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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찾기 Mar 03. 2023

아들은 여러 번  변한다

믿어주는 만큼 더 멋지게 변한다!

광고회사 영상 PD로 일하고 있는 둘째는 얼마 전에 울릉도 촬영영상을 보내주면서 울릉도가 스위스 같은 느낌이 난다며 가족여행을 함께 가 보자더니 오늘(2월 28일)은 기자와 일반인을 상대로 영상 관련 강의를 했다고 강의사진을 보내준다.


이제 겨우 사회 생활한 지 2년 차에 접어드는데 강의료 받고 강의를 했다니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40쪽에 이르는 PPT자료를 혼자 준비했다고 한다. 강의제안을 받고 수락하고 준비하여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마냥 기특하고 대견하다.


자식이 다 커도 무언가를 새로 시도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유치원 학예회에 선 자식을 보는 것같이 마음이 조마조마하면서도 뿌듯하다.


나는 둘째에 대해 애틋한 마음이 있다.

누군가 “자식이 많아도 더 이쁜 자식이 있지 않으세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그때 나는 생각해 봤다. 나는 어떤가..


늘 마음이 쓰이고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은 자식이 있고, 뭘 한다 해도 걱정이 안 되는 마음 든든한 아이가 있긴 하지만, 그게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고 하는 문제는 아니다. “세 아이에 대한 사랑의 크기는 다르지 않지만 그 사랑의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고 표현할 수는 있겠어요” 하고 대답했던 걸로 기억한다.


큰 아이는 남다르게 밝고 씩씩해서 든든한 느낌이고 막내는 자기 관리와 컨트롤이 잘되는 아이어서 믿음직한 느낌, 둘째는 애틋한 느낌이다. 내가 둘째를 좀 더 일찍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미안함이 애틋함이 되었다.


나와 남편은 둘째를 키우면서 부모로서 크게 성장했다. 그다지 사고가 유연하지 않은, 평범한 모범생 스타일의 우리 부부는 둘째를 파악하고 이해하고 수용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둘째의 현재는 사교적이고 사람들과 연대도 잘하는 멋진 청년이다. 뛰어난 리더십으로 선도하는 건 아니어도, 다정한 성격이어서 주변을 잘 아우르고, 유연한 타입이어서 모르면 잘 묻고 잘 배우는 타입의 사람으로 성장했다.

나는 둘째의 멋짐을 청년이 되어서나 제대로 알게 되었다.


고백컨데, 평범한 엄마인 나는, 아이들 학창 시절, 아이들을 바라보는 기준이 공부로 확 기울어 있었다.


학교공부 열심히 하고 학원 잘 다니고, 주어진 틀 안에서 잘 움직여 주는 아이가 수월하고 편했기에, 틀을 깨려 하고 내 맘처럼 안 움직여 주는 둘째와는 점점 트러블이 생기게 되었다.  


엄마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영특한지 평범한지 대충 파악이 된다. 엉덩이 붙이고 공부하면 잘할 거 같은 영특한 둘째가, 엉덩이 붙여야 잘할 수 있는 ‘한국식 공부’에는 별 취미를 보이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에 한동안 조바심내고 아이를 힘들게 했다. 아이를 푸시하기도 하고 회유하기도 하고, 모든 걸 일시적으로 멈추기도 했다.


그러다 내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순수하게 내려놓는 순간이 찾아왔다. 아이에게 마음을 온전히 열고 마음을 전달하고 귀를 기울이는 순간, 거짓말처럼 평안해지고 평화로워졌다.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욕심으로 가득 찬 부모가 문제였다는 걸 알았다.


부모가 변하니 아이의 사춘기도 저절로 끝났다. 둘째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얘기했고 우리는 귀를 기울였으며, 아이가 원하는 걸 지원하고 응원했고, 아이는 제 발걸음을 한발 한발 내딛기 시작했다. 둘째 본인이 결정하고 판단한 진로분야의 공부를 하는 순간부터는 다툼도 갈등도 거의 없었다.


