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by 낙서인간
크라이스트 처치 보타닉 가든 Botanic Gardens, Christchurch

1. 진화의 과정은 형태가 점점 변해가는 방식(변형 주의)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기린의 목이 길어진 것은 할아버지 기린보다 아빠 기린의 목이 길어지고 아빠 기린보다 아들 기린의 목이 길어지는 방식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다양한 기린 가운데 목이 긴 기린이-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많이 살아남게 되고 목이 짧은 기린은 도태되는 방식(자연선택=적자생존)으로 모습이 변하게 된 것이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겨났다. 획득된 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


2. 진화는 발전이 아니다.


진화는 일직선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호모 하빌리스로 발전하고 호모 하빌리스는 호모 에렉투스로 발전하고 호모 에렉투스가 호모 사피엔스로, 호모 사피엔스가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현생 인류)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진화는 방사형으로 일어난다. 즉 한 종이 여러 종으로 나뉘고 그중에 살아남는 종이 시간이 흘러 또 여러 종으로 나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씨앗 하나에서 시작한 나무가 성장하면서 수천, 수만 개의 가지를 쳐 나가는 것과 유사하다.) 예를 들면, 원숭이와 인류는 과거 어느 시점인가 공통 조상에서 다른 종으로 분화돼 각자의 진화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온 것이다. 원숭이가 사람이 되는 일도, 사람이 원숭이가 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3. 진화에는 우연의 요소가 개입한다.


진화가 일어나도록 하는 압력을 가하는 요인은 크게 3가지가 있다. 자연선택성선택(짝짓기에 유리한 형질이 많이 살아남는 것), 그리고 유전적 부동이다. 유전적 부동은 우연한 기회에 살아남은 형질이 후대로 대물림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빙하기가 도래했을 때 우연히 얼음에 덮이지 않은 따뜻한 지역에 서식하던 식물이 살아 남아 지금까지 후손을 퍼뜨렸다고 가정해보자. 이 식물은 추위에 잘 적응하는 형질이 있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우연히 얼음이 없는 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다. 만약에 그 지역에 다른 식물이 살고 있었다면 지금 식물의 모습은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실제 미국 동부의 적송이 그런 사례이다.) 이주에 의한 유전적 부동도 있다. 예를 들어 대륙에 살던 한 부족이 멀리 떨어진 어떤 무인도로 이주해 살게 됐는데 그 부족원 가운데 B형의 혈액형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그 후손들에게서도 B형 유전자를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사족: 인류는 발전된 존재가 아니다. 변화에 잘 적응한 존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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