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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서인간 Aug 27. 2020

스스로를 가둬버린 사람들

카르투시오 수도원과 대흥사

   스스로를 가둬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고독과 침묵 속에서 하루 종일 미사와 기도, 묵상에만 전념합니다. 먹는 것과 입는 것은 극도로 소박합니다. 식사는 하루 한 끼, 채소 반찬 한두 가지와 밥 한 공기가 전부입니다. 그나마 금요일에는 반찬 없는 맨밥만 먹습니다. 구멍 난 양말과 닳고 닳은 슬리퍼, 테잎으로 땜질한 밀집모자가 이들이 얼마나 검소한 삶을 살고 있는지 알려줍니다.


   경북 상주 산곡산 자락에 있는 카르투시오 수도원에는 한국, 프랑스, 스페인, 크로아티아, 독일인 수사 11명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는 최소한으로 접촉하면서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가족은 1년에 한 차례 만날 수 있습니다. 만나더라도 함께 밥을 먹거나 잠을 자지는 않습니다. 가족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어도 수도원을 떠나지 않습니다. 대화는 일주일에 두 차례, 월요일 산책 때와 주일 식사 때만 잠깐 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시간에는 침묵을 지키며 온전히 홀로 신과 대화하는 데 집중합니다.


   왜 이들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일까요.

   자유를 구속하는 것·검소하게 사는 것과 진리를 찾는 것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요.

   수도승들은 하루 종일 무슨 기도를 할까요.


   카르투시오 수도승의 정신과 생활을 규정하고 있는 카르투시오회 헌장에 해답의 실마리가 있는 듯합니다.    


    오직 마음이 순수한 사람에게만 하느님을 보는 것이 허락된다. 여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위대한 포기가 요구된다. 봉쇄 수도승은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사막으로, 세상의 소음과 심지어 수도원 자체의 소음이 제거된 독방으로 물러나야 한다. 우리의 주된 노력과 목표는 독방의 침묵과 고독에 투신하는 것이다. 독방은 거룩한 땅이며, 주님과 그분의 종이 함께 이야기하는 곳이다.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주님을 향하여 순수한 기도가 올려지는 살아있는 제단이다. 지상은 천상과 결합되고, 신성은 인성에 결합된다. 그 여정은 길고, 약속의 땅에 있는 샘에 도달하는 길은 건조하고 메마르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에서 더 엄격하게 가난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그리스도의 풍요로움을 나누기 원한다면 그분의 가난을 본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우리를 비우고 겸손하고 초연하게 하며 기도 중에 하느님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한다. 의지적으로 수용된 가난일수록 더욱더 하느님께 받아들여진다. 찬양할만한 것은 궁핍이 아니라, 세상의 재물에 대한 자유로운 포기이다.

   

   받아들여진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서도 전혀 권한이 없을 정도로 자신이 세상의 모든 것에 이방인임을 안다. 그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다. 온갖 바람에 흔들리며 방황해서는 안되고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을 찾아내어 그것을 자발적으로 행해야 한다. 모두로부터 떨어져 있는 우리는 모두와 일치되어 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느님 앞에 모두의 이름으로 서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피조물 전체를 대표하도록 우리를 부르셨기에 우리는 모든 이들, 즉 살아있는 자와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모순 속에 진리가 있습니다.

   포기하면 허락됩니다.

   고립됨으로써 결합됩니다.

   자발적으로 가난해짐으로써 풍요로워집니다.

   모두와 떨어짐으로써 모두와 일치됩니다.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너무 힘들어서, 힘들다는 얘기도 못할 만큼 힘들어서 무너질 때,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믿음.

   그것만큼 위로가 되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신에 대한 믿음은 조금 다를지 몰라도, 카르투시오 수도승들이 고맙습니다.




   속세와의 인연을 끊은 고립된 생활, 욕망을 초월한 검박한 삶, 침묵을 통한 진리의 추구는 사실 불교의 것이기도 합니다. 성 브루노가 카르투시오 수도회를 창립한 것은 11세기경입니다. 천 년 동안 동서양에서, 전혀 다른 종교가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수행을 이어온 것입니다. 우연이라기엔 너무도 공교롭지요. 사실 모순 속에 진리가 숨어있다는 비밀을 깨달은 구도자가 어찌 이들뿐이겠습니까.    

  

   불교의 화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새가 앉기에 나뭇가지 하나면 족하다"

  "세계는 한 송이 꽃이다"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추천드립니다.   


다큐 인사이트 [세상 끝의 집-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


KBS 스페셜  [세계유산 대흥사-인드라망의 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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