청년으로 성장한 지금의 둘째는 표정도 온화하고 상냥하고 말도 조곤조곤 재밌게 잘한다. 유쾌하고 유머가 있어 대화가 즐거운 아들이 되었다.


크는 동안은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자주 불만 가득 찬 표정을 지었고 자기 친구얘기나 일상얘기를 잘 공유하지 않았다. 사춘기 때 아이가 자주 했던 말이 “엄마아빠랑은 말이 안 통해”였다.


대화를 통해서 아이의 여러 면모를 파악할 수 있는데, 자기 얘기를 잘하지 않으니 둘째에 대해 아는 게 부족했고 다양한 분야의 능력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가 없었다.

무얼 얼마큼 잘하는지 모르니 염려하는 마음만 앞섰던 거 같다.


중학교 때부터 버스킹을 했다는 것과 중고등학교 시절의 몇 에피소드를 대학생이 된 후에야 처음 들었다.

둘째가 입을 잘 열지 않은 건, 말해봤자 이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게 만든 부모 탓이었다.


나는 둘째가 일상적인 면에서도 많이 어설프다고 생각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청년이 된 둘째를 보니, 좀 서툰 게 있지만 한번 알려주면 잘 적용하고 일처리도 꼼꼼하게 제대로 잘하는 타입이었다.

나는 둘째를 너무 몰랐다. 자주 반성한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큰 애와 막내는 어릴 때부터 편안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잘했는데 둘째는 왜 자기 얘기를 잘하지 않았을까.


둘째와 있었던 여러 일들을 떠올려 보니, 스스로 사랑도 많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도 큰 아이였는데, 부모에게 기대하고 원했던 만큼의 사랑이 충족되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배속에서 나온 아이여도 참 다른 게, 똑같은 사랑을 주고 표현해도 어떤 아이는 100중 50만큼만 받아도 충분해하는데, 어떤 아이는 8-90받아갈증을 느낀다. 둘째가 후자였던 거다.

사랑의 요구가  더 큰 아이에게는 부모가 더 많이 표현해 주고 사랑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 나는 어떤 책에선가 그런 비슷한 말이 쓰여있는 글을 읽고 무릎을 탁 쳤던 거 같다. 그런 깨달음을 얻고는 사랑과 진심을 자주, 많이 표현하려 노력했다.

사랑한다. 응원한다.
잘하고 있다.
그만하면 충분하다.
시도한 것만도 멋지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자 둘째의 사랑의 곳간이 찼는지, 이제는 부모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아는 것 같다.


엄마아빠에게 사랑의 표현도  잘하고, 상냥하고 다정한 멘트를 얼마나 잘 날리는 모른다.

사춘기 시절을 생각하면 천지개벽 수준이다.


부모의 편협하고 좁은 시각으로 아이를 섣부르게 판단하면 안 된다.

부모와의 교집합이 적고 결이 좀 다를 뿐이지, 아이는 부모와 겹치지 않아 부모가 모르는 것일 뿐인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나는 아들만 셋을 키웠으니 아들 키우는 부모들에게 한 가지 얘기하자면, 지금 이 순간 힘들다고 아들을 포기하거나(그러지는 않겠지만!) 아들들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라고 강조하고 싶다.

굳이 '아들들'이라 콕 집어 얘기하는 이유는 '남달리 똑똑하고 야무진 딸'을 키우다 동생으로 아들을 키우게 된 엄마들이 아들을 좀 부족한 애로 오판하는 경우를 많이 봐서이다. 


아들들은 여러 번 변한다.

지금 어리숙하고 어설퍼 보이는 아들이라도, 부모의 믿음과 적절한 응원과 격려가 있으면 점점 더 멋지게 변하고 성장한다! 놀랍도록 멋지게!




나의 외할머니댁에 놀러 갔을 때의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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