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8개월 차 백수의 독립출판으로 내 책 만들기
“현지 님은 2024년에 꼭 해보고 싶은 거 있으세요?”
퇴사 후 5개월 차. 인스타그램에서 알게 된 나와 같은 처지인 백수 신분의 지인을 만났다. 롱패딩을 껴입어도 추운 12월의 어느 평일 점심시간 직장인들 틈에 껴서. 앞으로 하고 싶은 건 뭔지. 어떻게 지내야 할지. 실체 없는 막막함과 시도 때도 없이 밀려오는 불안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하다, 대뜸 내년에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묻는다. 듣자마자 바로 생각난 건 딱 하나였다.
“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꼭 한번 써보고 싶어요.”
마침 그분도 책을 내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내년에 시간이 맞으면 같이 독립출판 수업을 들어보자며. 일주일쯤 지났을까. 카톡 메시지로 링크 하나가 날라왔다.
“현지 님, 책방연희에서 진행하는 독립출판 수업이 다음 달에 열린대요. 같이 들어보실래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신청 게시물에 올라와 있는 입금 계좌로 송금부터 했다.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으로 나를 몰아넣지 않으면 아무리 시간이 많다 한들 절대 쓰지 않을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기에. 게으른 완벽주의자인 나를 위한 가장 효과 좋은 처방책이었다.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환경에 나를 몰아넣기.
왜 책을 내고 싶었을까. 회사에서 적성에 맞지 않는 개발 업무를 하며 고통이 극에 달하던 시기. 두 달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아침 블로그에 글을 써서 올리기 시작했다. 출근 전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 노트북을 켜고, 새벽 여섯 시부터 일곱 시까지 한 시간 동안 글을 써 내려갔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막연한 나의 기분과 감정, 밀려오는 생각의 실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잘만 다니는데 나는 왜 이리도 회사가 싫고, 매일 무기력하고 우울한지 알게 되면서 답답함이 해소되었다.
그뿐이랴. 내 글을 읽고 격하게 공감해 주는 분들과 댓글로 소통하는 시간이 괴로운 회사 생활 속 숨 쉴 수 있는 작은 틈이 되어주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회사에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성취감과 성장하는 기분,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소통할 때의 기쁨을.
처음엔 나를 위해 쓰기 시작한 글이었지만 블로그가 커지고 소통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내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엄마와 둘이 일주일간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여행기를 올린 적이 있다. 많은 분들이 부모님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깊은 공감을 해주셨다.
작년 겨울 10년 만에 친정어머니와 2박 3일 여행을 다녀온 추억을 떠올려주신 분.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살아생전 같이 여행한 추억을 잊고 있다가 글을 읽고 생각이 났다는 분.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와의 여행을 미뤄왔는데 조만간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짧게라도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분. 각자의 사연을 이야기하며 입을 모아 해주신 말은 ‘고마움’이었다.
‘덕분에 그때를 회상하고 추억할 수 있었어요. 고맙습니다.’
‘이번 주말에 바로 1박2일 여행 일정을 잡았어요. 감사해요!’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나서 한참을 울었네요. 잠깐이지만 엄마와의 추억에 잠길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고마워요.’
나를 위해 쓴 글이 누군가에게 닿아 위로를, 추억을 회상하게 하고, 일상에 작은 기쁨을 드릴 수 있다니. 우연히 읽힌 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위로를 전하고 때론 용기를 줄 수 있다는 걸 경험하였다. 그때 나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명확한 감정을 느꼈다.
‘글로 내 이야기를 나누고 필요한 누군가에게 닿을 때 나는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구나.’
말주변도 없고 제대로 글쓰기도 배워본 적 없는 뼛속까지 이과생인 7년 차 개발자로 살아온지라 글쓰기 실력은 형편 없다. 그럼에도 글이라는 매개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했기에 계속 글을 쓰게 되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렇게 쓰다 보니 책을 내보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들었던 게 아닐까.
독립출판 수업을 신청 할 때에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 할지 크게 고민하지는 않았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마침 혼자서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보내며 손바닥 만한 크기에 기록한 노트 세 권이 있었고, 그 안에는 여행을 하며 느낀 감정과 생각들이 가감 없이 적혀 있었다.
몸과 마음을 꽉 조여오는 맞지 않은 옷을 입고 회사 생활을 하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퇴사 후 무작정 떠난 치앙마이. 치유 받은 그 곳에서 느낀 생각과 감정에 대해 책으로 써 보기로 결심했다. 퇴사 전의 나처럼 일상에 지칠 대로 지쳐버린 분들이 이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평온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첫 책 <퇴사 후, 치앙마이> 여행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