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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지 Jun 03. 2024

1. 강사님과 아홉 작가의 첫 만남

퇴사 8개월 차 백수의 독립출판으로 내 책 만들기

홍대입구역 7번 출구에서 나와 오늘의 수업 장소인 책방으로 향했다. 지하 1층에 위치한 독립서점 책방연희에서 6주간 진행될 <독립출판으로 내 책 만들기> 8기. 귀가 찢어질 것 같은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1월의 시작. 롱패딩에 귀마개까지 장착하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갔다.



앞으로 당근과 채찍으로 예비 작가들을 휘어잡으실 강사님과 매주 마감의 고통을 함께 겪을 예비 작가님들과 어색하게 눈인사를 나누었다. 책방 한쪽에 놓인 밝은 원목 테이블에 옹기종기 둘러앉은 아홉 명의 예비 작가.



강사님의 아나운서 뺨치는 아름다운 발성과 유쾌한 입담으로 어색함에 얼어붙은 분위기가 살살 녹아내려 갈 즈음, “짧게 자기소개와 쓰고 싶은 책에 대해 돌아가면서 이야기해 볼까요?”라며 수업을 신청한 순서대로 이름을 부르신다.



직장 생활을 하다가 직업 만족도 90%인 숲 해설가로 활동하며 생소한 직업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분, 아내 대신 육아 일기를 쓴 남편과 아이가 그린 그림을 모아 책으로 엮어 선물해 주고 싶다는 분, 카메라에 근사하게 담아온 울릉도 사진을 글과 함께 엮어 울릉도 여행기를 쓰고 싶다는 분, 맞지 않은 회사 생활을 하며 불안장애로 고생한 나 자신에게 퇴사라는 갭이어를 선물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싶다는 분.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홉 명 모두 달랐다. 강사님도 몇 년째 독립출판 수업을 하고 있지만 쓰고 싶은 소재가 겹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내 인생의 서사는 유일하고 나만이 풀어낼 수 있으니까.



1주 차 과제는 세 가지. 책의 장르 및 제목 정하기. 책의 크기인 판형 정하기. 목차 정리해 오기. (처음부터 쉽지 않다.)



좋은 음식을 좋은 그릇에 담듯, 책의 표지는 책의 인상이다. 표지에서 호감을 얻어야 내부로 들어갈 수 있기에 제목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하는 일이었다. 퇴사 후 치앙마이에 한 달간 머물며 기록한 생각과 감정을 사진과 함께 엮은 여행 에세이의 제목은 뭐라고 해야 좋을까.



핵심 키워드는 ‘퇴사’와 ‘치앙마이’인데 ‘퇴사 후 치앙마이’는 너무 일차원적인 것 같고. 퇴사 후 여자 혼자 치앙마이에서 한 달? 퇴사 후 무작정 치앙마이행 티켓을 끊었다? 아, 이것도 아닌데. 보통의 에세이 책처럼 감성 넘치는 제목을 달고 나와야 눈길을 끌지 않을까? 고민이 된다면 제목은 감성적으로 하되 부제로 책의 내용을 풀어서 설명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강사님의 피드백.



제목은 샘플 책 주문 전까지만 정하면 되니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하고, 판형 고민으로 넘어갔다. 소설, 시, 에세이 등 장르별로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판형 설명과 함께 책방에 있는 책을 보고 각자 원하는 판형을 골라보라고 하셨다. 에세이로는 한 손에 잡히는 크기인 <아무튼> 시리즈 판형도 요즘 자주 보인다고.



무엇보다 독립출판물은 기성 출판과 다르게 가지각색의 다양한 판형이 존재하니 틀에 박히지 말고 자유롭게 정해도 괜찮다며, 아이폰 메모 앱에 적은 글들을 모아 실제 아이폰 액정 크기로 책을 만든 분의 책을 보여주셨다. 우선순위로 고려해야 하는 건 이 책의 타깃 독자가 누구인지, 그분들이 언제 어디서 읽어줬으면 좋겠는지 정하는 것.



짧은 글과 사진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풀어낼 여행 에세이인 만큼, 한 손에 잡히는 작은 크기에 가벼워 가방에 부담 없이 넣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서든 읽히길 바랐다. 책방에 있는 에세이집과 집 책장에 잠들어 있는 독립출판물을 꺼내 이리저리 보고 만져도 보면서 원하는 판형을 정했다.



마지막으로 목차. 책에 어떤 내용을 담을 건지 먼저 정하고 목차를 나누기로 했다. 여행 내내 함께 한 손바닥만 한 노트 세 권에 빼곡히 기록된 날 것의 기록. 그 안에서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추려내서 42편의 에피소드로 정리했다. 따로 목차를 장(Chapter)으로 나누지는 않았다. 이어지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각각의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목차를 보다가 끌리는 제목이 있으면 그 이야기부터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원고 작성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제목, 판형, 목차를 정하는 것부터 험난하다. 책을 읽기만 했지 직접 만들어보려고 하니 정할 게 한둘이 아님을 온몸으로 마주했다. 쉽지 않은 6주가 될 것 같다는 예감과 함께 우당탕탕 <독립출판으로 내 책 만들기> 1주 차가 시작됐다. (안타깝게도 그 예감은 정확히 일치했다.)



앞으로 어떤 고난과 역경이 펼쳐질지 모른 채 그저 설렘으로 가득한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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