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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찾기 Mar 26. 2023

아빠로서의 남편! 내편 된 남편!

사람 고쳐 쓸 수 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어린 아기, 아이에겐 부모가 '우주'이며 '전부'다. 달리 말하면 아이가 가장 약한 시기에, 부모의 '처분''온전히 맡겨지는 것'이다. 아이는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시기이기에 부모의 역할이 너무도 중요하다. 두려울 수밖에 없다.

나는 아이 키우는 일은 "아주 약하고 연약한 존재를 혼자 립할 때까지 부모(어른)들이 '' 돕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나는 남편과 가정을 이루어, 둘이서 아이들을 키웠으니, 아이들 키운 얘기에 남편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아빠로서 남편의 마음가짐이나 가치관을 남편이 자기의 글로 쓰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내가 한 번은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남편과 나 ’의 서사를, 그중 결혼 후 육아과정에서 남편과의 기억을 꺼내어 ‘브런치 글 한편로 줄이는 건 어려운 일이다.

아무래도 강렬하고 강력하게 남아 있는 기억들을 잡아, 쓰게 되니, 수많은 평화로웠던 일상은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질 까 하는 우려도 인다.


나는 브런치글을 쓸 때,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과장하지 않고, 사건에 기초하여, 했던 말 그대로 복기하는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내가 객관적이라고 느끼는 그 기억조차도 내게 유리하게 저장되어 있을 수 있, 내 그릇만큼 해석되어 보이는 것임을 안다.

절대자인 신께서 판단하는 게 아닌 이상, 내 글 속의 인물등장하여, 아니야, 그건 그런 게 아니었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의 말도 일리 있다고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다.(서두가 긴 이유는 남편 험담을 좀 해야 하는데 남편이 종종 브런치를 보기 때문에 미리 약을 치는 것이다)


남편은 기본적으로 어른에게 예의 바르고, 객관적으로 가정적인 사람이다.

남편을 아는 어른들은 그 예의바름과 단정한 모습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약혼식 때 시댁 친척들은 내게 "복이 많아서 저런 신랑 얻었네"라고 말했다.


남편은 세 아들에게 살뜰하며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친구처럼 편안하게 지내는 아빠다.

본인 새 옷을 샀는데, 아들이 이쁘다고 하면 홀딱 벗어주며, '너 입을래?' 하는 사람이다. 애들이 각기 집을 떠난 후엔 매일아침 하루도 빠짐없이, 아이들이 보고 싶어 할 까미사진과, 우리 집에서 보이는 큰 창 너머의 하늘사진과, 그날의 우리 지역날씨를 (근엔 보스턴 날씨까지 ) 카톡방에 올리는 다정한 아빠다.


처음부터 지금 같은 아빠였냐면, 

그건 아니다. 부딪히고 다듬어져, 지금에 이르렀다


고등학교 사회선생님이셨던 시아버님 영향이었을까, 남편은 유교적인 예의범절이 몸에 세팅된 사람이었고, 세 아이의 아빠가 되니 더 확장되었는지, 가부장적 권위를 내세우는 경향까지 짙어졌다. 가장인 본인이 통솔하여 이 가정을 이끌어 가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의식을 지닌 사람 같아 보였다.


내가 남편에게 애들 관련해서 처음으로 크게 화낸 일이 있었다. 큰애가 8세 때 즈음의 저녁식사 자리였다. 다섯 식구가 둘러앉아 식사 중이었고, 주 메뉴는 돼지고기김치찌개였다. 그즈음 우리 애들은 밥 먹을 때도 늘 책을 봤다. 남편은 밥을 먹으며 책 보는 걸 못마땅해했다. 애들은 책을 보며 먹기 편하려고 김치와 돼지고기를 적당히 섞어 밥에 비벼먹곤 했는데, 큰애가 찌개에 밥을 말아먹으려고 하다가 밥상에 국물을 쏟았다. 남편은 화를 내기로 작정을 했는지, 밥상머리 예절을 급하며 큰 목소리로 큰애를 혼내는데, 정도가 지나쳐 애를 잡도리하는 지경이었다. 누적된 화를 한 번에 쏟아붓는 느낌이었다. 애는 울었던 거 같다.


'밥상머리에서 혼을 안내는 게 밥상머리 예절이지, 아이를 잡도리를 하는 게 예절일까' 생각이 들며, 나는 화가 일었다. 듣다 듣다 참을 수 없어진 나는 숟가락을 밥상에 ‘탁’ 소리가 크게 날 정도로 세게 내리치듯 내려놨다. 그런 행동은 내 평생 처음 하는 거였다.

"정말 못 들어주겠네. 그만해!!"

