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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서인간 Jun 02. 2020

한국인이 유난히 불행한 이유

문화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

  일반적으로 우리가 행복에 중요한 요소라고 여기는 것들-돈, 건강, 외부 환경의 변화 등-이 실제로는 행복 수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은 알아냈다. 앞에서 살펴봤지만, 지금까지 심리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개인의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타고난 기질'이다. 심리학에서는 성격의 특징을 결정하는 주요한 요인 5가지가 있다고 보고 있는데, 외향성·신경증·성실성·개방성·원만성이 그것이다. 연구 결과, 이 가운데 '외향성'이 행복과 가장 관련이 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학자들이 연구를 하면 할수록 외향성과 사회성, 즉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이 거듭 입증되고 있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성격 특성이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전부는 아니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행복 심리학자인 서은국 연세대 교수는 행복을 축구에 비유해 설명한다. 외향성은 축구로 치자면 개인기나 순발력 같은 선수 개인의 특성에 해당한다. 순발력이 좋은 선수가 축구를 잘하는 것처럼 외향적인 사람이 행복 수준이 높다. 그러나 월드컵에서 우승하려면 선수 개개인의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감독의 능력이나 팀 분위기 같은 '팀'의 특성을 간과할 수 없는데 그것이 바로 행복에 있어서는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문화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학자들이 언급할 때 주로 언급되는 국가가 있다. 한국과 일본이다. 한국과 일본 국민은 비슷한 경제 수준에 있는 국가는 물론, 훨씬 못 사는 나라의 국민보다도 유난히 행복감이 낮다. 이것은 굳이 조사를 해보지 않아도 사람들 표정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한국과 일본 사람들은 무표정하거나 딱딱하다. '날 건드리기만 해 봐'라고 얼굴에 써 놓고 다니는 사람도 쉽게 눈에 띈다. 미소를 띠고 있다가 우연히 눈이 마주치면 가벼운 눈인사를 나누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만약 있다면 정신 나간 사람으로 오해를 받을 판이다.  


  불과 몇십 년 만에 우리는 가난을 극복했고 밤 중에도 마음 놓고 돌아다닐 수 있는 안전한 사회를 구축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불행한 것일까?


  서은국 교수는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를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집단이 개인에게 때로 과도한 요구를 하고, 이를 수용하지 않는 사람은 철없고 이기적이라는 낙인을 찍는 문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집단주의 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서 정답은 하나다. 그리고 그 답은 정해져 있다. 나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평가가 중요하다. 이런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은 모든 상황에서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평가하는 버릇이 생긴다. 다른 사람은 나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할까? 부러워할까? 비웃을까? 칭찬할까? 욕하지는 않을까? 


올림픽 메달을 딴 한국 선수들이 기자회견을 마무리할 때 흔히 덧붙이는 말이 있다. "열심히 할 테니 지켜봐 주세요." 연예인들이 결혼 발표를 할 때도 비슷한 말을 한다. 예쁘게 잘 살 테니 지켜봐 달라고. 한국 사람이라면 이 전형적인 멘트에 담긴 정서를 전적으로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뭔가 순서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운동을 하고 결혼생활을 하는 것은 남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나를 위해서 운동도 결혼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늘 나를 지켜보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나의 경험을 어떤 방식으로든 보여주고 싶어 하고, 그들로부터 좋다는 승인을 받아야 속이 개운해진다.
나라는 존재에 미치는 타인의 존재감이 너무도 큰 것이다.
- 서은국 <행복의 기원> 중에서-


  이렇게 되면 더 이상 행복은 내가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남이 인정해줘야 행복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이 볼 수 있고 평가할 수 있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중요해진다. 대표적인 것이 '돈'이다. 


  그렇다고 치자. 그게 뭐가 문제지? 


  돈은 우리의 불안감을 없애 준다. '난 내 힘으로 뭐든 할 수 있어'라는 자기 충만감 self-sufficience을 준다. 이 때문에 돈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사람의 중요성을 가벼이 여기는 경향을 보인다. 돈의 존재감이 커지는 만큼 사람의 존재감은 작아진다는 것이 각종 심리학 실험에서 증명됐다. 행복의 핵심은 사람이다. 외향적인 사람이 행복 수준이 높은 이유도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과 기분 좋은 관계를 잘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복을 위해 돈에 집착할수록, 정작 행복의 원천이 되는 사람으로부터 멀어지는 모순이 발생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를 과도하게 의식하는 것의 또 다른 문제점은 사람과의 관계가 불편해진다는 것이다. 사람을 대하는 것이 즐겁고 편안한 경험이 아니라 긴장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경험으로 바뀐다.


타인의 평가를 의식하는 것 자체가 인간에게는 대단한 스트레스다. 인간의 뇌는 철저히 사회적이다. 생존과 직결된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하는 것은 뇌의 최우선적 임무 중 하나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과 주의가 자동적으로 집중되고, 집중하는 만큼 피로와 불안도 쉽게 온다. 과도하게 남을 의식하며 산다는 것은 일평생 무시무시한 트리어 처치(피실험자에게 1분 뒤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게 될 것이고 그들은 당신의 발표 능력을 평가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불안을 조성하는 실험)를 받으며 사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서은국 <행복의 기원> 중에서 


  집단주의의 반대는 개인주의다. 남이 뭐라고 하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살면 된다는 가치관이다. 개인주의 토양에서 행복이 싹트기 쉽다는 사실을 심리학은 말해준다. 한국, 일본을 제외하고, 소득 수준이 높은 국가의 국민 행복감이 높은 이유를 분석해보면, 상당 부분 돈 때문이 아니라 유복한 국가에서 피어나는 개인주의적 문화 때문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개인주의는 국가의 경제 수준과 행복을 이어주는 일종의 '접착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내 인생은 내 것이다. 내 마음대로 살자. 남들의 시선은 좀 덜 의식하자. 사실 남들도 내게 큰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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