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을 반사하는 나만의 '에메랄드빛 방패'
내 차는 트랙스다. 이제 내 품에 온 지 만 5년 정도. 나는 내 차가 여러모로 마음에 든다.
혼자 타기에 사이즈도 적당하고, 소형이지만 SUV라 시야가 높고 넓은 것도 마음에 든다. 차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주행 성능도 특별히 모자람은 없는 것 같다.
차를 산 이후, 나는 대중교통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원래 잘 돌아다니지도 않지만, 어쩌다가 어딜 갈 일이 생겨도 항상 차를 타고 이동한다. 이제 내 트랙스의 시동을 거는 일은, 외출 시 신발 끈을 매는 일만큼 자연스러운 내 삶의 일부가 됐다.
그리고 내 차의 썬팅은 꽤 진한 편이다. 남들에게 썬팅은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한 '자외선 차단막'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썬팅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나를 격리시키는 '심리적 방패'다.
나는 타고난 신경증 탓에 타인의 시선에 유독 예민하다. 누가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온몸이 긴장되고,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진다. 그래서 카페나 식당에 가도 습관처럼 구석 자리를 찾고, 도서관에서도 등 뒤가 막혀 있는 벽 쪽 좌석을 고집한다.
그런 나에게 운전을 시작한다는 건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인 초보 시절, 도로는 나에게 거대한 심판대 같았다. 혹시 내 서툰 주행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을까, 뒤차 운전자가 나를 욕하며 지나가지는 않을까. 나는 핸들을 잡을 때마다 죄인처럼 잔뜩 움츠러들곤 했다.
그래서 나는 트랙스의 유리창을 법이 허용하는 범위와 나의 불안이 요구하는 범위의 경계선까지 짙게 물들였다. 선택은 검은색이 아닌, 에메랄드빛이 감도는 반사 필름이었다.
효과는 완벽했다. 신호 대기 중 옆 차 운전자가 무심코 고개를 돌려도, 그는 내 굳어있는 어깨나 초조한 눈동자를 볼 수 없다. 그저 차가운 초록빛 거울 속, 훔쳐보는 자신의 우스꽝스러운 표정만 마주할 뿐이다.
나는 그를 볼 수 있지만, 그는 자기 자신밖에 볼 수 없다. 이 비대칭적인 시선의 권력 구조가 나에게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이 초록색 방패 덕분에 트랙스 안은 온전히 나만의 영토가 된다. 나는 뻣뻣하게 굳어있던 어깨를 시트 깊숙이 파묻고, 멍청해 보일 만큼 편안한 표정으로 밖을 내다본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완벽한 자유의 공간. 차 안을 채우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식어가는 커피 향뿐이다. 나는 오늘도 이 좁은 밀실 안에서, 어른인 척하느라 지친 표정을 지우고 잠시 숨을 고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