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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서인간 Jul 20. 2020

아이가 몇 살이에요?

나는 아이가 없다. 그러나...

  "아이가 몇 살이에요?"


  나이가 차면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아무도 의심을 품지 않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믿으며 살아가던 때가 있었다. 살아온 날 중에 그런 시대를 거친 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길면 길수록, 결혼을 했는지 자녀를 가졌는지 물어보는 것이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잘 납득하지 못한다. 세상의 가치관이 달라졌다는 것을 머리로는 받아들일지 몰라도 탐탁지 않게 여기는 한 조각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관계에서 "결혼은 하셨나요?" "자녀가 있으신가요?"라고 묻는 것은 상황에 따라 무례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런 질문은 건너뛰고 "아이가 몇 살이에요?"라고 묻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 질문은 '당신 나이 정도 됐으면 당연히 결혼은 했을 것이고, 아이도 한두 명 있을 테니까'라는 전제 아래 '우리 세대의 공동 관심사를 좀 나눠보죠.'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물론, 딱히 할 말이 없어 던진 말인 경우가 더 많겠지만.


  "전 아이가 없어요."라고 답하면 몇 초 정도 어색한 침묵이 흐르기 일쑤였다. 물어본 사람 입장에서는 공감을 해야 할지, 위로를 해야 할지, 이유를 물어봐야 할지에 대한 짧은 고민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달라졌다. "좋겠네요" "부럽네요"라는 답이 툭툭 튀어나온다. 그 뒤로는 팍팍한 세상에서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에 대한 넋두리가 이어진다. 나처럼 아이가 없는 사람 입장에서는, '위로를 받아야 할 처지에서 위로를 해줘야 할 처지로 바뀐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1등부터 50,000,000등까지 성공한 인생과 실패한 인생의 등수가 매겨지는 사회. 잠시만 방심하면 까마득한 아래로 인생 등수가 추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는 사회. 심지어 등수가 매겨지는 기준과 성공에 이르는 방법마저 자꾸 바뀌는 불안한 사회. 그런 세상에서 사다리를 올라가는 아이를 뒤처지지 않게 키운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세상을 바꿔야지요. 사람들이 생각을 바꿔야지요.'라는 주장은 틀린 말은 아닐지 몰라도, 한국의 부모들에게는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솔직히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이 부모의 심정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청년이 노인을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지난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의 지혜는 청년에게 길잡이가 되는 법. 최근에 접한 미국 작가 몰리 글로스는 어머니가 된 일이 작가인 자신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식을 키운다는 행위는 나로 하여금 '상당히 거창한 문제들을 깊게, 불가피하게, 일상적으로' 짚고 넘어가게 만들었다. '사랑이란 무엇이며 어디서 오는가? 왜 세상에는 악과 고통과 이별이 존재할까? 어떻게 하면 우리는 존엄과 관용의 정신을 함양할 수 있을까? 권력을 가진 자는 누구이고, 왜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갈등을 해결하는 최상의 방법은 무엇일까'
- Molly Gloss-


  나보다 훨씬 어린 직장 후배와 갈등이 생겼을 때,  한 동료가 이런 충고를 해 준 적이 있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어. 그러다 하루는 속 썩이는 젊은 친구가 내 아이라고 생각해 봤는데, 너무 기특하게 여겨지더라고. 난 우리 아이가 그 후배만큼만 해주면 정말 대견하고 고마울 것 같아." 나는 부모가 되고 아이를 기르는 경험을 하지는 못했지만, 이 충고는 정말로 큰 도움이 된다.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세상과 인간을 보는 나의 시야를 근본적으로 바꿔 준다. 사랑, 악, 고통, 이별, 존엄, 관용, 권력, 갈등에 대한 부모 입장에서의 성찰. '우리가 사는 세상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하는 데 대한 답은 거기서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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