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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찾기 Mar 03. 2023

일타스캔들을 보며  

사랑은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

요즘 <일타스캔들>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오래간 만에  전도연의 사랑스럽고 쾌활한 연기를  TV에서 보니 반갑고, 자주 봤으면 싶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영화 <밀양> 이후에는 무겁고 심각한 영화나 드라마를 주로 찍은 거 같다.

웃는 미소가 맑은 전도연의 연기가 물 만난 듯 편하고 좋다.


수학 일타강사로 나오는 정경호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처음 봤었는데, 코믹하면서도 진지하고 허당미 있는 역할을 참 잘 소화하는 거 같다.

전도연 친구역할로 나오는 배우도 너무 좋고 주연, 조연할 거 없이 연기구멍이 없어 보는 재미가 더하다.   


드라마는 너무 재미있는데 드라마를 보면서 마음이 무거운 장면들이 많다.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올케어반 엄마들끼리 모여서 나누는 대화나 그들이 자녀들에게 보이는 태도와 표정과 말들이 무서웠다.

-물론 드라마는 현실의 반영하면서도,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도출하기 위해 과장해서 표현하겠지만-


<올케어반> 한 아이가 죽은 날에도 휴강을 반대하며 수업강행을 요구하고 아이들에게 애도의 시간조차 주지 않고 온통 공부, 성적만 생각하는 엄마들.


코끼리도 동료가 죽으면
찾아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흙을 덮여주며 애도를 표한다는데,
하물며 인간인데..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업을 갖는 게
다 일까..
그렇게 키운 아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인간의 (당연한)
온기를 갖게 될까?
그런 거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선재엄마가 자식에게 보이는 표정을 보면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

선재엄마도 자식을 몰아붙이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일 텐데,

입에서 나오는 말이나 그 말을 할 때의 표정은 사납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종류의 드라마를 보다 보면 저절로 내가 아이들을 키우던 때를 떠올린다.

나도  저런 비슷한 때가 있었지. 저럴 필요까진 없는데. 하면서 이입이 된다.


나는 언젠가부터 아이들에게 화를 내 본 적이 없다.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고 표정도 온유하게 짓는다.

왜 화 나는 일이 없고 속 터지는 일이 없겠냐마는 몇 단계를 겪으며 서서히 그렇게 됐다.


나는 목청이 타고나게 좋아서 아들 셋 키우면서 목청을 잘 활용했다.

밤에 잘 자리에 아이들 옆에 누워 아이들이 읽어달라고 가져온 책을 원하는 만큼 수십 권을 읽어줘도 목소리가 쌩쌩했다.

전래동화는 목소리를 다채롭게 내며 실감 나게 읽어 주고, 과학책은 전문 내레이터인 듯 읽어줬다.


한 3권쯤 읽으면 잠들래나 싶어 시작한 ‘잠자리 책 읽어주기’는 최소 10권은 읽어야 끝이 났다.

주말에는 스무 권 넘어가는 일도 허다했다.

내심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기특했고 내 건강한 목청이 고마웠던 시기였다.  


그런 건강한 목청을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는 걸로 활용할 때가 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큰 소리까지는 필요 없었는데 커가면서 나도 모르게 조금씩 커져갔던 걸까.

목소리를 키우면 아이들이 조금은 내 뜻대로 움직여서일까. 여하튼 목소리에 의지해서 아이들을 다그칠 때가 있었다.


그러다 목에 탈이 났다.

피곤과 겹쳐 목소리가 일주일 정도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이비인후과 의사는 내게 목을 쓰는 직업을 가졌냐고 물었다.

목소리가 안 나오니 아이들에게 손짓 발짓으로 얘기했다. 답답한 마음에 목소리를 내 볼라치면 쉰소리가 나왔다. 평생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런데 내 큰 목소리가 사라진 집은  훨씬 평안했고, 아이들은 내가 큰 목소리로 무언가를 재촉할 때보다 더 잘 움직여 줬다.

그때를 계기로 나는 소리 지르지 않기로 다짐했다.


아이들과 대화할 때 표정에 신경 쓰게 된 계기도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갖는 기본적인 마음은 사랑이다.

