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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서인간 Mar 31. 2020

행복에도 최소한의 조건은 필요하다

성착취 사건을 보면서

주위를 한 번 찬찬히 둘러보자.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뉴스 기사를 뒤적여 보자. 우리 사회에는 하루하루를 간신히 견뎌내며 힘겹게 삶을 살아 내는 이웃이 있다. 노숙자,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빈곤층 노인, 희귀병 환자 가운데 그런 분들이 많다. 아동 학대 피해자나 성범죄 피해자의 고통은 차마 입에 담기조차 힘들다. 그런데 그밖에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소외된 친구들이 있다. 가출 청소년들이다.


가출 청소년이라고 하면 불량스럽고 범죄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문제아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잘 타이르거나 꾸짖어서 가정으로 돌려보내야 할 철없는 학생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몇년 전, 가출 청소년들을 취재하면서, 내가 편견에 사로잡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제 가출 청소년 대부분은 가정 폭력의 희생자다. 부모나 형제의 폭력, 또는 부당한 착취를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나온 청소년들이다.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이들에게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들이 왜 집을 나왔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가정환경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라면, 지역 사회나 정부가 이들에게 최소한의 쉼터를 마련해 주고 일자리와 교육의 기회를 찾아 주어야 한다. 이들을 방치하면 사악한 성인들의 범죄 수단이나 성적 착취의 대상으로 이용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가출 청소년들을 돕는 봉사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가출 청소년의 대부분은 설득해서 집으로 돌려보내야 할 친구들이 아닙니다. 또래보다 일찍 사회에 진출할 수밖에 없는 형편에 처한 젊은이들입니다."


불행히도 인간이 만든 사회 시스템에서는, 심지어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모든 인생이 평등한 적은 없었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는 성, 연령, 신분에 좌우된다. 언제 어디나 소외된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지금으로부터 이백 년 전, 영국의 공장지대에 있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예닐곱 살 먹은 소년은 아침 다섯시면 일어나 공장으로 달려가서 해질녘까지 일주일에 꼬박 엿새를 철커덕거리는 직조기 앞에 붙어 있어야 할 확률이 높았다. 그런 아이는 사춘기로 접어들기도 전에 과로로 사망하는 일이 많았다.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의 견직공장 지대에서 살던 열두 살바기 소녀는 온종일 커다란 물통을 앞에 두고 실을 엉기게 하는 끈적끈적한 물질을 녹이기 위하여 뜨거운 물에다 누에고치를 담는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꼭두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물에 흥건히 젖은 옷을 입고 지내다 보면 호흡기 질환에 걸리기 일쑤였고, 손가락 끝을 하도 뜨거운 물에 넣었다 뺐다 하는 바람에 나중에는 감각을 잃어버리기 십상이었다. 그 시각에 귀족 자녀는 무도회에서 사교춤을 배우고 외국어를 공부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어떤 열악한 환경에서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책임한 태도다. 심리학, 생물학의 최근 연구들은 행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돈이 있어야 한다. 폭력이나 착취가 없는 가정, 안전한 공동체가 필요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의 대한민국은 다행히 행복을 추구하기에 최악의 조건은 아니다. 범죄율도 낮은 편이고 과거 열악했던 복지제도는 개선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논하는 것이 사치인 이웃이 아직 우리 주위에 적지 않게 있다. 우리가 행복을 이야기하려면 개인의 문제뿐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은 정치의 영역이다. 정치는 '제한된 자원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정의된다. 불평등과 차별, 소외를 해소하는 것은 정치의 몫이다.

산업혁명의 폭압성이 극에 달하여 노동자들이 일주일에 여든 시간을 광산이나 공장에서 노예처럼 죽도록 일해야 했던 시대에도, 어떤 노동자들은 동료들처럼 선술집으로 몰려가지 않고 금싸라기 같은 휴식 시간을 문학 작품을 읽거나 정치 활동을 하는 데 썼다.
-P.E. 톰슨-


정치에 모든 것을 맡겨놓는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되지는 않는다. 우리의 궁극적인 관심은 개인의 행복이니까 말이다. 지금 불행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있다면 가만히 주저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상대적 빈곤이 아닌 절대 빈곤한 상황이라면, 가정이나 사회에서 폭력과 착취에 시달리고 있다면 용기를 내야 한다. 쉽지는 않다. 인간이란 목숨만 부지할 수 있으면 지옥에도 적응하는 존재니까. 그러나 진정 행복을 원한다면,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어렵다면 도움을 청해야 한다. 지금 있는 곳이 지옥이라면 거기 적응하려 하지 말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지도 말고 어떻게든 지옥을 벗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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