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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서인간 May 01. 2021

요양병원에서 느끼는
가족, 인생 그리고 사랑

부모님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 #6

  트럭에 치여 머리를 크게 다치고 재활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아버지를 요양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재활병원에서는 면회가 엄격하게 금지되었습니다만, 새로 옮긴 요양병원에서는 면회가 가능합니다. 면회는 병원 1층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이뤄집니다. 유리창 너머로 얼굴을 보면서 전화로 대화를 나누는 식입니다. 


  처음 면회하는 날, 예상하지 못했던 병원 모습에 놀랐습니다. 1층 유리벽이 수천 장의 메모지와 편지지, 도화지로 빼곡하게 덮여 있었습니다. '엄마 힘내세요' '할아버지 사랑해요' '할머니 완쾌를 기원합니다''간호사님 감사합니다' '간병인 여사님 고맙습니다' '병원 직원분들 덕분에 우리 아버지가 건강을 찾았습니다.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날이 좋은 주말에는 유리벽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한길 남짓되는 유리벽 칸칸마다 면회하는 가족들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본의 아니게 대화 내용이 귀에 들어옵니다. 중년의 아저씨가 혼자 와서 어머니에게 얘기합니다. 요즘 하고 있는 일이 잘 안 풀린다는 넋두리부터 일상의 시시콜콜한 일들을 담담하게 털어놓습니다. 그 옆에서는 엄마, 아빠, 아들, 딸이 와서 할아버지를 만납니다. 유치원생 같아 보이는 손자 손녀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재롱을 부립니다. 


  아버지가 계시는 요양병원의 환자들은 대부분 노인입니다. 치매나 뇌졸중, 혹은 아버지처럼 사고로 머리를 다쳐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분들이 많습니다. 가족이 하는 말이 그분들의 머릿속에 가 닿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유리벽 안쪽에 있는 노인들의 얼굴에는 대부분 표정이 없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어느 날은 잠깐 웃음을 보이며 반겨주었다가 또 다른 날에는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말하는 법을 잊고 기억을 놓아버린 노인들과 그 면회객을 보면서 사랑과 가족과 생명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사랑, 가족, 생명이 가장 소중하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며 살아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일이 중요하고 성공이 중요하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사랑이나 가족이나 목숨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며 치열하게 독하게 아득바득 살아갑니다. 


  오늘도 아내와 함께 유리벽 너머에 있는 아버지를 만나고 왔습니다. 오늘은 컨디션이 별로 안 좋으신지 눈빛이 탁하고 묻는 말에 대답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를 뵙고 오면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안부를 확인해서이기도 하지만 부질없는 것들을 조금 내려놓게 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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