 파악도 못했다.

어떨 땐 화가 나서 나갔다 한두 시간 만에 들어와도 스포츠 보느라 내가 나간 줄도 몰랐던 때도 있었다.(거의 둔함의 극치였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었는데 말하지 않으면 전혀 알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아들 셋을 키우는 과정에서 남편에 대한 이해도가 확장되기도 했다.)


나는 예민한데 남편은 둔하니 서로 좀 힘들었다. 그래도 남편은 내가 불만인 부분을 설득력 있게 얘기하면, 고치려고 노력은 하는 사람이었다. 나도 나를 가라앉은 채로 두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고 우리는 조금씩 나아졌다. (지금의 나는 세 아들, 아니 네 남자를 키우면서 적당히 둔해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저절로 그렇게 된 거 같다.)


남편은 아들들 일찍 결혼하길 바란다. 자기는 일찍 결혼해서 좋았단다.

나는 굳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충분히 성숙한 후 결혼하길 바란다. 나는(솔직한 말로) 내가 남편도 키웠다고 생각한다. 힘들었다. 네 남자 키우는 거.


지금은 서로가 많이 편안해졌다. 나는 좀 씩씩하고 둔해졌고, 남편은  섬세해졌다. 예전에 남편은 TV는 바보상자라고 드라마는 안 봤는데, 지금은  감동적이라고 두 차례 정주행한 드라마도 생겼다.


4개월 전부턴 내가 줌바하는 것에 큰 관심을 보이더니 좋은 운동이라고 따라다니고 싶어 했다. 좀 귀찮은 맘도 살짝 들었으나, 몸치 남편이 용기를 내서 댄스에 도전하는 게 기특했다. 그래서 줌바하는 부부가 되었다. 월, 수, 금 주 3회 수업인데, 얼마나 열심인지 남편은 모임도 줌바 요일을 피해 잡는다. 


20살에 만나 54살이 된 우리는 좋은 동지가 되었고, 진짜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다고 느낀다.


봄도 좋지만 가을도 참 좋다.


2023. 3월 11일에 서울 결혼식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시작한 글을 3월13일에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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