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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서인간 Aug 17. 2020

내 인생이 영화라면 어떤 장르일까

나는 인생의 주인공인가 감독인가

  몇 년 전 한 인터넷 여론조사 업체에서 '당신의 인생은 어떤 장르인가요?'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코미디, 멜로, 공포, 다큐멘터리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이었습니다. 결과는 다큐멘터리-코미디-멜로-공포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많은 학생들이 자기 인생은 공포 영화라고 답했던 결과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중고등학교 시기는 참 살벌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만,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의 체벌이 일상적으로 일어났고 학교 밖에서는 동네 건달들이 순진한 학생들의 호주머니를 노렸습니다. 어른들은 공부 못하는 인생은 곧 실패라며 겁을 줬습니다.


  대학 생활은 액션 영화 같았습니다. 시위 현장, 농구장, 강의실, 술집, 친구 자취방을 옮겨 가며 치열하게 서로 부딪쳤습니다. 몸으로 부딪치고 말로 부딪치고 술잔으로도 무수히 부딪쳤습니다. 액션 영화에 빠질 수 없는 로맨스 씬도 있었죠. 짧고 어설프기는 했지만.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의 삶은 다큐멘터리였습니다. 다양한 사건이 이어지지만 극적인 반전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지루합니다. 주인공은 평범하고 선악은 불분명하고 영화의 결론은 모호합니다. 소수의 마니아를 제외하면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할 영화입니다.


  인생이 영화이고 드라마라면 그 장르는 어떻게 정해지는 걸까요? 시대 상황, 가정환경, 나의 능력, 그리고 운에 달려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풍요롭고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나 선량한 부모를 만나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고 운까지 따라주는 삶은, 신나고 행복한 영화가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가난과 질병, 폭력에 시달리는 인생을 소재로, 보고 나면 흐뭇해지는 코미디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요?


  찾아보면 그런 영화가 제법 있습니다. 이탈리아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도 그중 하나입니다. 나치의 유대인 집단 수용소라는 극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베니니 감독은 웃음을 찾고 감동을 줍니다. 웃으면서 펑펑 울었다는 관람 후기가 참 공감되는 영화입니다.  


  인생이 영화나 드라마라면, 우리는 스스로를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를 감독이나 제작자로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영화의 배경과 사건, 등장인물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칩시다. 감독이나 제작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영화의 성격, 색깔, 장르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같은 배경·사건·인물을 두고, 어떤 감독은 가슴을 저미는 슬픈 영화를 찍을 수 있고 또 다른 감독은 마음이 따뜻하고 훈훈해지는 드라마로 찍을 수도 있습니다. 후후후, 크크크, 푸히히, 하하하, 깔깔깔 코미디로 만들 수 있고 매력적인 영웅이 활약하는 히어로물로도 만들 수 있지요. 지적인 탐구가 이어지는 다큐멘터리나 오금이 저리는 공포 영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흥미진진한 스릴러나 애틋한 멜로 영화로는 왜 못 만들겠습니까.


  내 인생의 색깔은 내가 선택한 장르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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