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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서인간 Mar 25. 2020

행복과 사랑은 닮은꼴이다

행복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아직 없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실제로 '학문적으로 공인된' 행복에 대한 정의는 아직 없다. '행복에 대한 연구는 인류 역사의 가장 큰 공백'이라고 어느 역사가는 말했다. 모호한 행복의 정의를 억지로 내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개념 정리는 필요하다. 우리가 찾으려는 것이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 정도는 알고 모험을 떠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혀 엉뚱한 무언가를 가지고 '마침내 행복을 찾았다'라고 할지도 모르니까. 


행복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행복'은 '사랑'과 닮은 면이 있다. 


첫째, 주관적이다.

백 명의 사람에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백 개의 다른 답이 돌아온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라고 하면 모두 다른 추억을 떠올린다. 행복을 느끼는 조건은 대체로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람마다 다 다르다. 행복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이유가 이 때문이다.


둘째, 모두가 노래하지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사랑에 대한 노래 목록에는 끝이 없다. 행복도 그렇다. 사랑이나 행복(혹은 불행)에 대한 노래가 돈이나 정치, 건강에 대한 노래보다 수천수만 배 많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삶에 중요한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사랑의 기술을 가르쳐주는 학교가 없는 것처럼 행복해지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주는 커리큘럼은 아직 없다. 우리는 자라면서 사랑과 행복에 대한 온갖 구전 설화와 신화를 전해 들으며 각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경험한다.


셋째, 다양한 측면이 있다. 

연인 간의 사랑, 부모와 자녀 간의 사랑, 신에 대한 인간의 사랑이 각각 다르다. 또 순식간에 타올라서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열정적인 사랑이 있는 반면, 있는 듯 없는 듯 은근하게 수십수백 년 동안 지속되는 사랑도 있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이 소유욕이나 집착, 증오였을 수도 있고, 사랑인지조차 몰랐다가 모든 것이 끝나고 난 후 비로소 깨닫는 사랑도 있다. 행복도 그렇다. 행복에는 쾌락극적인 감정의 측면도 있고 장기적인 성취안정감이라는 측면도 있다. 또 균형중용의 측면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


행복을 매우 협소하게 정의하는 경우를 종종 만난다. '즐거운 동시에 사회적으로 선해야 하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의미와 보람을 느껴야 진정한 행복이다'라는 식이다. 모든 조건을 고루 만족시키는 완벽한 행복을 추구함으로써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행복을 이렇게 정의하는 사람에게 행복이란 또 다른 인생의 트로피일 따름이다. 주위 사람이나 자녀에게 '나는 모두가 선망하지만 아무나 얻을 수 없는 행복이란 것을 성취한 대단한 사람이야'라고 자랑하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제발 그러지 말자. 행복을 이용해서 교묘하게 사람들을, 우리 자신을 더 경쟁으로 내몰지 말자. 안 그래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경쟁에 시달리고 있으니까.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의 '행복에 대한 정의'를 가지고 있다. 비록 그 정의가 잘못된 통념에 근거하고 있거나 애매하거나 비뚤어져 있을지는 몰라도. 앞으로 차근차근 보완하고 수정해 나가면 된다.


그림 설명: 미국 네바다 주 데스벨리의 배드워터 베이신(BAD WATER BASIN)을 그려보았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낮고 가장 뜨겁고 가장 건조한 곳인 데스벨리. 저희는 이곳이 주는 황량한 느낌이 너무 인상깊더라고요. 3번이나 방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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