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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찾기 Mar 24. 2023

남편과 줌바를

고장 난 로봇이 댄서가 되다

남편이 줌바를 다닌 지 5개월에 접어든다.

남편이 나를 따라 줌바를 다닌다 하니 원래 좀 댄스감각이 있거나 춤을 좋아하 사람인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분야엔 젬병인 사람이다. 


남편은 처음에 친한 친구들에게도 줌바한다는 얘기를 못했다. 부부모임에서 평상시 운동 뭐하는지 묻는 인사말에 피트니스 한다는 투로 둘러 얘기하는 거였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 부르는 것도 아니고, 줌바하면서 왜 줌바한다 말을 못 하셔? 이렇게 좋은 운동을?"
부부모임 마치고 집에 와서 내가 말했다.

중년 남자가 줌바를 추는 게 그렇게 흔하지 않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내가 끌고 간 것도 아니고 남편이 자기 의지로  다니기 시작한 건데 부끄러워하는 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줌바가 부끄러우셔? 중년남자가 줌바를 시도하는 게 오히려 멋지고 신선하지, 뭘 감추시나?"

한술 더 떠서, 과장된 유쾌함을 섞어 이런 말도 했다.

" 나중에 당신 줌바하는 영상 찍어서 어머님께 보여드려도 재밌겠네. 예전엔 효도한다고 색동저고리 입고 재롱도 부렸다는데, 아들 줌바하는 영상 보시면 어머니가 얼마나 재밌어하시겠어?"

동갑인 남편과 나는 20살에 만나, 함께 한 세월이 쌓이다 보니, 나는 남편의 마음이 어떤 말로 편안해지는지 좀 안다.


남편친구며 형제들도 다들 중년에 들어섰다. 대화주제도 애들 얘기에서 중년건강 얘기로 넘어간 지 제법 되었다. 그러니 줌바한다얘기하는 게 그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일 수 있지, 숨길게 뭐가 있단 말인가. 어떤 사실을 한번 감추면 매번 만날 때마다 불편하다. 투명한 대화를 나누기도 힘들고.


아들들에게 아빠 줌바시작했다고 가족카톡방에 소식을 전하니, 아들들은 재밌어하며 환호했다. 아빠 대단하시다고 진심으로 놀라는 눈치였다.


애들에게 맛보기로 보내느라, 남편 줌바하는 연습 동영상을 찍는데, 남편은 빼지 않고 동작을 취한다.

"애들도 새로운 도전을 하는 아빠에게 배우는 게 많을 거야."
남편은 애들이 좋아한다면 뭐든 신나서 더 열심인 사람이다.


남편은 줌바 시작 초기엔 오른발 스텝은 되는데 왼발은 안되고, 손과 발 협응도 전혀 안 이루어졌다.

학원에서 줌바를 출 때도 고장 난 로봇처럼 움직였다. 각자가 움직이는 공간이 나름 정해져 있는데, 남편은 스스로의 움직임을 제어하지 못해, 가장 앞에서 시범을 보이는 선생님보다 더 앞쪽으로 튀어나가기도 해서, 배꼽을 잡게 만들었다.


남편은 굉장히 성실한 타입이다.

놀랍게도 남편은 두 달 정도 지나자 오른발 왼발 대칭으로 스텝을 할 수 있게 되더니, 이제 손과 발의 협응이 저절로 이뤄지는 단계에 이르렀다.


'뇌는 새로운 움직임과 동작을 반복하면  새로운 시냅스가 연결된다'고 한다. 이렇게 시냅스가 연결되고, 반복을 통해 강화되면, 예전엔 하지 못했던 동작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는 거리라.


'나이 들수록 뇌에 새로운 배움과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고 읽었다. 그렇지 않으면 뇌는 고정화된 기존 신경회로만 사용하게 되므로, 변화를 두려워하는 경향성이 더 강화된다고 한다.


'치매예방에 춤이 최고'라는 어떤 강연자의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참말이다. 안무를 외우고 따라 하느라 계속 뇌를 써야 하고, 숨찰정도로 움직이니 혈액순환에도 좋다.


의학발달로 수명이 길어져 오래 사는 시대다. 건강하지 못하게 오래 사는 건 자식에게 큰 짐일 거다. 건강이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관리는 내가 하려 한다. 


내가 남편과 함께 줌바하는 걸 아는 내 친구들은, 와이프랑 줌바 추려고 마음먹은 남편도 대단하고, 중년쯤이면 귀찮을 수 있는 남편을 데리고 줌바 다니는 나도 대단하단다.


유연하고 자유로운 아들들을 키우면서 나도 남편도 생각이 많이 유연해졌나 싶다. 나는 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줌바라는 좋은 운동을 만나 반갑고, 남편과 함께 즐거움을 공유하니 그것 또한 좋다.

남편과의 줌바. 오래 할 수 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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