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여행 후 일상으로 복귀했다. 며칠만 일상을 벗어나도 돌아와 다시 적응하려면 떠나 있던 만큼의 시간이 걸리는 걸까. 생체리듬이 돌아오고 일상의 감각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프랑스여행은 여러모로 훌륭했다. 같이 간 멤버도 좋았고, 방문했던 지역, 미술관과 성당들, 루르드성지,, 충만한 시간들이었다.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절했고, 음식들도 맛있었는데 특히 아침마다 버터를 듬뿍 발라 먹은 바게트가 아직도 자꾸 생각이 난다.
'여행을 떠난 나'는 '일상에서의 나' 보다 에너지가 한 세배쯤은 업 된 듯하여, 건강하고 발랄하게 잘 다녔다. 멤버 중 막내에 속해 부지런히 언니들 사진도 많이 찍어 드렸다. 하늘이 너무 예쁘고 빛이 좋아서 막 찍어도 화보처럼 나왔다. 밝고 쨍한 자연광이 그 어떤 반사판보다 인물을 돋보이게 함을 알았다.
여행초기언니들은 얌전한 자세의 사진밖에 못 찍었는데 여행후반으로 갈수록 몸도 꺾고(?) 다양한 포즈를 시도할 줄 알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걸어가면서 찍사인 나를 바라보라는 주문을 한 후 셔터를 계속 누르면 한 장쯤은 모델샷 같은 근사한 구도의 사진이 나온다. 여럿이 인생사진을 건졌다고기뻐라 했다. 여행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는 '기가 막히게 나온 사진' 이기도 한 것이니, 언니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기뻤다.
나는 여행을 즐기는 편이 분명 아닌데, 막상 여행을 떠나면 에너지가 엄청 좋다는 걸 알았다.
단체사진 중 나만 편집한 사진. 여행에서의 자유가 주는 포즈.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이라 기내용 편한 바지를 입었고, 다른 날들은 파리지앵 못지 않게 입었다^^
프랑스는 19년 전 처음 며칠 머물렀던때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19년 전엔 내가 프랑스어를 못해 영어로 말하면 좀 쌀쌀맞게 굴고 아시안에 대해 묘하게 우월 의식을 드러내 보이는 게 느껴졌는데, 이번에 가 본 프랑스는 하나도 불편함이 없이 편안했다. 프랑스어로 인사와 감사표현 정도만 하고, 영어로 대화를 해도 자연스럽게 응대했고, 아시안 전체에 대해서는 모르겠으나 한국사람에 대한 우호적인 느낌을 갖고 있는 게 느껴졌다. 여행 내내 좋았다. 우리가 대화하는 걸 보고 한국드라마로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며 말을 걸어오는 여대생도 있었고, 파리시내를 걷는 중 다가 온 어떤 아저씨는 꽤 자연스러운 한국어를 구사하면서 한국에도 다녀왔다고 “남이섬 대박” 등의 말을 하며 한국의 유행어를 제법 구사했다. 파리에는 소매치기가 많아 조심하라는 말에 잔뜩 긴장을 했지만, 자기가 배우고 있는 한국어로 대화를 시도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한국에 있는 두 아들은 카톡영상통화를 걸어왔는데, 몽마르트르나 루브르에 가면 소매치기가 많다고 소지품 주의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둘째는 파리식당을 들어갈 때나 종업원을 대하는 에티켓을 "엄마도 알고 계시겠지만" 이라는 전제로 섬세히 설명해 줬다. 익히 모르는 바 아니지만, 엄마가 불편한 상황을 겪을 까봐 염려되어 전화한 마음이 고마워 잠자코 잘 들었다.
큰애는 몽마르트르언덕에서 여행을 같이 갔던 친구가 야바위꾼들에게 속아 돈을 털렸다고 조심하라며, 자기 대신 달팽이요리를 맘껏 드시라고도 말했다. 의대시절 방학 때면 유럽배낭여행을 자주 떠났던 큰 아이는 추억에 젖는지 당부의 말을 하면서도 나를 부러워했다. 내가 걱정했던 아들들이 어느덧 커서 해외여행 떠난 엄마를 걱정하고 있었다.
프랑스로의 여행이 벌써 꿈결같이 느껴진다. 루르드 성지로 향하는 기차의 일정에 문제가 생겨 지역열차로 갈아타느라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것 또한 추억이다. 우리나라 무궁화호쯤 되는 느낌의 지역열차는 타보길 잘한 게 프랑스사람들의 일상을 엿본 거 같아 좋았다.
놀라웠던 것 중 하나가 덩치가 큰 개를 기차에 아무렇지도 않게 태우고, 큰 개가 좀 돌아다녀도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도 없었다. 개를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인권과 동물권을 동일하게 생각하는 느낌이 들었다. 기차에서 서로 처음 만나는 게 분명한 사람들이 서로 거리낌 없이 토론하듯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편안하니좋아 보였다.
지역열차에서 만난 의자아래 검은 개. 열차타는 게 익숙한 듯 의자아래에 들어가 눈만 껌벅거리고 있고, 아래 누런개는 아직 어린 지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는데 놀라는 사람 하나 없다.
개가 심난하게 굴어도 계속 털을 쓰다듬어주고 머리에 쉴 새없이 뽀뽀해주던 반려인
기차역에서 만난 강아지. 우리나라에서 보는 강아지와는 분위기가 달라보인다.
프랑스는 여러모로 많은 것을 가진 나라였다. 넓은 영토, 비옥한 토지와 자원과 좋은 기후, 아름다운 유산들. 신이 너무나 많은 걸 프랑스에게 준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 혼자만 챙기면 되는 여행은 정말이지 가볍고 신이 났다. 가족과의 여행이 주는 익숙한 편안함도 좋지만, 마음 맞는 여자들끼리만 떠나는 여행은 경쾌하고 새로웠다. 함께 간 모든 멤버가 이번 여행이 너무도 좋았는지 또다시 여행적금을 시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