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방해하는 적, 기대

기대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by 낙서인간

'좋은 결과 기대할게'

'자네에게 거는 기대가 크네'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이번 시험에 꼭 합격하기를 기대합니다'


기대에는 희망과 바람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대를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감정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대를 받는 대상에게 기대는 결코 긍정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기대의 단짝인 부담감은, 기대를 받는 사람에게서 즐거움을 빼앗아갑니다. 기대를 받는 순간, 시험은 자신의 실력을 테스트해보는 기회가 아니라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재판장이 되어 버립니다. 기대를 받는 순간, 스포츠나 게임은 실력을 겨루며 즐기는 놀이가 아니라 승리와 패배,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짓는 검투장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기대를 받는 사람은 '목숨'을 걸고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다짐하게 되고, 시험이나 시합에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자책감에 휩싸여 버립니다.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총명한 친척이 대학 입시나 고시에 실패하고 난 후, 평생 루저라는 낙인을 떨쳐내지 못하고 은둔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까닭입니다. 기대의 잔인한 측면을 김소연 시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기대하는 마음은 기대하는 대상을 조금씩 갉아먹어 가면서 무너뜨리며 동시에 자신도 무너져 내리게 한다. 누군가를 향해, 혹은 자기 자신을 향해 품었던 기대가 실망의 대가를 치르지 않는 경우는 없다. 기대는 채워지면 더 커지고 도착하면 더 멀어지는 목표점이다. 기대하는 무엇은, 애초부터 먼 곳에 있다면야 손쉬운 포기도 가능할 터인데, 팔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곳에서 깃발처럼 펄럭인다. 그렇지만 도착하고 나면 늘 거기에 없다.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나서 다시 다가오라고 손짓한다. 늪처럼, 허우적거리면 거릴수록 더 깊이 빠져들게 한다.


원하던 것을 가지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유도 기대의 특성에 기인합니다. 복권이 당첨되면 행복해질 것 같았는데, 큰돈을 손에 쥐는 순간 나의 기대는 더 커져 버립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전세 대출금만 갚아도 세상 근심 걱정이 모두 사라질 것 같았는데, 이제는 더 넓고 호화로운 아파트에 살아야 행복해질 것 같고 월세가 따박따박 나오는 요술 항아리 같은 꼬마 빌딩도 한 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복권 당첨금으로는 이런 기대를 충족하기 어려우니 더 큰돈을 가지고 싶다는 갈망에 시달리게 됩니다.


인간의 기대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은 행복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만일 행복이 부나 건강, 사회관계 같은 객관적 조건에만 좌우된다면, 행복의 역사를 조사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웠을 것이다. 행복이 주관적 기대에 좌우된다는 발견은 역사학자의 일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든다. 현대인에게는 사용할 수 있는 안정제와 진통제가 얼마든지 있지만, 안락함과 즐거움은 더 크게 기대하면서 불편함과 불쾌함은 더 참지 못하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가 선조들보다 더 많은 고통을 겪는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유발 하라리


사회적 기대도 존재합니다. 40대 남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부모와 원만한 관계를 맺으며 자녀가 하나 둘 쯤 있는 화목한 가정에서 1년에 한 번쯤 여행을 가고 책임감 있고 성실한 삶의 태도를 견지해야 합니다.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까지도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나요. 만약 어떤 40대 남성이 이런 사회적 기대를 충족시킨다면 그의 삶은 행복할 것이라고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시계를 2백 년 전으로 돌려 조선시대에 평민으로 살고 있는 40대 남성을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그는 흙으로 지은 오두막에 살면서 하루 종일 고된 농사일을 해야 합니다. 냉난방과 청결한 상하수도 시스템은 당연히 없습니다. 여행이나 거주 이전의 자유도 누리기 힘들죠. 현대의 기준이라면 그는 불행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의 사회적 기대를 가지고 그의 행복을 평가하는 것은 대단히 불합리한 일입니다. 사회적 기대는 매우 가변적입니다. 아마 불과 50년만 지나면,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며 지키려고 애쓰는 사회적 기대와 가치는 우스꽝스러운 과거의 유물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기대는-그것이 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 사회적이든-행복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행복을 방해하는 적이며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입니다.


금오도 비렁길.jpg

✈ 그림 설명: 여수 금오도의 비렁길을 종이에 색연필과 사인펜으로 그려보았습니다. 비렁은 벼랑의 방언이라고 하는데요. 20km 가까운 해안 절벽길을 참으로 걷기 좋게 잘 조성해 놓았습니다. 해외의 어느 유명 해안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남해안 최고의 트레킹 코스라고 할 만합니다. 막걸리와 함께 한 방풍나물전의 쌉싸름한 맛도 잊을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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