꾸중을 하거나 화를 내는 것도 아이가 혹 잘못될 까봐 잘못 클까 봐 하는 염려에서 시작되는 거지 사랑하지 않아서 그러는 건 아닐 거다.

그런데 훈육을 하려는 마음이 너무 앞서면 아이들이 사랑을 못 느낄 수 있다.


막내가 어렸을 때인데, 내가 별스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막내가 토라졌다.

이유를 물으니 내 표정이 화가 났고 내가 자기에게 화를 냈다는 거다.

나는 화를 내지도 않았는데 막내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억울했다.

그러다 생각해 보니 내가 화내지 않았어도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이 화난 걸로 느꼈다면 내게도 잘못이 있겠구나 싶었다. ​


내가 전달하고 싶었던 건 아이에 대한 사랑이고 염려이고 응원이어도, 아이가 느끼는 감정은 다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내가 아이에게 사랑을 전달하고 싶고 걱정하는 염려의 마음을, 다정한 응원의 마음을 전달하는 게 순수한 목표라면 그 감정 그대로를 아이에게 전달해야 하지 않을까..

왜곡되어 전달된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이냐 싶었다.  ​


생각해 보니 어떤 시기, 어떤 때의 느낌은 그 시기를 함께 했던 사람이 지었던 표정이나 그때의 감정, 분위기로 기억될 수가 있다.


늘 화를 내고 소리 지른 게 아니어도 뇌에 각인될 만큼 강렬한 어떤 나쁜 표정과 분위기로 한시기가 통째로 점령될 수도 있는 거다. 뇌 기억장치 어떤 부분에서..

왜냐하면 나 역시 그런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유년 시절 전부를 기억해 낼 수 없기에 그 시절의 몇 가지 추억이나 이미지들이 남게 되는데,  내게 남아있는 내 10대 초 중반의 내 엄마의 표정은 다정하고 상냥한 표정이 아니다.

당신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짓는 특유의 표정과 스~읍하며 눈에 힘을 주는 표정..

그 표정이 그렇게 무섭고 싫었었다.


성장한 후 본 나의 엄마는 보수적이고 엄격한 부분이 크지만 객관적으로 무척 희생적이시고 좋은 분이다.

하지만 어릴 때 내게 남겨진 느낌에서 사랑의 느낌이 거의 없다.


감사하게도  나의 엄마는 몇 년 전 내게 미안하다고 사과하셨다.

사랑을 표현하고 살지 못했다고. 자식들 키우면서 사랑한다는 말 한번 안 하고 엄하게만 키우신 거 같다고.


당신도 당신 엄마-나의 외할머니-가 너무 사나워서 힘들었는데 젊을 때는 잊고 살다가 뒤늦게 나이 들어서

어릴 적 상처받은 마음이 올라오더라고,

그래서 힘들었다고 하셨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치유되지 않은 감정들이 많이 남아있으면 힘든 거 같았다.

나는 내 엄마에게

엄마가 엄격했던 건 맞다.
하지만 그 시대 많은 엄마들이
그랬을 거 같고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어서
그랬을 거고
이렇게 대화하니 좋다


라고 말씀드렸다.

나도 엄마도 조금은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다.

상처를 꺼내 마주하고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도 하루아침에 된 건 아니었지만, 다행이었고 감사한 일이다.


막내와의 대화를 계기로 나는 내 마음속의 사랑이 내가 짓는 표정 때문에 왜곡되지 않게 노력했다.

사랑은 표현하지 않으면 잘 모를 수 있다.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엄격한 목소리로

“다 너를 위해서라고”

“ 너를 사랑해서 그러는 거다”라고 해봤자

그런 사랑은 잘 전달되지 않는다.

자칫 사랑을 빙자한 폭력으로 느낄 수 있다.

내 나이 엄마들이 온화하고 나긋나긋한 표정으로  세 아들과 편안하게 얘기하는 수준에 다다르는 건, 한 번에 껑충 도약할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다.


하지만 노력하면 변화할 수 있는 거 같고, 실제로 사랑의 표현을  듬뿍 받고 자란 요즘 엄마아빠들은 더 수월할 거 같기도 하다.​


<일타스캔들> 등장엄마들의 말과 표정을 보며 느낀 소감의 글이 길었다.

전도연과 정경호의 <일타 스캔들>!

두루두루  마무리 잘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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