그 뒤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남편도 놀라서 훈계를 멈췄고, 애들 놀라지 않게 상황을 잘 마무리했던 거 같다. 남편과 나는 긴 얘기를 했었겠고.(숟가락사건 이후, 애들 앞에서 싸우는 일은 없었다! 싸울 일 생겼을 땐 단 둘이 있을 때 싸웠다. '애들 놀라는 일은 만들지 말자'는 생각은 둘이 일치되었다.)


뒤로도 한 10여 년 동안은 가족의 관계성에 대한 시각차이로 남편과 부딪치는 때가 종종 있었다.

남편은 가족관계를 철저히 위계관계로 바라보는 거 같았다. 부모 자식 간의 위계. 심지어 부부사이도 평등하게 보지 않고 위계로 바라보았다.

그런 자세가 일상에서 늘 드러나는 건 아니었다. 평상시는 안하고 온화하다가, 자기가 세운 기준에 어긋나면 표정과 말투가 변하고, 언성도 높아지고 불편한 기류를 만들었다.

애들 앞에서 남편이 어떤 얘기를 하면 그게 틀린 말이든 맞는 말이든 일단 가만있어야지, 아빠로서의 위신이 안 서게, 내가 반대의견을 내는 걸 용납하지 않으려 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서로 싸우는 게 아니고, 어떤 사안에 대해서 부모가 의견대립하는 걸 보이는 게 무슨 문제가 있느냐.
부부가 수평적 관계이지, 위계로 보느냐, 내가 당신의 말이 잘못되었다고 느끼면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지, 부모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라는 게, 아이들에게 왜 나쁜 영향을 끼치냐?
치고받고 싸우는 것도 아니고, 차분히 이견을 조절하고 토론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발전적이지, 어떻게 엄마가 아빠말에 무조건 순종하는 모습보이는 게, 과연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보느냐?"

평등한 관계를 향한, 길고 지난한, 조용한 투쟁이었다(남편은 아마 우리 가족은 늘 문제없이 평화로웠다고 느낄 수도 있다. 90퍼센트는 그렇다).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조금씩 내 생각을 얘기했고, 남편은 조금씩 귀 기울여 듣고 변화하는 것 같았다. 특히, 둘째를 키우면서 '훌쩍' 성장하여 지금의 아빠모습이 되었다고 느낀다.(이 얘기도 쓰자면 길다. 남편은 둘째와 기질이 너무 달라 자주 부딪혔는데, 어떤 이유에선가 남편이 둘째를 생각하며 울던 날이 있었는데, 둘째와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했고, 그때를 기점으로 사랑의 마음으아이 대했다.)



우리 부부 완전한 수평적 관계가  결정적인 사건은 불과 몇 년 전에 일어났다.

세 아이 키우느라 집에만 있던 나는, 아이 입시가 거의 마무리된 후 성당봉사를 시작했다. 그러다 2년 임기 분과장직을 남편동의를 미리 구하지 않고 시작했다고, 남편이 크게 화를 내면서, 다툼이 벌어졌다.

나는 그때 남편에게, 결혼 후 가장 큰 실망감을 느꼈다. 평상시 내게 잘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내가 평생을 집에만 있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느껴져 깊이 상심했고 절망했다.

나는 말했다. 화 낼 필요도 없었다. 나는 냉정할 정도로 차분하게 얘기했다.

"당신은 내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당신에겐 내가 집에만 있어야 하는 가구 같은 존재인가 보다. 나도 이제 애들 다 키우고,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소박한 사회생활 시작하려는 게 그렇게 싫으냐. 내가 이 나이에, 성당봉사하는 정도의 일을, 당신에게 먼저 얘기하지 않았다고 이렇게  크게 화낼 일이냐. 정말 당신에게 실망했다 "


남편은 며칠 동안 깊은 생각에 빠진 거 같았다.

시간이 좀 흐른 후, 남편은 내게 사과했다.


'잘 생각해 봤는데', 자기가 '오랫동안 너무 잘못했다'고, '너무 구속하려고 한 거 같다'고. '진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앞으로는 안 그러겠다'고,' 하고 싶은 거 하라'고, 굉장히 미안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남편의 진심이 보였다.



남편의 큰 장점은 본인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실제로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결혼 초기, 나와 다툼이 생기면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였는데, 이제는 자신의 고집과 아집을 내려놓고, 나와 눈높이를 맞추는 사람이 되었다.


남편이 아들들과 친구같이 지낸 지는 벌써 꽤 됐다. 우리 가족 다섯 명 모두가 수평적인 관계가 되었다고 느낀다. 서로 의논하고 조율하지, 위압적으로 강제하는 일이  없다.


남편은 자기 고집을 끝까지 주장하지 않고, 마음과 귀를 열어 내 말을 들어주었고, 나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대화하고 진심을 전달한 게 통하여 오늘에 이른 거 같다. 위엄을 내세우려던 때보다, 망가지고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편안히 내 보일 줄 아는 지금이 자연스럽고 훨씬 보기 좋다. 아마 남편도 지금이 훨씬 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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