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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찾기 Mar 03. 2023

어머니 생신날의  추억소환

눈이다 눈~~!

2023.2.14 에 쓴 글


오늘은 시어머니 생신이다.

어머니는 우리집에서 차로 5분거리에 사신다.

생신에는 주로 가족끼리 외식을 했는데 올 해는 집에 모시고 와서 간단하게 미역국을 끓여 드리기로 했다.

우리 집도 아들 셋이 다 나가 있고 아버님 돌아가신지도 벌써 8년이 넘어서 어머니와 남편과 나 셋이서 오붓하게 식사하면 된다.​


어머니는 결혼 초 몇 년동안 내 생일 날 생일 떡을 손수 쪄 오셨다.

정성스럽고 감사한 일이지만  결혼 후 바로 아이가 생기고 연년생으로 둘을 낳고 내내 정신이 없던 때라 오시는 게 마냥 반갑지는 않았다.  

애 키우느라 늘 집이 어수선했기에 집 치우는 게 힘들어서 더 그랬다.

살림솜씨 없는 신혼 초 들키고 싶지 않은 여러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도 그랬고.

결혼 초 호랑이같은 느낌을 풍기는 시어머님을 만나면 늘 긴장했다.

말투가 퉁명스러웠고 표정도 웃는 인상이 아니셔서 더욱 그랬다.

오랜 세월 겪어보니 말투는 일부러 그러시는 건 아니었다.

이제 80대 중반을 넘어서신 어머니는 살짝 경도인지장애증세를 보이시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느 때보다 표정은 순해지시고 웃는 낯으로 변하셨다.

어머니는 십 몇년 전에 아버님 아프시면서 우리가 사는 지역으로 이사오셨고 그 전엔 차로 한시간 거리에 사셨다.

남편은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는 타입이어서 결혼 후 아이때문에 힘들때도 한달에 몇 번씩 다함께 찾아뵀었고,시부모님도 우리집에 자주 방문하셨다. ​


아버님은 우리 아이들 어렸을 때 노는 모습을 보시면서 "참 벼락같다 ! " 라고 하셨다.

아버님 손자녀들 중 우리아이들이 유별나게 부산스럽고 에너지 넘치기는 했었다.

어머니는 "너희집 애들은 한시간도 못봐줄 거 같다."고 하셨다.

나는 실제로 단 하루도, 단 한 시간도 시부모님께 아이를 맡겨 본 적이 없다.


애들 에너지가 유별나서 명절이나 집안 행사로 모일 때 신경이 쓰였는데, 어느날은 어머니가

애들 너무 얌전해서 뭐하냐.
저런게 좋은 거다


라고 하셨다.

우리 집 애들 힘들어서 하루도 봐줄 엄두는 안나시지만

에너지 넘치는 건 좋다라고 말씀하시는 건가 싶어서 조금 위로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 어머니는 시골에서 나름 자식 넷을 잘 키우셨기에

아직 어렸던 나는 어머니의 말씀이  근거가 있을 거라 믿고 싶었다.

어머님은 우리집에 방문하실 때 간식으로 뻥튀기 튀밥을 항상 가져오셨다. 쌀을 가지고 시장에 가셔서 일부러 튀겨 오셨다. 커다란 비닐로 한보따리 씩 가져오셨다.

지금같으면 이런 거 가져오시지 말라고 웃으면서 기분 안나쁘시게 솔직히 말씀 드렸을텐데 그땐 그런 말도 할 줄 몰랐다.


셋째를 임신해서 자주 피곤해져 깜박 낮잠을 자다 깬 어느 날을 잊지 못한다.


 이야. 눈이다 눈이다~


눈이라니. . 이 계절에 무슨. .

아.. 집안에 정말 눈이 쌓여 있었다..

눈처럼 하얀 튀밥 눈이.. 이 방 저 방 곳곳에.

두 녀석은 내가 제지할 때까지 하얀 튀밥을 두 손으로 뿌리며 환호하고 있었다.

그 날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울면서 눈을 치웠다.

어머니는 대체 왜
튀밥을 자꾸 튀겨 오시는 건데
엉엉. .엉엉. .
니네는 진짜 왜 이러는 건데
엉엉. 엉엉. .



세월이 많이 흘러 튀밥에피소드를 모임때 얘기하니 다들 웃겨죽겠다고 박장대소를 했다.

물론 나도 지금은 튀밥을 뿌리며 좋아하는 두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라 미소가 흘러나오는데 그 땐 정말 펑펑 울었다.

나도 겨우 서른한살인가 였던 어린 엄마였다.

어머님드릴 미역국을 끓이면서 옛날 생각이 떠올라 기록한다.

어머님 건강하셔요!!


    어머님께 차려드린 생일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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